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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제 Mar 26. 2024

소크라테스_2

재판을 받은 이야기도 해주시죠.  

   

(소크라테스) 그럴까요?  

   

나를 고소한 자들은 내가 젊은이를 망치고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닙니다. 그들이 고소한 내용은 나에게 전혀 해당되지 않았어요.     


내가 재판을 받은 이유는 방금 말한 것처럼 스스로 지혜롭다는 사람들과 나눈 대화 때문이에요. 그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된 점이 하나 있었지요. 그들과 나의 차이 말입니다. 나는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에 반해 그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테네의 젠체하는 사람들이 나를 고소한 진짜 이유는, 그들이 지혜롭지 않다는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이에요.   

  

(소피) 굴욕감을 느꼈나보네요.     


(소크라테스)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트리고, 공개적으로 나를 조롱한 일들이 오래전부터 있었지요. 오래된 굴욕감일 거예요.     


어쨋거나 그들과 대화하면서 나에게 부여된 신탁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신은 지혜로우나 인간의 지혜는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는 신이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인간들이여, 그대들 가운데 누구든 소크라테스처럼 자기가 지혜와 관련해서 참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롭다.”     


나는 법정에서 나 소크라테스가 아테네를 위한 선물이라고 말했지요. 등에가 말(馬)을 일깨우듯 나는 최선을 다해 아테네를 일깨우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소피스트처럼 돈을 받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그들은 부자였지만 나는 가난했어요. 또 소피스트라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재판에 이기려고 사람들의 동정에 호소했겠지만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어요.     


죄의 유무를 판결하는 첫 번째 재판에서, 나는 유죄 판결을 받았어요. 간발의 표 차이가 났죠. 그리고 형량을 결정하는 두 번째 재판에서, 나는 내가 받아야 할 형량이 아테네 시 청사에서 나에게 베푸는 음식 대접이라고 변호했어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에게 베푸는 음식 말이에요. 평생을 신과 아테네를 위해 보냈으니까 내가 그런 대접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배심원들은 내가 괘씸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나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어려운 일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피하는 것입니다. 나쁜 일을 피하는 인간만이 참으로 인간이에요. 올바른 행위가 무엇인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지 죽느냐 사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신이 나에게 맡기신 임무인 지혜를 사랑하는 일과 참된 지식을 찾기 위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어요.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어요. 나처럼 진리를 위해 두려움 없이 논박하는 이들이 내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 태어날 테니까요.


(데오) 소크라테스, 당신은 진리를 위해 죽었군요.    


Jacques Louis David, The Death of Socrates, 1787


(소크라테스) 그래요. 나는 진리를 위해 죽었어요. 그리고 내 뒤를 이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진리를 위해 죽었습니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은 생각과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입니다.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했습니다. 내 원칙을 끝까지 고수했어요.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 바로 진리를 지켰습니다.     


철학은 단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수사가 아닙니다. 철학은 사람들을 멋진 말로 현혹하기 위해 앞뒤가 다른 말을 내뱉는 일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아요. 철학은 그 자체로 진리를 수호하는 활동입니다.     


(필로) 고소 내용으로 봐선 사형은 심한 듯한데요? 법이 엉망이네요. 죽지 않을 다른 방법은 없었나요?   

  

(소크라테스) 나의 친구 크리톤이 나에게 탈옥을 권했지요. 당시에는 탈옥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크리톤은 나의 자식들을 걱정하며 탈옥을 위해 많은 돈을 쓸 계획이었어요. 나는 그를 말렸지요.     


다시 말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요.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지하지요. 알지 못하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그만이에요.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필로) 그래도 탈옥을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요? 판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소크라테스) 어떤 점에서 더 좋았을까요? 판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지요. 헛소문에 휘둘린 판결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부당한 판결이 탈옥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필로) 또 질문인가요? 소크라테스의 집요한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엔 제 식견이 짧은걸요.     


(소크라테스) 내 철학의 진정한 관심은 아레테(ἀρετή)입니다. 아레테는 ‘탁월함’을 뜻합니다. 탁월함이란 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가위의 탁월함이 잘 자르는 것이고, 귀의 탁월함이 잘 듣는 것이듯 나의 철학은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을 추구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좋은 삶을 찾는 것입니다. 무엇이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지, 인간으로서의 탁월함을 얻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어떻게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지 검토하는 일이야말로 철학의 요체입니다.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탁월함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모든 인간이 충분히 탁월해지지는 않지만 어떤 인간이든 자신의 탁월함을 더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핵심은 더 좋은 삶,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방법입니다. 나는 ‘앎’이야말로 탁월한 인간이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하는 힘, 이성을 통해 얻는 지식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앎이 곧 인간의 탁월함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 위해 알고자 힘써야 합니다. 앎은 우리를 행복으로 인도하지만, 무지는 우리를 불행으로 인도합니다. 앎은 탁월함이자 덕이고, 무지는 악덕입니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알고 나면 악한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소피) 알면서도 나쁜 짓을 하지 않나요? 뉴스에 등장하는 흉악범은 자신의 행동이 나쁜 줄 알면서도 범죄를 저지르잖아요. 좋은 대학 나와서 아는 게 많은 사람도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걸요. 요즘은 사람들이 뻔뻔해져서 고개를 숙이지 않긴 하지만요.     


