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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19. 2024

쇠파리 덕에 소꼬리처럼

[오늘도 나이쓰] 14

아주 어릴 때의 또렷한  기억 한 장면. 덩치가 어마어마한 누런 소 수십 마리가 들어 찬 우리. 그 옆에서 한우 전문가가 될 모양새로 하염없이 소를 관찰하던 한 아이가 있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도, 오싹한 찬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똥방이다. 지푸라기가 여기저기 깔려 있지만, 똥방이다. 이 똥방은 참 실용적이고, 현실적이다. 두엄으로,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소의 보습, 보온 유지를 위한 최첨단(!) 오가닉 순환 시스템이니까.  


그러나 농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뒤 고기 소가 된 후에는 더 이상 일하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 똥방에 갇혀 지내는 나날이 대부분이 되었으니. 그때 어린 그 아이는 앞과 뒤 장면을 연결시키지는 못했겠다 싶다. 그저 크고, 오줌이라도 갈기면 신나서 후허, 허 거리는 모습이 재밌어서 턱을 괴고 있었겠지. 그런데, 그 아이의 왜곡되지 않은 기억 속에 또렷하게 있는 모습은 쇠파리와 소꼬리다. 

 

발, 허벅지, 엉덩이, 아랫배, 가슴에 자기 똥이 딱지가 되어 덕지덕지 살갗처럼 붙어 있지만, 지금도 비싸 그 어린아이는 여전히 잘 먹지 못하는 꼬리, 그 소꼬리는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분명 가끔 눈물을 흘렸던, 눈곱 낀 눈망울 다음으로 저 소가 살아 있구나 하고 어린아이가 안심을 하게 만들어 준 게 꼬리였다. 무심한 듯, 그러나 잽싸게 척, 척하면서 끊임없이, 아주 끈질기게 달라붙으려 하는 쇠파리를 쫓아내어야 했다. 


혼자 (비밀스럽게 까지는 아니어도) 쓰던 글을 온라인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기 시작한 게 딱 일 년 전이다. 라라크루 3기. 첫날, 첫 글 2023년 1월 10일. '2023년 준비 끄~읏(1)'https://brunch.co.kr/@jidam/396이라는 제목으로 직업병(?)에 대한 변명의 글을 썼었나 보다. 벌써 일년, 벌써 새해 첫날도 후다닥 달려간다. 그 글 끝에 숫자가 396. 오늘 이 글 링크에 달린 숫자가 1745. 


그 숫자 사이의 숫자들이 채워지는 동안, 나는 계속 글을 썼다. 다들 그렇듯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계속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써왔다. 끊임없이 달라붙는 쇠파리들을 쳐내야 하는 소꼬리처럼. 그 숫자 사이에서 참 좋은 이들을, 책들을 만났다. 글을, 사람을, 글로 사람을 만나는 걸 정말 행복해하는 사람들.


행운이다. 내가 얼마나 마음만 가지고, 갑자기 멋들어진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한테 내 보이려고 했는지를. 얼마나 인정의 욕구에 갈증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척, 척, 척 해내고 있었는지를. 괜찮아 보여야 했고,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했고, 실제로 멀쩡해야만 하는 이 세 번째 직장에서 25년을 살아내면서 생긴 직업병(!)이라 핑계를 대 보면서. 


난 글을 정말 못 쓴다. 마음으로만 쓰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려고만 든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나 스스로. 글 쓰는 선생으로 사는 게 그나마. 내가 원래 가지고 있(었) 던 깊은 우물 속 무의식의 두려움, 자괴감, 주눅, 오만, 불안, 자만, 나태, 편견, 욕망의 쇠파리들이  못쓰는 글을, 그렇게 읽고 싶지 않은 글을 쓰면서 나로부터 오히려 선명하게 옅어지고 쫓겨나는 데 한몫 크게 하고 있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나는 글을 쓰면서 똥방에서 스스로 걸어 나와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거의 다시 태어나는 수준이지 싶다. 더 밝아졌고, 더 긍정적이 되었고, 훨씬 더 쓸데없는 욕심이 사라지고 힘은 더 세지고 있는 중이니까. 이러한 놀라운(내가 스스로 제일 놀랍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게 참 아쉽다) 내 안의 변화에 매일 두세 시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브런치와 라라크루 활동(벽 타기 전문이지만 나름 충분한 활동 중이랍니다)이다.    


이제 와서 보니 나는 나를 정말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한다, 고 남매들이 젖먹이 때부터 맨살 위에 올려놓고 흔들면서 했던 이야기. 그걸 이제야, 브런치 덕분에, 아름다운 라라크루님들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는 중인가 보다. 어머님과 함께 아름다운 책을 출간하신 어느 작가님 말씀처럼 '그리워할 추억'이 없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쓰면 쓸수록 새록하게 더 느끼게 된다. 


쓴다는 건 사랑에 대한 다짐이지 싶다. 기억과 기대 사이를 이어주고 있는 여기에서 지금부터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스런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말이다. 


'아, 이 사람아? 그럴 시간에 그리워질 지금을 오래도록 추억할 준비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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