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삼자의 눈으로

[ 아빠의 유산 ] 64

by 정원에

아이야.


너희가 이제 어른의 문턱을 넘어 각자의 속도로 걷고 있는 걸 보니, 문득 내 손에 든 가방이 참 가볍다는 생각을 한다. 그 가방안에는 두어권의 책 밖에 없거든.


늘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내가 평생 밑줄 치며 읽어온 책들과 그 안에서 길어 올린 몇 가지 ‘정신의 유산’을 너희의 마음 창고에 툭 던져두려 해. 이걸 받는 건 공짜지만(상속세도 전혀 없고), 운용하는 건 너희 몫이란다.



얼마 전에 드디어 정독(精讀)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서 ‘공정한 관찰자’라는 근사한 녀석을 다시, 제대로 만났단다. 우리 마음속에 살면서 우리의 행동을 제.삼.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내면의 자아를 말하는 거야. 요즘 아빠는 이 녀석과 매일 새벽 안부 인사를 나눠. <어이, 어제 내 욕심이 좀 과하지 않았나?> 하고 말이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너희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선택 앞에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헷갈리지 않았으면 해서야. 수치심은 남의 눈을 의식해 나를 깎아내리는 거지만, 죄책감은 내 안의 공정한 관찰자가 보내는 성찰의 신호거든. 전자는 너희를 위축시키지만, 후자는 너희를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시킨단다.

사실 아빠도 가끔 이 녀석과 싸워. <거 좀 적당히 합시다!> 하고 대들기도 하지만, 결국 그 녀석의 따끔한 조언 덕분에 내가 꼰대가 되지 않고 겨우 버티는 중이지.


너희 생각은 어떠니? 아빠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가끔은 이 관찰자 녀석을 휴가 보내야 할 때도 있는지 너희에게 묻고 싶구나.


인생이라는 건 말이야, 마치 ‘해상도가 계속 높아지는 모니터’를 보는 과정 같아. 처음엔 픽셀이 뭉개져서 이게 산인지 바다인지 모르고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달려가지만, 사유의 힘이 커질수록 삶의 결이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하지. 아빠의 지향점은 이제 ‘속도’가 아니라 ‘해상도’란다.


내가 먹는 음식의 출처를 알고, 내가 뱉는 말의 온도를 측정하고,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미세한 슬픔을 읽어내는 것. 그게 진짜 공부고 진짜 풍요 아니겠니.


너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세상이 정해준 성공의 규격에 너희를 맞추느라 영혼을 깎아내지 마렴. 대신 너희만의 ‘정신의 유산’을 차곡차곡 쌓아가길 바라. 아빠가 책에서 배운 가장 큰 '인생 스포일러' 하나 해줄까?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자기답게 사유한 사람이더구나.


물론, 아빠의 자아(self)도 여전히 인테리어가 공사 중이라 가끔은 부실 공사 흔적이 보이기도 해. 너희가 보기엔 아빠의 삶이 가끔 덜컹거려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덜컹거림조차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는 신호로 봐주면 고맙겠어.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야. 내가 너희의 아빠라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먼저 이 길을 걷고 있는 조금 앞선 여행자로서 너희의 신선한 시각이 탐날 때가 많아. 너희가 보는 세상은 아빠의 낡은 렌즈보다 훨씬 선명할 테니까. 때로는 아빠에게 너희의 지도를 빌려주렴.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동시에 찰나와 같단다. 그 사이를 메우는 건 결국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라는 질문이지. 아빠가 물려주는 이 무형의 유산이 너희의 배낭 속에서 너무 무겁지 않기를,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 나침반처럼 꺼내 볼 수 있는 무엇이 되기를 기도한다.


오늘 하루도 너희 안의 ‘공정한 관찰자’와 유쾌하게 동거하길!




p.s. [이번주의 통쾌한 미션]

아빠한테 고맙다는 말 대신, 너희가 읽고 있는 책 중에 가장 ‘짜릿했던 문장’ 하나만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렴. 그게 내 이번 달 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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