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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92병동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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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1. 2024

나약하지만 위대한!

[92병동 일지] 06

최근 일주일간 뉴스는 (거의) 속보다. 속보는 긴급이다. 요즘 시국이 긴급은 긴급이다. 그래서 더욱 일부러 뉴스를 잘 보지 않으려 애쓴다. 이성이 감정에 휘둘리면서 막연한 불안감에 마음만 먹먹해질 뿐이기 때문이다.


올해 정시 자료 생성이 이번주 금요일 마감이다. 아이들 일 년 치 자료를 다시 보고 입력하느라 정신없다. 그런 와중에 어제 오전 공강 시간. 옆 동료가 외쳤다.  



'속보! 오전 10시쯤 공군 1호기(대통령 전용기) 이륙. 목적지, 탑승자 미확인!!'



안 그래도 이 문제에 대해 동료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데, 실제 상황(!)이 벌어졌나 싶었다. 혹시나 하고 즐겨찾기를 해둔 비행기 추적 사이트를 들어갔다. 옆 동료 같은 사이트에 접속하는 게 파티션 위로 솟아오른 모니터에 보였다.


지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관련 개념 설명을 위해 활용하는 사이트(https://www.flightradar24.com/)였다. 전 세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항공기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노란색 비행기를 클릭하면 왼쪽 화면에 관련 정보가 표시된다.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어느 나라 무슨 비행기인지부터 현 위치의 고도, 위도와 경도 등이. 물론 여객기만 보이기 때문에 공군 1호기는 당연히 보이지 않겠지, 하면서도 들어가졌다. 역시 그렇네, 하고 전체 화면을 닫으려는 데 옆 동료가 다시 외쳤다.  



"어, 어, 이 비행기 뭐죠. 북한을 향해 날아가는데요? 지금. 이 비행기만 이러네요. 이런 항로가 있었나?"



동료의 화면을 보니 정말 그랬다. 수많은 노란 비행기들이 흩어져 날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북한 상공에는 노란 비행기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딱 한 대가 서울에서 2시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관련 내용을 확인해 보니, 왜 하필 이 시국에 시험 비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또 화요일이지 모르지만 대통령 전용기가 (훈련) 비행을 시작하기 50분 전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보스턴행 KAL091 여객기였다.


처음에는 지피에스 오류겠지 했다. 그런데 뜨문뜨문 화면을 지켜본 지 거의 한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오류가 날 리가 없지 싶어 지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29000피트 상공의 비행 고도도 일정했다.


그런데 비행기의 위도가 점점 37.3826, 37. 6871, 37.9043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결국 미끄러지듯이 38도 휴전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일직선 항로의 끝은 원산항이었다.


새로운 항공 노선이 생겼나. 북한이 (돈을 벌려고) 영공을 열어줬나. 수업 내용과 관련하여 그런 정보는 없었는데. 전쟁을 유도하는 건가. 납북인가. 아, 미국행이면 미국인들이 많이 탔을 텐데, 미친 것들이 자체 납북을 시켰나? 아님? 아님?


순간, 동료가 쏟아내는 오만가지 추측이 하나도 틀리지 않을 것만 같은 막연히 불안한 마음이 몽글거렸다. 그러던 그가 다른 사이트( https://www.flightaware.com/live/flight/INVALID)를 하나 더 찾아냈다.


KAL091기를 검색해서 커다란 듀얼 모니터에 하나씩 띄워 놓더니 긴 한숨을 내쉰다. 그제야 앉은 채 뒤로 힘껏 허리를 젖히면서 나를 올려다본다. 그제야 동료의 붉어진 얼굴에 미소가 장미처럼 피어올랐다.   


왼쪽 화면에서 여전히 원산을 향해 날아가는 비행기가 오른쪽 화면에서는 일본을 지나 태평양 상공에 배처럼 떠있는 게 아닌가. 내가 자주 이용하던 사이트가 하필, 대통령 전용기가 이륙한 그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던 거다. 그것도 2시간 넘게.  


내전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가장 난민이 많이 발생한 시리아의 독재자가 러시아로 비행기 망명을 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온 그 시각이었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동료 덕분에 보고 있던 그 궤적이 '해프닝'이었다는 기사로 나왔다.


주말 여의도에서 늦게 돌아오면서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아파트, 아파트'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돌아왔는데 대한민국 시민으로, 너무나도 평범한 시민으로 일상을 누리는 게 쉽지 않다.


신경 쓰지 않아야 하는, 않아도 되는 것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더욱 그렇다. 뉴스를 또 봐버려서 그런가 보다. 가슴이 묵직해진다. 며칠 전 고요한 새벽에는 멀리 산속에서 들리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혹시 총소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딱 맞는 요즘이다. 집회가 끝나고 어둑한 풀숲에서 쓰레기를 주워 담던 시민들이 말해 준다. (우리의)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위대한 시민은 나약했지만, 함께 해서 강했다는 것을. 


오늘 새벽, 저멀리 스톡홀름에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한림원은 작가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연약하지만 역사에 '질문'을 던지는 인물들이라고 평했다. 많은 이들이 추위속에서도 (각자의)광장에 모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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