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무언가가 ‘끝’ 난 다음날 시작한다. 그러니, ‘시작’은 늘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마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다음날 첫 아침과 비슷하다. 박스는 아직 미정리이고, 어디에 무엇을 놓아야 할지도 불분명하지만 창문을 열면 낯선 장면에 새로운 냄새가 묻어난다.
그 집은 누군가의 ‘끝’이었지만 우리의 ‘시작’의 시공간이 되는 것이다. ‘시작’은 이런 식으로 ‘끝’의 잔열이 남은 뜨거운 방에서 창문을 여는 행위와 같다.
‘시작’은 과거가 만들어낸 여백을 미래가 점유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과거의 질서를 버리고, 아직 정해지지 않은 질서를 초안으로 작성하는 순간. 새로운 생이 아니라, 지난 생의 수정본이 켜지는 시간이다.
‘끝’은,
무언가가 ‘시작’되기 전날의 깊은 밤, ‘끝’ 난다. 그러니, ‘끝’은 늘 ‘시작’의 손잡이가 된다.
마치 33년간 다닌 직장에서 마지막 퇴근을 하는 오후와 비슷하다. 책상을 비울 때 손이 허전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끝’이 아니라 곧 다른 곳에서 ‘시작’될 첫날의 그림자가 걸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 사무실 역시 나의 ‘끝’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시작’의 시공간이 된다. ‘끝’은 이런 식으로 아직 뎁혀지지 못한 ‘시작’의 냉랭함이 남은 빈 방의 창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와 같다.
‘끝’은 살아온 질서를 잠시 매장하는 장례식이면서 동시에 기획 회의다. 닫힌 문 뒤에 곧 열릴 문이 유령처럼 어른거린다. 끝은 탄식이 아니라 공간을 비우는 작업, 즉 새 구조가 들어설 자리를 만드는 정지선이다.
결국,
‘끝’은 ‘시작’의 전날 달빛에 비춘,
‘시작’은 ‘끝’의 다음날 햇빛에 늘어진 그림자다.
‘시작’은
어제 버린 것들이 만들어준
여백에서 피어오르는 새벽의 기운이고,
‘끝’은
내일 도착할 것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조용히 방을 정리하는 저녁의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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