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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4. 2024

아재의 평화롭게 처절한 몸부림

[오늘도 나이쓰] 24

아침에 상쾌하려면 밤을 잘 마무리해야 한다. 굿모닝~하고 명랑하게 던질 수 있는 아침은 전 날 굿나잇~ 을 했어야 진심으로 할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보다 저녁에, 밤에 잘 잠자리에 잘 드는 게 더 어렵다. 당연한 이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다. 평화로운 일상은 이렇게 무심하게 앞뒤가 제대로 이어져야 가능하지 싶다.


집을 나서 낯선 곳에서는 시도 때 없이 충전기를 찾는다. 공항, 기차역, 버스 터미널은 물론 이동하는 탈것들 안에서도 내내. 나라와 인종을 불문하고다. 그 모습이 마치 마치 꿀물 한 방울에 모여든 개미떼 같지 않을까 싶다. 며칠 전, 한 장의 사진을 본 뒤로는 더더욱.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역에 구호 물품을 낙하산으로 투하하는 장면이었다. 까맣게 보이는 수많은 점들이 우리, 인간이었다. 먹어야 사는 인간들이었다. 한참을 물끄러미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마음이 먹먹해왔다. 모든 게 부족하고, 위험한 인간들.


나의 일상에서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 경우를 돌아보면 언제나 꿀물 한 방울은 같은 잠을 잔 후이다. 제대로 생각을 하고, 제대로 마음을 쓰고, 제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날은 더욱 어김없다. 자는 동안 업어가도 모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정 시각에 잠들고 일정 시각에 일어나는 규칙성에 있다고 한다.


잠만큼 나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건 유머다. 특히, 성취 경험이 높은 상황에서 앞뒤 연결고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제나 유머가 뒤섞여 있다. 성취 경험이란 일상에서 크고 작은 성공의 경험이다. 계획대로 일을 진행하고, 약속대로 목표를 달성하고, 스스로 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간격을 조절하는 힘의 원천이.


그 힘을 키워가는 지름길은 쌀로 밥 짓는 것과 같지 싶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다른 이의 생각을 많이 읽는다. 그러는 동안 수많은 단어, 문장들 중 뜻을 모르거나 헷갈리는 것들은 KEEPING(구글 KEEP에 기록)하기.


처음 보는 단어, 다시 보고 익혀야 하는 문장들을 한없이 쓰면서 무한 반복하기. 딱 영어단어 외우듯이 하는 거다. 그러는 동안 정확하지는 않지만 자꾸 그 의미와 뉘앙스를 가지고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그 단어가 내 안에서 내 것이 되어 내 밖으로 나온다.


단연코, 그 과정에서 튀어나오는 게 아재들의 언어유희다. 경상도 사투리인 아재는 마치 요즘 많이 쓰는 '이모'같은 표현이다. 딱히 뭐라 부르기 어려울 때, 그냥 다 아재요 한다. 그 속에는 '나이 먹은 사람'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같은 의미의 프랑스어  âgé는 발음까지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재의 의미는 같다.


원래 '나이 먹은' 것만 내세우는 그런 아저씨들을 젊은 사람들이 마땅치 않게 여기면서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아재개그라고 표현할 때의 아재는 실제는 절대적인 나이와는 관계가 없지 싶다. 열몇 살의 마음속에도 그런 개그 본능이 충분히 녹여져 있는 걸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걸 보면.


결국,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말하고, 읽고, 자기 안에서 뱉어내면서 웃기고, 웃으면서 가까워지고 친하다는 동질감을, 공동체 의식을 갖고 싶어 하는 본능이다.


-가곡 비목을 멋들어지게 시작한다. '조용히 스쳐간 깊은 계곡~ 아, 아니지. 초연히 쓸고 간이지'.

-야채가게 앞에서 또 시작한다. '이 나물 이름은 뭐야? 시나몬>? 오~ 취나물이군'

-'참, 어제 우리 같이 갔던 그 카페 이름이 뭐였더라? 나들목?'. 아니다. 아냐,  느림목.

