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림이 맑음이 되기까지

[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 4

by 정원에

우리 마음 안에는 저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우물’ 하나씩이 살고 있나 봅니다.


어떤 날은 그 우물이 너무 가득 차올라, 찰랑거리는 수면이 눈가까지 닿아 뜨거운 눈물로, 혹은 붉게 달아오른 핏기로 넘쳐흐르려 하지요. 그럴 때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이 넘침을 어떻게 밖으로 내어놓을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울컥’은 내면의 둑이 터지기 전, 스스로를 가만히 다독이며 길을 터주는 온순한 방출입니다. 그것은 마치 꽉 찬 물병에서 물이 조금씩 꿀럭꿀럭 새어 나오듯, 내 안의 고통과 기쁨을 세상과 나누겠다는 겸손한 신호이기도 하지요.


내가 나를 먼저 깊게 들여다보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나 지금 이만큼이나 벅차요>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아픔 위로 무너지듯 겹쳐질 수 있습니다. 울컥함은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가장 인간적인 연대의 언어이자, 식어버린 세상에 사랑의 불꽃을 지피는 따뜻한 불씨가 됩니다.


반면 ‘욱’은 살피지 못한 마음이 끝내 참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파괴적인 폭발과 같습니다. 안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바깥의 자극에 날 선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겠다는 명목하에 타인을 찌르는 가시를 돋웁니다.


그것은 자존심이라는 좁은 외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다가, 결국 자신과 타인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분노의 타투를 새기고 말지요. 욱하는 순간 우리는 손에 잡힐 듯 부서지며, 작은 불꽃을 거대한 들불로 번지게 하는 위태로운 발화점이 되고 맙니다.


우리의 삶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서로를 찌르기보다, 둥근 파동이 되어 서로에게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안의 우물이 넘치려 할 때, 잠시 멈춰 그 깊은 곳을 가만히 응시해 보세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그 마음은 날카로운 화살이 아니라, 부드러운 눈물이 되어 흐를 것입니다. 그 뜨거움이 나를 태우는 불이 아니라, 상대를 안아주는 볕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욱하며 타인을 찌르는 가시가 되기보다, 울컥하며 세상에 스며드는 비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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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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