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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숫제 Feb 27. 2024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입니다


(소피) 와아, 드디어 와보네요. 파르테논 신전도 신전이지만 아테네 도시의 전경도 멋지네요. 그림 같아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쥐가 난 머리가 상쾌해져요. 아, 정말, 좋다.   

  

(데오) 그러니까요. 평소에 잘 생각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 자꾸 생각하다 보니 높은 산에 오를 때 다리에 근육통이 생기는 것처럼 머리에 근육통이 생긴 것 같아요.    

 

(필로)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두 분도 그러시군요! 지난 시간 선생님이 그동안 만났던 철학자를 언급하면서 마음에 드는 철학자와 그렇지 않은 철학자를 골라보라고 했을 때, 어떤 철학자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아서 혼났습니다.     


(데오) 저도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엉켜 있더라고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생각도 뒤죽박죽이라 마지막에 만났던 데모크리토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걸요.     


(소피) 저는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겠더라고요. ‘사제파제’     


(데오) 사제파제가 뭐죠?     


(소피) ‘사제’지간,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이요.   

  

(필로) 사제파제, 기발한 신조어네요.     


여러분이 철학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어떤 말을 꺼내기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평소 우리 일상에서 철학자들이 골몰하는 주제로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게다가 우리가 사는 세상과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쉬운 일은 아닙니다. 철학자들의 이름도 낯설고요. 이해가 안 되거나, 이해를 한 듯해도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 되거나, 이해했지만 동의하거나 납득할 수 없어서 싫어지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일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피) 염려라뇨?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시원한데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그럼, 이제 다음 철학자를 만나 볼까요? 지금 만날 철학자도 데모크리토스와 같이 그리스 북부의 압데라 출신입니다. 지금은 아테네에 머물고 있습니다.      


(필로) 아낙사고라스도 고향을 떠나 아테네로 왔잖아요. 다들 아테네로 몰려들었군요.  

   

네, 맞습니다. 아낙사고라스는 클라조메나이 출신입니다. 지금은 클라조메나이에 튀르키예의 우를라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고대 아테네는 경제, 군사, 예술 등 모든 면에서 …, 오셨군요. 프로타고라스.     


[프로타고라스 등장]

(프로타고라스) 나에게 배우러 왔다고요? 그러면 배움에 합당한 수업료를 내세요.     


(필로) 수업료를 내라고요?     


Jean Francois B, Protagoras, Painting, 71cm X 71cm, 2018.


(프로타고라스) 여러분은 지금까지 수업료 없이 배웠나요? 그렇다면 배운 것에 별로 애착이 없겠군요. 비용을 지불하면 배운 것에 더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나는 ‘소피스트’(sophist)입니다. 소피스트는 지혜를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지식인이죠. 아테네인들은 상대를 능숙하게 설득해야 사회에서 성공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원한다면, 빈약한 논변을 강력한 논변이 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비용은 꽤 비싸지만요.     


오늘 만남에 필요한 비용은 지난달에 이미 지불했습니다. 강력한 논변을 만들어주는 법은 다음 기회에 배우지요.     


(프로타고라스) 그랬군요. 잠시 행정 착오가 있었나 봅니다. 그럼, 나의 철학을 여러분에게 소개하지요.    

 

여러분은 지금까지 하나(일자)와 여럿(다자)의 관계에 대해 설파하는 철학자들을 만났을 겁니다. 여럿의 근원이 물이라거나, 공기라거나 하는 어설픈 이야기 말이지요. 아니면, 만물이 수라고 주장하거나, 불이라고 주장하거나, 원자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도 만났겠지요. 그들은 하나와 여럿의 관계를 가지고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들이 세계를 설명하는 데 성공했나요? 아니요.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쓴 답안지 중에 정답을 가리키는 답안지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이야기가 진리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러나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다양한 답을 내놓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입니다.     


(데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요.   

  

(프로타고라스) 인간이 위대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것을 판단할 때 그 판단의 기준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물의 척도가 인간이라는 말이지요.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신들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이 못마땅합니다. 신들이 있는지, 아니면 없는지, 신들이 있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도무지 알 수 없고 주제 자체가 불분명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삶은 매우 짧아요. 그러니 신들에 관해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없지요.     


(소피) 불가지론 ….     


(필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프로타고라스) 우선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떠올려보세요. 그는 ‘있음’의 길만 가고 ‘없음’의 길은 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했지요. 존재하지 않는 것은 현상이고 환상이라면서요.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상정해서 말하면 모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순이 인간의 현실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척도도 인간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도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어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상이라며 평가절하하겠지만, 다른 인간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소피)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건가요?     


바람이 불고 있을 때, 한 사람은 그 바람을 차갑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시원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는 것과 같죠.    


(소피) 그러네요. 에어컨 바람을 시원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춥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잖아요!  

    

(프로타고라스) 어떤 사람에게 꿀은 달콤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쓰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바람이 그 자체로 차가운지, 꿀이 그 자체로 달콤한지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판단하는 척도가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이지요.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이들의 주장이 다양했던 이유는 그들 자신이 세계를 그렇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척도로 세계를 파악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옳고 누가 그르다 할 게 없어요.     


(필로) 모든 게 상대적이라는 말이군요.    

 

(프로타고라스) 이전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말이 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상대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게 상대적이라고 해서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인간은 신에게 삶의 지혜를 물려받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지혜와 불을 인간에게 주었지요. 그 후에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염치와 정의를 주면서 모든 인간에게 정치적 지혜를 줍니다. 삶의 지혜와 정치적 지혜를 가진 인간은 관습과 법과 도덕과 문명을 세웁니다. 그것들은 모두 의미가 있어요. 내가 아테네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테네가 도시의 상징이자 문명의 상징,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아테네의 모든 사람은 정치에 참여하지요.     


옳고 그른 생각은 없지만 유용하거나 해로운 생각은 있습니다. 법과 규칙, 도덕과 종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세계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기보다 수사학을 배워서 성공하는 게 더 유익합니다.

[프로타고라스 퇴장]     


MTO, The Son of Protagoras, Belfast street art, 21 Talbot Street.


(데오) 왜 프로타고라스가 이전 철학자들과 구별되는지, 사뭇 다른 생각을 펼치는 철학자인지 알겠어요. 이전 철학자들은 이 세상이, 우주가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했었잖아요. 프로타고라스는 그 세상, 그 우주를 인간이 어떻게 보는지 관찰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을요. 그래서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해요.     


저는 지난 시간에 데모크리토스를 마음에 드는 철학자로 꼽았거든요. 데모크리토스와 프로타고라스 사이에서 고민을 해봐야겠어요.     


(필로) 저도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를 선택했었거든요. 그런데 프로타고라스는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이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 상대적인 해답일 뿐이라고 이야기주는 것 같습니다. 피타고라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을 쉽게 버리진 못하겠지만, 프로타고라스의 생각은 정말 설득력이 있어요.     


그런데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맞다면 프로타고라스의 철학도 정답이 아니라 프로타고라스의 철학일 뿐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피) 저는 솔직히 감탄했어요. 프로타고라스에게 전적으로 동의해요. 저는 지난 시간에 아낙사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를 선택했거든요. 그런데 마음이 바뀌었어요. 프로타고라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진짜 맞는 말이에요.     


좋습니다. 철학자들의 생각을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방금 첫 번째 소피스트를 만났습니다. 두 번째 소피스트가 파르테논 신전 뒷편 있는 에레크테이온 신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 렌티니 지역, 고대 레온티노이 출신 고르기아스입니다.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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