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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20. 2024

우리 오늘도 같이 안녕해야 하는거 맞죠?

[오늘은 슈퍼데이, 오늘도 나이쓰데이]

오늘도 안녕하세요~ 라라크루님들^^. 오늘의 슈퍼크루 지담입니다.


어제 너나들이 작가님 한라산 윗세오름 탐방 글 덕분에 문득 저란 사람이 중간에 어디를 들렸다 지금 여기까지 왔나 싶어졌어요. 어느 전업 주부는 대 작가의 길을 선택하고, 어느 철학자는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은 완전체가 되고, 우리 대장님은 글을 쓰기 시작한 '마흔'에 결코 불혹 할 수 없었던 저는 혼자 맨몸으로 천왕봉을 올랐더랬어요. 뜨거운 여름날 새벽. 습식 사우나 한쪽 벽이 뻥 뚫린 듯한 표현못할 황홀경에 잠시 빠졌던 정상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


좁은 산길에서 한 무리의 남학생들을 마주쳤죠. 한 서너 개 학급 정도의 인원이었어요. 벅찬 심장이 아직 뜨거울 때라 그랬을까요. 처음 마주친 아이들과 눈이 맞아 제가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냥 원래 쓰던 그 흔한 인사말, 그거였죠. 산에 오른다는 건 자기 몸을 힘들게 만들어서 자기 마음한테 고백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사람들만 하는 행동이니까요.


그런 후 글쎄 몇 분 동안 스쳐 내려오는 내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이라는 말을 수백 번은 들은 것 같아요. 분명 그날부터였죠. '안녕'이라는 그 흔한 말이, 늘상 쓰던 그 말이 제 가슴속에 콕 박혀 버렸는지. 해가 중천이었던 중산리 주차장에서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 때문에 차를 바로 출발 못 시켰는지.


저는 정선이 고향입니다. '재 너머 사래 긴 밭~'의 사래랍니다. 사래 그리고 사래와 이어진 뒷산, 앞산, 그 뒷산으로 어릴 적 뛰어다녔지요. 그러면서 산과 산 사이 계곡에서 고기 잡고 놀다 보니 자연스레 이어진 동강을 따라 그 옆 동네, 영월도 우리 동네처럼 놀러 다니고, 강가에서 천렵도 꽤 여러 해 했습니다.


영월. 높은 산이 마치 펄럭이는 깃발처럼 둘러친 너른 들판을 지나 '안녕히, 안녕히 잘 넘어들 가시라'는 정말 고맙고, 사랑스럽고, 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동네 이름입니다. 그래서 결혼하고도 얼마나 자주 영월, 정선으로 가족들과 여행을 다녔는지 몰라요. 수수부꾸미, 핸드메이드 만두, 메밀 전, 도토리묵을 사 먹느라. 그 덕에 우리 남매들은 일곱, 여덟 살 때부터 피자, 치킨보다는 '칼칼한' 이런 것들을 더 좋아했나 봅니다.  


그렇게 새벽 천왕봉을 올랐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푸른 깃발 사이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가슴에 다 담은 흥분으로 다시 4시간 운전해 집으로 돌아와 집청소, 분리수거는 물론 미루고 미루고 했던 베란다 페인트칠(십 년 동안 여러 교재를 만들어 내고, 코로나의 불안과 우울을 막춤으로, 글로, 사랑으로 달래고, 매일 새벽 서서 읽고 쓰는 곳으로 재탄생한 곳이랍니다)을 자정이 넘도록 다할 수 있었던 에너지는 분명 '안녕'이었지 싶어요.


어쩌면 먹고 사느라 왔다 갔다 하면서 습관적으로 던지듯 하는 인사말이 또 '안녕하세요'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조차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세상일은 딱 두 가지이지 싶어요. '마음'을 담고 하냐, 안 하냐. 그러고 나서 보면, 안녕을 외치는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유, 친절, 염려, 배려, 진심, 관심, 안전  이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다 투명하게 비치는 게 보여요.


웃음도 행복도 전염되지만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집에 들고 날 때 누워있다, 졸다, 운동하다가도 그 몇십 초 잠깐 멈추고 문 앞으로 나와 서 있기만 해도 하루를, 자기 일을 마치고 다시 잘 돌아온 이들의 얼굴이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러면 자동으로 팔 벌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고.  


