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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08. 2024

우리는 오늘도 '1일'

[오늘도 나이쓰] 18

분명, 그 날 이후부터였을거다. '시작'이라는 단어가 설렘으로만 가득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 게. 아주 오래전 3월 2일.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다. 새하얀 5층 건물이 싸늘하게 내려다보는 먼지 날리는 운동장. 건물 꼭대기 양쪽 끝에서 운동장을 향해 엉덩이 쭈욱 빼고 양팔을 벌린 듯 대롱거리는 커다란 깔때기 모양의 스피커. 팔을 힘차게 휘져으며 어디론가 저벅저벅 걸어야 할 것만 같은 아주 익숙한 행진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입을 헤벌리고 나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것처럼. 


태극기를 올려다보며 맹세를 했고, 애국가를 불렀고, 선서를 했다. 뭘 맹세하고, 선서했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 대신 또렷한 내 기억의 장면에 들어찬 것들이 있다. 5층 건물이 나에게 달려들면서 넘어질 것 같았다는 것. 파란색 선서문을 쥔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는 것. 긴 줄마다 맨 앞에서 한 명씩 서 있던 선생님들은 유독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정말로 비장했다는 것.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국기를 바라보는 어떤 선생님은 우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는 것.


얼른 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앞 친구를 따라 5층 건물 뒤로 돌아 들어섰다. 맨 앞 친구는 하얀 종이 위에 검은색으로 1-1이라고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떤 선생님을 놓치면 큰일이 일어날 듯 바짝 붙어 졸졸졸졸 따르고 있었다. 뒤에서 봐도 가슴팍이 두껍고 손이 엄청 클 것 같은 자그마한 선생님이었다. 5층 건물 뒤에는 4층짜리 건물이 숨어 있듯 서 있었다. 


운동장에서 봤던 5층 건물보다 앙증맞게 작아 보였다. 그 건물 1층 복도를 주욱 지나 제일 끝 교실로 나는 들어섰다. 그 앞에 앞에 앞에 애들을 따라. 검은 가죽점퍼를 입은 그 선생님을 따라. 교단 위에서 교탁에 양손을 집고 우리를 내려보던 그 선생님. 유독 진한 눈썹은 길고 짧은 새치가 뒤섞여 지저분해 보였다. 양쪽 눈을 위로 들어올 리 듯 삐죽거리고 있었다.  


가운데 줄 맨뒤에 앉은 나는 어디서 배운 적도 없는데,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안된다고 주문을 걸고 있었다. 그때, 그 선생님이 그 지저분한 눈썹으로 이마를 밀어 올리면서 그랬다. '야, 맨 뒤, 너!'. 그게 나라는 건 몸이 먼저 알아차렸다. '저요?'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퉁불퉁한 나무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너, 복도 나가서 유리창 깨진 게 몇 개인지 세어 와'라고. 나는 '넵'하고 미리 합을 맞춘 배우처럼 복도로 튕겨나가듯 재빠르게 움직였다. 몇 걸음 되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씩씩해야 한다, 고 다짐하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요즘 동네에서 산책할 때 가끔 마주치는 분이 계신다. 오십은 넘었을 거고 육십은 안되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체구.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를 하는 동안에도 양팔, 양다리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 온몸을 맞긴 듯 두 팔을 하늘을 향해 벌린다. 양다리도 적당히 벌린다. 그리고 몇십 초 동안 팔과 다리를 경련을 하듯 흔들어 댄다. 마치, 우리 팀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렸을 때 환호하듯 그렇게. 가는 눈길을 어찌 막을 수가 없다. 그러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면  양쪽으로 벌렸던 그 팔을 앞뒤로 사정없이 흔든다. 아주 의도적으로 파워 워킹을 한다. 마치 근위병처럼 과장된 보폭을 넓게 넓게 그렇게 걸어간다.  


