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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26. 2024

까짓 복수는 던져버리고 난 진짜 청춘할란다

[오늘도 나이쓰]16

마음은 언제나 청춘인데, 예전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다, 고 하면 너무 이르다. 맞다. 그래서 양가 부모님 앞에서는 청춘처럼 움직이고 뛰어다니지만, '몸만 청춘 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면, 분명 그럴꺼다.


지나가다가 문득 우연히 익숙한 향기만 맡아도 그 향기 피어오르는 장면들이 영화 필름처럼 펼쳐진다. 하지만 화면 속에 등장하는 나는 왠지 지금보다 겉만 청춘이었지 싶다.


확고한 생각(이라고 쓰는데 아집이라고 읽히고), 빠른 속도(라고 쓰지만 해치우기 급급했지라고 반성되고), 넘치는 이해력(이라고 적었지만 수시로 날밤을 새는 걸 남들은 잘 몰랐을 거다) 으로 (일 몰아주는 남들에 의해)표현된 그때지만 지금보다 한참 늦게 집을 나서지만 훨씬 더 많이 억울해 하는것 같아 보인다.


마치 모든 생각과 행동이 단 한 가지. 부족한 사람이라 욕먹지 않기 위해 꾸며낸 듯한 느낌이. 부러운 젊음과 화려한 표면에 비해 언제나 바닥인 에너지는 그나마 '나', '안'이 아닌 '남', '밖'으로만 쓰이는 전형적인 표리부동의 모습으로.


내가 뭐 나쁜 거 하고 다니냐, 하고 악다구니를 쓰는 장면에서는 절정이었다. 얼마 전. 잠깐 귀국했던 스물 하나 아드님이 그런 장면을 알턱이 없어 조금 다행이긴 하다. 어디 가는 길에 뒷자리에 올라타서 한날 그랬다.


'참, 아버지한테 배워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도 상대방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그 화법을'


내가? 설마! 하고 살랑거리면서 물어보, 는 건 내 안에서만 했다. 끊임없이 멋드러진 복수를 계획했다 지웠다 하고 있는 내가? 여전히 어느 대목에서 녀석이 그렇게 예쁜 눈으로 봐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건 순수한 아이의 눈에 찰나적으로 보인 건 아마 시간이 만들어준 나의 선물 상자 덕분이지 싶다. 내 마음을 쪽지에 적어 꼬깃꼬깃 넣어 두고 있는 그 상자. 그렇게 쪽지를 적는 동안, 이미 내 마음은 밀당 중인 악마와 천사 사이 허공에서 짐짓 익숙한 척 줄타기를 하고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주 단단한 벨트로, 머리를 동여 매고, 가슴통을 묶어 버리는 듯한 통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흐릿하지만 조금은 알게 된 것도 다 악마의 발자국이 선명한 쪽지가 넘쳐나는 선물 상자 때문이다. 그 쪽지 중 하나에 이렇게 써 두었나 보다.


나이를 '잘' 든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얼른 인정하고 더 걷자. 걷다가 마음이 가벼워지면 좀 달리자. 그러고 나에게 맛난것도 사주고, 편안하게 읽으리고 시간도 내어주고, 쓰고 싶을 때 쓰도록 나를, 내버려두자. 그렇게 자신을 지키느라 상대를 함부로 상처 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내 방식으로 실천해 보자.  어제의 나한테 말을 걸면 오늘의 내가 대답해 주는 나와의 대화를 게을리하지 말자.


따님이 좋아하기 시작한 어느 죽은 가수의 노랫말처럼. 그도 나도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는데, 악마의 삼지창이 되어 눈으로, 혀로,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르는 그 시간에 내가 나한테 잘해주면, 나를 많이 사랑해 주면, 내가 나를 제일 먼저 아껴주면, 그래서 그렇게 밋밋하지만 단단하게 살아내는 걸 그대로 쓰면 그만이다.


쓴다는 건 텍스트로 찍힌 빛바래지 않는 컬러 사진 같다. 그때의 냄새도, 촉감도, 눈빛도 그 마음도 생생하게 다 기억나는. 그렇게 쓰여진 것들은 '지금의 나'보다 '존재하지 않는 나'일 때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거다. 그렇게 진짜 청춘은 총천연색으로 영원히 반짝일 나의 쪽지 안에 다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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