저는 (글속에서 만이라도)아버지를 경호 씨, 장인어른을 성환 씨, 엄마를 순자 씨, 장모님을 옥희 씨라고 불러요. 천왕봉 갔다 온 무렵이었지 싶어요. 마흔 조금 넘었던. 머쓱하게 인사면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몇 주 만에 뵌 경호 씨, 옥희 씨를 보는 데 그냥 안기고 싶었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훨씬 더 진했던 날이에요.


그런데 길거리에서 잠깐 안은 그 품에서 '아, 나처럼 이분들도 그냥 자기로 태어나 갑자기 스물 하나에 나의 아빠가 되고, 이대로 살아도 좋을까 고민할 때 나의 장모님이 되었구나. 느닷없이 그 호칭뒤로 숨어들어 그 역할을 해 내느라 나보다 훨씬, 오래 더 험하게 몸 쓰고, 마음 졸이며 살으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갑자기 올라오는 거예요.


또 그때부터였나 봐요. 너무 자주 쓰고, 나눠서 신선하지도 않은 '안녕하세요'. 잘 살다, 잘 헤어지는 그 꽤나 긴듯하지만 지나고 보면 찰나같은 그 시간 동안에 이 한마디 밖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서로 남는 게 없겠구나 다짐하게 된 게 말이에요. 여전히 피곤하면 성질부터 올라오고, 피곤 안 해도 내 것부터 챙기는 남편, 아빠, 아들이지만.


엊그제 주말. 순자 씨가 경호 씨랑 십 년 넘게 살고 계신 집을 거의 다 버렸어요. 그 이야기는 조만간 다른 글에서 하려고 해요. 그런데, 그렇게 다 덜어내서 스물몇 평 아파트가 대궐 같아지니 경상도 싸나이 경호 씨가 아내를 저를 끌어안으며 '야, 너희 둘 덕분에 이고 지고 살던 걸 이렇게 버려 버릴 수 있구나'하시더라고요.


그러는 동안 눈가가 촉촉해진 순자 씨는 얼른 콩가루에 들깨 솔솔 뿌린 봄동찜을 청국장과 같이 한상 가득 내오셨어요. 스무 살. 어리디 어린 두 남녀가 동네에서 만나 순자 씨, 경호 씨에서 갑자기 엄마, 아빠가 되고 시부모가 되어 혼란스러워 더 했을 몽니 대신 먼저 내밀어 안아주는데 그리 오래 걸린 거겠지요.


이제부터 우리같이 '그냥 안녕'해야 하는 이유같아요. 안녕을 제대로 나눠보지 못하고, 원래 그렇게 사는 거냥 살아왔기 때문이지 싶어요. 아내와 자주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런 말씀 많이들 나누시지요? 우리 세대는 분명 부모 세대와 다음 세대 사이에 양다리 걸쳐 있느라 정신적인 가랑이가 매일 찢어질 듯하다고. 우리나라 온 동네 상황이 딱 이렇죠.


글을 쓴다는 건 어디가 좀 모자란 경우인 것 같아요. 그 모자란 부분을 글 속으로 숨어들어 외치고, 반성하고, 시도하고, 다시 채우려고 시도하고. 살다, 읽다, 시도하다, 다시 살다, 읽다, 시도하는 그 과정을 써서 남기려고, 위로받으려고, 동병상련으로 기운 다시 내려고.


시키지 않는데도, 돈은커녕 밥도 안 나오는데도 꾸역꾸역 쓰려고 하는 저를 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행인 건 그렇게 쓰다 보니, 그분들을 더 잘 안아드릴 수 있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눈물 흘리지 않아요. 무한히 감사하고, 죄송하지만 당신들이 더 짠하고, 위대한 게 많다는 걸 조금, 아주 조금 느끼게 되면서 그런가 봐요.


세대에 걸쳐 놓은 가랑이가 찢어지기 전에 유연해지려면 우리 때부터 바뀌어야 하는 거 맞죠? 가랑이가 이어 놓은 두 다리가 세대를 연결하는 튼튼한 오작교가 되어야 하는 거 맞죠? 나를 둘러친 수많은 깃발들 사이 넓은 사래에서 사람답게 잘 넘어가려면 우리 오늘도 같이 안녕해야, 서로의 안녕을 챙겨줘야 하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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