3월 2일, 그날 나도 복도로 나갔다 들어오는 동안 아마 그렇게 걸었을 거다. 양팔을 씩씩하게 앞뒤로 흔들고, 시키신 대로 엄청 잘했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쫙 펴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선생님은 교탁 위에 싸인 서류뭉치에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내가 먼저 힐끔 쳐다봤지만 다시 눈이 마주칠까 봐 이내 돌렸다. 그렇게 다시 교실로 들어와 의자에 앉으려는 데 내 옆짝이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면서 키득거렸다. '야, 너 군인이야?'라고. 그때 그 선생님의 시선이 내 왼쪽 귓불 어딘가에 와서 박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야, 몇 개야?' 하는 쇳소리 섞인 카랑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네, 세 갯.....'하고 대답을 하려다 그만 '풉'하고 웃음을 삼켰다. 옆짝이 오른쪽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기 때문에. '야, 이 새끼야. 이리 나와'


이를 꽉 깨물면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시선을 얼른 주어 들어 선생님을 쳐다봤다. 그 새끼가 나라는 걸 이미 알았지만, 모르는 척 되물었다. '저요?'. '그래, 이 새끼야. 안 나와' 그렇게 교탁 앞에 섰다.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내  뒤통수부터 발꿈치까지 가득히 채워지는 느낌을 받는 순간, 그 선생님은 '이 깨물어'라는 한숨 섞인 신음을 짧게 내뱉었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이를 깨물라고? 이 깨무는 게 순간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고 혼란스러워하는 그 찰나. 그 선생님의 거대하게 펼쳐진 왼손바닥은 나의 오른뺨을 거칠게 감싸 쥐었다. 아까 쓰고 있던 검은 가죽 장갑덕이었는지, 손바닥이 은근히 따듯했다. 하지만 그 온기를 조금 더 느낄 사이도 없이 군데군데 벌건 오른손바닥이 나의 왼쪽뺨을 향해 돌진했다. 쫘~악 하는 소리가 교실에서 메아리쳤다. 그 공간에는 나 혼자 남겨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한번 더 울렸다.


나는 주저앉고 싶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그런데 울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절대 안 된다고 다짐했다. '들어가'라는 외마디 명령에 너무나도 기뻐하면서 '넵,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정말, 그냥 감사했을 거다. 따귀를 다섯 번 아니고 두 번만 맞아서 감사했을 거다. 빨리 끝나서 감사했을 거다. 다 나 잘되라고, 그렇게 나를 강하게 훈련시키려고 그 귀한 시간을 그렇게 사용하신 걸 거라는 생각으로 감사했을 거다. 그렇게 3월 2일에 학교라는 곳에서 그 이후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따귀'를 맞았다. 꽁꽁 얼어 있던 열네 살의 깡 마른 내 몸 구석구석을 한꺼번에 뜨거워진 피가 마구마구 돌아쳐 단박에 녹여주고 있었다.   


약하디 약했던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나라의 해방을 외쳤던 그날, 삼일절. 그렇게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3월 첫날을 '쉬는 날'로 살아왔다. 이 말은 3월 2일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꼭 필요한 1일'이 있는 날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하루를 쉬면서도 우리는 늘 다음날을 생각한다. 그날로부터 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학생이란 역할에 있는 모든 이들은 또 각자의 자기 해방을 '꿈만 꾸는' 마지막날이면서 '시작을 실천하는' 1일이다.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건 끊임이 없을 테니까, 어찌 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배우는 사람일지 모른다. 우리의 목표 자체가 어떤 시험이고, 그 자격증은 아니니까.


잠깐만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면, 수많은 '1일'을 만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 가족을 처음 만난 날, 이 집에 처음 이사 온 날, 처음 입학한 날, 처음 졸업한 날, 처음 입사한 날, 첫 승진한 날, 새 차를 타고 온 가족이 처음으로 드라이브 한 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탄 날, 지금은 익숙한 그 길을 처음 걸은 날, 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첫날, 7킬로 그램을 뺀 첫날,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첫날, 한 시간 일찍 잠들기로 한 첫날, 최종 완치 판정을 받은 그날, 엄마가 꿈에 처음으로 나타난 날. 수도 없이 많은 첫날, 1일이 나를 감싸고 있다.


만져지는 것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다 '시작'이 있다. 시작이라는 건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좀 더 재미있고 의미 있는 시간들이 내 삶의 장면들을 가득 채우기를 바라지 않는다. 결국 이 말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우리 삶에서 '시작'은 언제나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무언가의 '1일'이 계속 오늘이라고 불리면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누군가, 어디에선가와 이어진 '1일'속에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영원하지만은 않은 '1일'들을. 마치 한 칸, 한 칸 끊어 쓰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화장실 벽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그래서 안 쓸 수 없지만, 아껴 써야 하는 우리 매일의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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