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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92병동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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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8. 2024

통증과 예술

[92병동 일지] 07

(11월 말에 써 둔 후 하 수상해서 발행이 늦어진 글입니다))


9층 내 자리에서 널찍한 창밖으로 내려다 보이는 5층 옥상. 하늘정원이라 이름 붙인 옥상 정원이다. 산책로 주변으로 들국화, 화살나무, 돌단풍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가지 야생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산책로는 정원을 크게 돌아 있고, 그 사이를 가로질러 물결처럼 그어져 있다. 햇살 찬란한 토요일 오전. 환자복을 입은 남자 노인이 가운데 길 벤치에 앉은 또 다른 여자 노인 환자 앞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한다.


남자 노인의 백발에 비친 햇살이 하얀 환자복 등을 타고 넘실거린다.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손뼉 치듯 그 여자 환자가 몸을 구부정하게 내밀어 남자 노인에게 휴대폰을 들이민다. 함께 입원한 노부부였다. 남편은 신이 난 아이처럼 벌떡 일어나 가슴을 펴고, 만세 하듯이 아내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나는 여전해!.'라고 했을 거다. 동작은 작고 느리지만 9층의 내 눈까지 가득 상쾌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새하얀 남편의 등을 쓰다듬은 뒤 아내도 의자에 기대어 몇 번 팔 굽혀 펴는 시늉을 하다 양손으로 하늘을 떠밀듯 하는 남편의 손을 잡아 끈다. 산책 때 어머님이 먼저 앞서가려는 장인어른을 불러 세워 손을 잡아끌듯이. 노부부는 산책로를 지나 크게 한 바퀴 느릿하게 걷는다. 야생초를 보고, 서로 한번 쳐다 보고, 조각상을 보고, 서로 두 번 쳐다보면서. 노부부를 따라 눈으로 걷느라 방금 맞은 수액이 절반 가까이 몸속으로 흘러들었다.


모든 통증은 '상실의 위험'이다. 원래 기능을 잃거나, 잃어가는 중에 나타나는 심신의 반응이다. 직접 느껴지는 통증도 그렇지 않은 통증도 모두. 동시에 통증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상실이 된 (신체적, 정신적) 부위에 문제가 생겼으니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신호가 살아 있는 신경망을 통해 뇌에 전달되는 것이니까. 결국 통증은 상실되어 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으니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치는 거다.


지하 3층, 지상 12층의 병원 건물 곳곳마다 그림, 조각상, 설치품 등 예술품 많다. 예술을 전혀 모르지만 노부부를 보고 나니 아픈 이들 주변에 왜 예술품을 많이 전시해 놨는지 조금 짐작이 간다. 예술가의 의도를 읽어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작품을 빗대어 통증의 주인인 자신을 읽어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싶다.  


대지로부터, 풀꽃과 나무로부터, 바람과 햇살로부터, 우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신경망처럼 복잡한 관계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래된 먼지 덩어리. 언제 불꽃이 일어 큰 불을 번질지 모르는 덩어리의 허상과 본질에 말을 걸어 보라고. 예술 작품을 빌어 '주관적 해석'의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적 요소를 발견할 기회를 대신 주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9층 건물 안으로, 내 밑으로 노부부가 사라진 뒤 갑자기 엄마표 무전, 아내표 시금치 볶음 생각이 떠올라 바싹 마른 텁텁한 입속에 침이 고여 나오는 걸 느꼈다. 한여름 태양아래서 쑥쑥 자라난 가을무, 김장배추, 시금치. 하지만 아직은 덜 익어, 물만 가득해 싱겁다. 본격적으로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야 달아진다. 여름에 가득 채워 둔 물이 추위를 이겨내려 달달한 진액이 되는 과정을 통해.


엄청나게 달달한 식욕을 느끼며 병실을 나섰다. 입원 둘째 날, 지하홀 바닥에서 만난 이우환 작가의 <관계항>에 다시, 한참 머물렀었다. 입원 다음날부터 퇴원하는 날 아침까지 매일 내려가서 그 주변을 맴돌았다. 돌과 철광석의 관계. 달라 보여도 같은 본질을 지닌 관계. 어쩌면 노부부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부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십 대 후반이었던 결혼 전. 아내와 용문사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던 늦가을 토요일 오후. 터미널까지 한적한 도로를 따라 걷는데 우리를 느리게 스쳐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앞에서 멈췄다. 아는 사람을 만난 듯 조수석에서 나온 손은 허공에서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하남시까지 차를 태워 준 그 노부부.


차 밖도 안도 어둑해져 노부부의 조용한 대화가 마치 귓속말처럼 소곤거렸다. 대화 사이사이 가끔 서로 손을 꼭 잡아 주는 모습을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숨소리조차 들릴까 조심하면서 쳐다만 봤었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내리자마자, 나중에 만나면서도 두고두고 기억해 냈던 장면이다. 그때마다 서로, 각자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우리도 저렇게 나이 들어 가자'고.


'저렇게' 나이 들어가는 동안, 봄여름가을겨울을 수없이 맞고 보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통증들이 있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통증이 항상 아픔이 아니라는 것은 통증이 사라지고 난 뒤에만 알게 될 뿐이다. 무즙이 달달하고, 시금치가 씹을수록 더 달달해지듯이.  


살아가다 몸과 마음에 통증을 느낄 때는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 통증 덕분에 나를, 서로를 더 달아지도록 챙기는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몸과 마음. 거기에 들인 모든 숨결, 땀, 마음과 시간들이 '우리'라는 예술품을 만들어내는 비용이 아닐까.


찬바람, 서리 뒤에 같이 꼭 달아질 '우리'를 위해, (좀 더 나아지기 위해) 함께 살아가(려)는 몸부림, 마음쓰임 자체가 반짝이는 예술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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