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놓친 당신에게
[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 5
다시 봄입니다. 올해를 함께 할 31명의 고3 아이들 자료를 만들다 지난 해, 우리반 서른 한명의 대학 진학 리스트를 다시 들여다 봅니다.
최종 성적이 확정된 뒤 약 두달간 이어진 상담의 결과였습니다. 개별적으로 온라인 접수를 하기 전, 한 명당 평균 6개 대학, 모두 186개에 달하는 대학, 학과, 전형 유형을 모두 결정한 겁니다.
상담 과정을 거치면서 매년 늘 뚜렷하게 드러나는 두 가지 유형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3월에서 멀어질수록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죠. 바로 아이들의 진학 대학을 선택하는 기준이 대체로 ‘이 대학만’파와 ‘이 학과만’파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이 대학만’을 외치는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학과와 무관하게 특정 대학에만 들어가면 된다는 아이들입니다. 점수에 맞춰 아무 학과나 가면 된다는 아이들과 ‘나도 S대 써봤다’라는 같은 만족감을 원하는 경우가 여기에 속합니다. 실제 진학은 부모의 동의가 필수라, 결국 부모의 뜻이 크게 작용한 결과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 ‘이 학과만’을 원하는 아이들은 대학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특정 학과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다면 전국 어디든 가겠다는 의지를 보입니다. 이 아이들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이 ‘네가 하고싶은데로 해봐’라며 열어 둔 학부모가 뒤에 있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일반고 학생들인 이 31명만 봐도, 여전히 전자가 후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약 7대 3 정도입니다. 그 간극은 해가 갈수록 더욱 벌어지고 있고요. 이러한 현상은 적성, 관심, 흥미보다는 현실적 타협의 결과입니다.
저는 이 두 방향으로 접근하는 아이들을 <지름길>, <에움길>로 들어 선 거라고 표현합니다.
‘이 대학만’파는 <지름길>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정해진 목적지에 가장 빠르게 도착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스무 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삶의 중요한 덕목이 합리성, 효율성, 성과 중심이 됩니다. ‘도착’이 유일한 목표인 듯 입학이, 졸업이, 취업이 목표인 것이죠. 그 길이 점점 ‘나’하고 점점 멀어지는 지름길인 것을 모른채 말입니다.
반면, ‘이 학과만’파는 <에움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우다’ 즉, ‘빙 둘러서 가는 멀고 굽은 길’을 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빙 둘러 가니 당연히 멀죠. 그러니 중간 중간 쉬어야 합니다. 굽은 길이니 때로는 험하죠.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며 ‘무엇을 위해 걷는지’, ‘어디로 향해 가는지’, ‘이 길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깊게, 더 넓게’ 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언제나 ‘여정’ 자체가 목표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졸업을 한 뒤 찾아오는 아이들의 상황이 정반대로 변해 있다는 점입니다. ‘이 대학만’하고 떠나간 아이들은 여전히 그 길위에서 헤매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찾지 못하고 허둥댑니다. 그러니 늘 신변 잡기같은 이야기에 더 많이 빠져 지내느라, 늘 아이같습니다.
반면, ‘이 학과만’하고 떠났던 아이들은 다른 길로, 다음 길로 접어 들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빛이, 낯빛이 달라진 아이들이 많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생기고, 할 만하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할때만 내비치는 빛이 납니다. 때론 저보다 더 깊은 어른이 된 듯 하기도 하고요.
스무 살의 길은 지름길이든 에움길이든 결국 자기 삶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름길>로 들어서려는 아이들이 훨씬 더 돌아 돌아서 ‘진짜 자신’에게 가 닿을때까지 포기하지만 않기를 늘 기원합니다.
그럼에도 <에움길>을 걸은 아이들이 더 깊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어쩌면 자연의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속으로는)아이들이 멀고 굽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눈빛으로 응원을 멈추지 않을 뿐입니다. ❤️
_내 마음의 한 문장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지름길이 아니라, 당신이 숨을 고르며 멈춰 섰던 그 굽이진 길가에 피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