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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1. 2024

좋아진다는 것은

[오늘도 나이쓰] 25

2월 말. 3월이 되기 전 나하고 약속을 하나 다. 아침에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자고. 퇴근 후의 일정과 달리 출근 전 시간은 오로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으니까. 새벽에 책을 읽고, 가끔 쓰는 그 시간의 끝을 원래의 6시에서 5시 반으로 30분 줄였다.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시간 활용 순서를 수정한 것은 아내와 출근을 같이 하는 경로가 바뀐 것에서 시작되었다. 덕분에 퇴근 후 갈까 말까, 할까 쉴까를 늘 고민하는 문제를 단박에 지웠고 낯설고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처음 출근하는 아내의 걱정도 함께 가라앉혔다. 


줄인 30분 동안 샤워를 한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침을 해 먹는다. 아침 메뉴는 언제나 삶은 계란과 두부였다. 그런데 설 연휴가 지나는 무렵. 아내가 넓은 파스타면처럼 생긴 두부면을 처음 사 왔다. 원래 있었던 제품이었겠지만, 나에게 와서 내 것이 된 건 처음이었다. 신세계였다. 


그렇게 아침 메뉴가 두부면에 양배추를 총총 썰어 데친 양배추두부면파스타가 된 것도 두어 달 지나다. 아침에 넉넉히 볶아서 도시락까지 같은 메뉴로 싸가지고 다닌다. 며칠 전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본 옆자리 분이 사진까지 찍어 가셨다. 그렇게 먹어 보고 싶다고. 몸은 물론 마음까지 편해지는 메뉴라는 데 격하게 공감하면서.


다만 계란을 삶은 8분 동안 1분씩 몇 가지 하던 근력 운동을 제대로 나누어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프라이팬 위에서 양배추와 두부면을 섞어서 타지 않게 볶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러 개로 나누어하던 근력 운동을 한 가지에만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플랭크다.


작년 가을. 재활 병원에서 플랭크란 말도 코어 근육이란 명칭도 처음 들었던 때. 치료사가 일러 준 바른 자세로 30초 버티는 게 쉽지 않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배꼽 주변의 복근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상체를 지탱하는 양팔과 두 다리 근육이 같이 버텨줘야 한다는 것을. 


살다가 중심이 흔들린다는 건 그것과 연결된 것들이 먼저 흔들린다는 것을 몸으로 다시 느끼게 된다. 처음 몇달간은 플랭크 자세를 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온몸이 강풍에 방향을 잃고 축져지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같았다. 이마와 콧잔등에 금방 땀이 배어 나왔다. 무엇보다 호흡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한번에 연속 90초씩은 하려고 시도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때는 그 시간 조차 도망가고 싶을 만큼 길다. 그러다 꾀를 하나 냈다. 차가운 계란 삶을 물이 끓어오를때까지 버티자고. 계란을 삶기 위해 먼저 물을 올려놓는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계란 3개(1개는 아내 도시락용)를 퐁당 넣고, 타이머를 8분으로 맞춘다. 


양배추두부면은 센 불에서 약 3-4분만 볶아내면 되는데, 삶은 계란과 시차가 약 5분 정도 난다. 그 타이밍에 나는 플랭크를 시작한다.물 흐르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세 가지 동작이 테트리스 블록처럼 잘 맞춰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플랭크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효과(!)가 나타나는 중이다. 


타이머를 5분에 맞춰 놓고 엉덩이가 봉긋하게 올라가거나 배꼽이 바닥이 닿지 않은 상태로 언제나 도전한다. 그러다 오늘 처음 연속 274초를 바른 자세로 성공했다. 그 덕에 양배추두부면을 먹을때는 알아서 등이 꼿꼿해진다. 삶은 계란 하나를 갈라 반은 내가 먹고 남은 노른자 반을 반려견이 냄새까지 핥아 먹는 동안


그런후 아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아침 운동 30분을 단지내 헬스장에서 하고 돌아올 만나는 햇귀의 찬란함이 새벽 공기의 선선함이 다 내 것인 것만 같다. 

 

플랭크 시간이 늘어날수록 낮에 출근해 서서 근무할 때 피로도가 훨씬 더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먹은 날과 안 먹은 날의 차이를 느껴보라던 어느 광고처럼 플랭크를 제대로 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은 꽤나 다르다. 


서서 업무를 보다 보면 내 안의 중심이 어디인지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작가의 경험담처럼 체력이 떨어지면 필력이 떨어져 자신감마저 떨어진다고 한 말이 진리라는 걸 매번 느낀다. 필력이야 원래 그냥저냥이었지만 자신감마저 떨어뜨려서는 안되는 거니까.


그나마 내가 나를 설득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쉽다. 그 믿음으로 플랭크 시간이 늘어나면서 그제야 너는 정말 많이 좋아지고 있어, 걱정말고 중심이 잡힌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나이가 차면서 많이 해준 분들이 내 주변에는 넘쳐났구나 하는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사람은 언제나 흔들릴 수 있다. 아니, 흔들려야 사람이다. 나도 사람이어서 매번 흔들린다. 매번 바른 자세로 살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지, 다 다른게 맞지 하면서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반응하는 그런 사람. 내 안의 미세한 흔들림을 감지하면서 멈출때와 버틸때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


어릴때 항상 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잔소리로 따듯한 시선으로 그리고 박수로 지켜봐 준 사람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스럽지 못할 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어른이니까 흔들려선 안된다고 강박적으로 고집피울 때 자연스레 흔들리면서 물 흘러가듯 살아내는 모습을 몸소 보여준 사람들. 


그 소중한 분들의 경외스러운 가르침은 그런 거였나 보다. 좋아진다는 것은 항상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살다보면 덜 행복한 때가 반드시 올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럴때는 그럴때에 맞춰 마음껏 흔들려도 된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다시 내 안에 스스로 이겨내고 나올 힘이 들어차 있다는 것을 스스로 믿는 거라는 것을.


연속 플랭크 시간이 늘어날수록 이제라도 내 주변 이들한테 받은것의 반만큼이라도 천천히, 꾸준하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서로 중심이 바로 선 차분하게 잔잔하게 명랑한 사람이 되어서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하니까. 모든 것의 변화는 언제나 내 안의 중심에서 부터 인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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