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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Feb 29. 2024

오늘 하루 더 나이쓰합니다

[오늘도 나이쓰] 22

얼마 전, 올해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였지요. 앞자리 선생님이 웃으면서 혼잣말처럼 그러더군요. '이런 자기소개서는 처음이네요, 처음'하고.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학생이 자기 가족 소개를 하는데 그랬답니다. '열한 살, 말이 없고 우리 집에서 가장 밝음. 언제나 웃고 있음.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지켜줌'. 그래서 누굴까 했답니다. 그런데 그 밑에 '하는 일'에다 '하루 종일 혼자 집을 지킴'이라고 써놨다네요.


저는 말이 없고, 가장 밝음 부분에서 이미 혼자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려견입니다.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던 다섯 중 저는 반려인입니다. 올해 열아홉이면 우리 따님과 동갑입니다. 06년생들. 그 아이들 십 년, 십일 년 전이면 아홉 살, 열 살 때지요. 그때 새끼였던 강아지들을 낮이나 밤이나 같이 자고, 놀고, 먹고, 같이 여행 다녔으니 가족이지요, 가족.


교감 역할을 하는 지인이 언젠가 그랬습니다. 아침에 출근은 한 한 분(임용된 지 삼 년 차)이 안 좋은 표정으로 그랬답니다. '오늘, 어쩔 수 없어 출근은 했는데, 며칠간 근무를 못할 것 같습니다.'. '아, 왜 그러신가요?' 그랬더니, '네, 어제 우리 강아지가 죽어서....' 하면서 말을 잊지 못하고 교무실에서 눈물을 흘렸다는군요. 역시 반려인이 아니었던 그 지인은 난감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물어왔습니다.


타닥이는 우리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아홉 살 몰티즈입니다. 06년생인 따님이 열 살을 막 지나면서 데려와 지금껏 함께 하고 있네요. 위에서 이야기한 06년생처럼 이 새벽에도 방금 저를 찾아와 비비고 안기면서 따스한 온기와 꼬릿 한 냄새를 풍기고, 새벽밥을 한가득 먹고 다시 자러 갔습니다. 온 식구들이 매일 투닥거리는 것 중 하나가 어젯밤에 다 자기와 같이 잤다고 기뻐하는 일입니다.


타닥이와 함께 산 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타닥이가 저에게 가르쳐주려고 했던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 많은 것들은 결국 하나로 흐르고요. 우리는 서로 언제 어떤 순서로 헤어질지 모릅니다. 그런 면에서는 타닥이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옆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손을 핥고, 까만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새벽밥 준다고 엉덩이 댄스를 치고, 이 냄새 저 냄새를 맡으면서 황홀경에 빠지듯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타닥이는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타닥이의 삶의 형식은 언제나 오늘입니다. 매일이 오늘입니다. 오늘에만 집중합니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은 오늘입니다. 오늘의 고유한 공기와 햇살, 구름, 바람이 이어주는 걸 올곧게 다 가져가는 오늘에만 삽니다. 어제를 반성하지 않아, 과거의 아픔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오늘을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다가올 미래에 쓸데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타닥이를 안으면, 쓰다듬으면, 신나게 실룩거리는 엉덩이를 뒤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불현듯 어제에서 내일로 이어지는 과정일 뿐 것처럼 오늘을 대하 저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타닥이는 오늘은 단 한 번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타닥이하고만 있으면 근심과 불안이 없어집니다. 타닥이가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매들이 가끔 '타닥이처럼 살고 싶다'라고 하는 이유일 겁니다.


어제 늦게 들어오는 아내를 맞이한 뒤 평소보다 두 시간 가까이 늦게 잠들었습니다.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아도 타닥이는 엄마방에서 새벽 4시에는 제 옆자리로 다가옵니다. 잠결에도 뜨끈한 콧바람 소리와 냄새가, 엉덩이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그러면, 아 지금 4시겠구나 합니다. 오늘은 늦잠을 자는 저의 옆에서 벌렁 누워 자기 등을 내 겨드랑이와 옆구리에 블록처럼 탁 맞추고 나를 기다립니다.


오늘은 2월 29일입니다.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는 윤일이지요. 그레고리력에서 1년마다 생기는 시간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대략 4년마다 배치한 날이 오늘이랍니다. 타닥이는 29일인 오늘 덕분에 4년 만에 다시 하루 더 오늘을 우리와 같이 살 수 있어 너무 좋은가 봅니다. 유난히 이 새벽에 더 비비적거리면서 말을 걸어 옵니다. '아빠, 일어나. 오늘 하루가 더 생겼어. 오늘도 오늘이야. 얼른, 오늘을 만끽해야지 않겠어?'


타닥이와 같이 살기 전에는 생각으로 알았습니다. 같이 산다는 게 뭔지. 타닥이와 살면서 마음으로 느낍니다. 같이 산다는 게 뭔지. 그 덕에 그 마음을 더 표현하고, 행동합니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는 게 이렇게 서로의 오늘에 집중하고, 오늘 안에서 서로를 쓰다듬고, 오늘 한번 더 안아주고,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이 새하얀 심장덕에 잊을만하면 느끼게 됩니다.


'타닥이처럼' 오늘에 집중하는 연습. 1년이 아니라 매일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마음간의 오차를 보정해야만 하지만 그래도 그 연습을 흉내라도 낼 수 있어, 하루 더 생긴 오늘이 그저 고맙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어제 내가 어떤 아들이었는지, 아빠였는지, 남편이었는지 그리고 내일 또 어떤 사람일지는 오늘 내가 어떻게 쳐다 보고, 무슨 말을 건네고, 어떤 손짓을 하는지가 다 말해준다고 타닥이는 매일, 오늘 이야기를 해주고 있는 게 아닐런지.  


4년 뒤, 28년 오늘은 월요일이네요. 그날 오늘도 지금 오늘처럼 짙은 새벽에 뜨끈한 콧바람으로 월요병을 한 방에 날려버려 줄 겁니다. 그때 사람나이로 저보다 몸나이가 훨씬 더 많아 질 견공께 아랫배에 힘주고 말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견공 덕분에 이렇게 오늘에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다 같이.' 더 잘 살고 싶어지는 마음이 용솟는 오늘입니다. '타닥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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