(소크라테스)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에요. 흉악범은 범죄를 저지를 때 참는 것보다 참지 않는 것이 더 나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폭력이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는 쾌락을 제공해주니 그 쾌락이 행복인 줄 알았던 거예요. 그들은 나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하고, 더 좋은 삶을 살게 하고, 더 큰 행복을 얻게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행복에 무지했던 거예요. 내가 강조했듯이 그들은 삶을 검토하지 않았어요. 행복이 무엇인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무엇이 좋은 행동인지 아는 사람은 그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아는 사람은 옳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소크라테스 퇴장]     


Clinton Inman, Socrates Examined, facebook.com/clinton.inman/


소크라테스와의 만남이 어땠는지 소감을 나눠볼까요?     


(필로) 잠깐만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의 상징이라고 하셨는데, 소피스트들이 섭섭할 것 같은데요. 소피스트들도 엄청난 철학자 같았거든요. 소피스트들이 아니라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상징으로 기리는 이유가 뭘까요?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상징으로 여기는 배경에는 철학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에 관한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 자체가 철학의 중요한 주제라는 점입니다. 학문에 대한 정의를 시작해놓고 학문을 해나가는 다른 학문들과 달리 철학은 모두가 동의하는 철학의 정의란 게 없습니다. 철학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철학적 입장이 갈립니다. 다시 말해, 철학을 어떻게 정의하든 그 정의는 특정한 철학적 입장을 반영합니다. 결국,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도 특정한 철학의 입장인 셈입니다.      


(필로) 선생님이 특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뜻인 거죠?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의 입장과 달리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상징으로 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서 성급히 철학을 정의하기보다 여러분들이 직접 철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철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이 여행이 끝날 때쯤 여러분 나름대로 철학을 정의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답이든 괜찮습니다.     


대신, 여러분이 생각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덧붙여보겠습니다. 철학자를 세 유형으로 분류해보는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이 세 부류의 철학자는 각자 철학이 무엇인지 서로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선 첫 번째 철학자는 근원적인 것을 묻고 대답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철학‘존재’처럼 근원적인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소피) 지금까지 우리가 만났던 철학자들이 다 근원적인 것을 물었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만났던 모든 사람이 이 첫 번째 의미에 해당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모두 철학자입니다.     


(필로) 두 번째 의미는요?     


철학자의 두 번째 의미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철학자는 철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오) 소크라테스가 두 번째 유형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 전체를 철학에 헌신한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피) 그럼, 소크라테스 입장에서 소피스트는 철학자가 아니겠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필로) 그럼 철학자의 세 번째 의미는 뭔가요?     


철학자의 세 번째 의미는 거대한 체계를 세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철학자는 진리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체계 속에서 그 진리를 담으려고 한 사람입니다.     


(필로) 우리는 아직 거대한 체계를 세운 철학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은데요.     


네, 다음에 만날 철학자가 이 세 번째 유형에 속하는 철학자입니다. 바로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입니다. 플라톤 말고도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과 같은 인물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피) 철학자들마다 철학에 대한 정의도 다르고 입장도 다르다니 복잡하네요.    

 

(필로) 그래서 철학을 공부할 땐 가이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 여행 가보는 곳에 가이드가 있으면 좋듯이요.     


네, 여행처럼 철학도 가이드 없이 갈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날이 속히 오면 좋겠습니다.


자, 그럼, 이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가 어땠는지 각자의 소감을 나눠볼까요?   

   

(데오) 소크라테스는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소피스트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요즘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각자 자기만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면이 그랬어요. 어디선가 들었는데 우리 시대를 진리가 사라진 시대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이 체감되지는 않았거든요. 언제는 진리가 살아있던 시대가 있었나 의심했던 거죠.     


소크라테스가 존경스러운 면이 그런 점이었어요. 자기 시대가 진리가 사라진 시대라고 생각하고 진리를 추구했다는 점이요.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었는데 왜 우리는 진리를 위해 살지 못할까, 우리 시대는 왜 진리의 시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우리에게 소크라테스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진리를 위해 사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 듯해요. 소크라테스도 목숨을 바쳤으니까요.


(소피) 저도 소크라테스에게 감동했어요. 왜 소크라테스가 4대 성인인지, 위대한 인물인지 알 수 있었어요. 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도 했고요. 그런데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소피스트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소피스트를 좋아했잖아요. 반성이 좀 되네요. 소피스트 말이 현실적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온 몸을 던져서 현실을 극복한 사람이었어요.   

  

(필로) 저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 봅니다. 소크라테스가 뭔가 엄청난 이야기를 해줄 줄 알았거든요. 물론 존경스러운 분이긴 합니다만, 기대에는 못 미치는 느낌입니다. 자기는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싱거웠어요. 대신 고르기아스가 더 좋아졌어요. 소크라테스의 말이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고르기아스의 말은 확신을 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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