-'얘들아,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이니까. 엄마 혼자 좀 더 푹 쉬게 양심껏 늦게 들어가자~' '잉? 아빠, 양심껏 아니고 눈치껏 아냐?'.

-푸드코트 스테이크집 앞에서  '얘들아? 저거 부채살 토시살 어떤 게 더 맛있을까? 부채살? 아 저거 두 가지? 용량  차이구나. 용량 맞지? 용량!'. '아니야, 중량이겠지'.

-'여보, 이 렌탈콩 정말 맛있다. 나 콩 싫어하는데 이 건 좋은데?', '어 그래, 렌틸콩'

-'저기, 저기. 프랑스 사람들이 라면 먹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뭔지 아는 사람? 몰라? 아무도 몰라? 이거 너희들이 제일 싫어하는 건데. 불었으니까'

-'아빠, 오늘 패션이 서부 유럽에서 온 것 같아! 뭐? 섬유 유연제 같다고?'

-'아 다 왔다. 여기 한방대! 잉? 방통대겠지!'

-'아, 공항을 통과하는 데 앞에 있는 사람 가방검열이 유독 심하더라고. 그래서 뒤에서 쫄았어. 검열? 혹시 검역 아니니?'

-(아구찜 먹다가 하얀 바지에 빨간 콩나물 덩어리를 떨어뜨린 아재가 외친다)'에이전씨, 에이전씨.. 저기, 저기, 나 물티슈 좀, 휴지 좀'. '임어전씨 아니니?'

-'나 머리 잘라야 하는데, 그때 거기 메드 종 예약해야겠어' '그래, 그래. 메종 드에 예약해야 할걸!'

-'와우~ 사진 멋지다. 흑백 필터를 사용하니까, 아이유 같아. 잉? 그런데 컬러로 그대로 찍으니,. 아휴'

-' 아 봤어, 봤어. 그 영화 <귀향>. 그거 시한부 영화지? 엉? 위안부겠지!'

 


공부를 하지 않았는데, 당장 어디서부터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의외로 자주 받는다. 나의 대답은 항상 '만일'이 아니라 '오늘'이라고 조언한다. (나이에 관계없이)아재개그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지금 자신이 있는 오늘에, 옆에 있는 사람한테 집중하려는 노력이 뛰어나다.


유머 감각 없이 고집불통의 나이 먹은 아저씨들은 개그를 치지 않는다. 왜?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냥 심술보 하나를 달고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고집스럽게 살아가도 본인은 아쉬울 게 없다. 그럼, 아재개그라고 잔소리를 들어도 비뚤어지지 않고, 계속 언어유희를 시도하는 아재들은 누군가.


우리 아빠(엄마도), 삼촌(이모, 고모도)이다. 언제나 유쾌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그들이 개그를 던지는 건 꽤나 정서적, 신체적 상태가 괜찮다는 신호다. 먹고사는 게 녹록지 않아도 웃음 한 덩어리로 헤쳐나갈 수 있다는 멋진 의지력을 가진 이들이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친분을 쌓으면서도 스스로를 웃기게 만들어서 다시 무언가를 시작해 보려는 큰 그림이다. 비실비실한 농담이더라도 행복할 때 절로 나오는 거니까. 더 행복하고 싶을 때 하는 거니까. 지금을 잊고 싶을 때 더 필요한 거니까.


아재 개그는 내 삶이 괜찮다는 신호니까 그냥 안심하면 된다. 이왕이면 손뼉을 치면서, 허리를 마음껏 제치면서, 소리 내고 웃어주면 된다. 아니, 옅은 미소만으로도 맞장구만 쳐주면 된다. 그러면 다시 나는 같이 행복할 준비를 할 테니까.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행복해하는 사람옆에 있는 거니까.


나는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는 최선의 방법은 '유머'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도 시도한다. 그냥 박수만 보내주라. 그러면 나는 좀 더 당신 편이될 단순한 사람이다. 그러니, 안심하고 미소만 지어주라. 소리 내어 같이 웃어주라. 지금이 가장 평화로 울 때니까. 총, 칼 보다야 아재 개그가 더 정의롭지 않나! 그리고 실제 아재들은 귀도 잘 들리지 않을 때가 서서히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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