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어야 소리가 산다

[ 아빠의 유산 ] 63

by 정원에

아이야.



어느덧 성인이 된 너희를 보며 가끔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낡은 외투처럼 익숙해진 내 모습이 너희라는 새 옷을 입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기분이랄까.


오늘은 내가 유산으로 남겨줄 통장 잔고 대신, 내 머릿속과 가슴속을 굴러다니던 생각의 조각들을 좀 나눠볼까 해.


얼마 전 책을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우리가 마이크를 입에 너무 바짝 대고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 될까? 스피커에선 ‘삐-’ 하는 비명이 터져 나오고 정작 가사는 뭉개지지. 우리 삶도 비슷해.

나 자신에게 너무 집착하고, 내 감정에만 코를 박고 있으면 정작 내 진짜 목소리는 소음이 되어버리거든. 인문학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 나라는 감옥에서 살짝 걸어 나와, 나를 객관적인 관객처럼 바라보는 ‘거리 두기’의 기술이지. 바로 얼마 전 우리 넷이 이야기를 나눴던 자신을 ‘제 3자 ’처럼 바라보는 연습이란다.

아빠는 요즘 나 자신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하고 있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 나라는 주어를 잠깐 빼보는 거야. <나는 왜 이럴까?> 대신 <저 사람은 지금 왜 저런 기분을 느낄까?>라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를 보는 거지.


니체가 말했잖아.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고. 그건 나를 부정하라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작은 고집과 욕심으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보라는 뜻일 거야.

사실 아빠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주인공 병에 걸려 살 때가 많았어. 내 고통이 제일 크고, 내 성취가 제일 빛나야 한다고 믿었지. 그런데 말이야, 마이크를 조금 떼고 나니까 비로소 주변의 소리가 들리더라. 너희의 웃음소리, 계절이 바뀌는 소리, 그리고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진짜 진심 같은 것들.


지향점은 명확해. 나로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나를 비워 타인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아빠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인생 스포일러야. 가끔은 너희에게 묻고 싶어.


<얘들아, 아빠가 요즘 너무 자기 생각에만 갇혀 있는 것 같니?> 만약 그렇다면 언제든 마이크를 살짝 밀어줘. 아빠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거든. 너희라는 훌륭한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말이야.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지. 아빠는 그 사과나무가 ‘오늘의 다정함’이라고 생각해. 나 자신과 거리를 두면 비로소 남에게 다정해질 여유가 생기거든. 꽉 쥔 주먹으로는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로운 ‘거리 두기 전문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너무 가까워서 서로를 할퀴지 않고,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은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만의 예쁜 화음을 만들어 가자꾸나.

이 편지가 너희의 삶에 기분 좋은 노이즈 캔슬링이 되길 바라며.

여전히 너희와 주파수를 맞추고 싶은 아빠가.




P.S. [이번 주의 통쾌한 미션]

지금 당장 거울 앞으로 달려가 너 자신과 3분간 낯설게 대면해 보렴.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봐.


「오늘 이만큼 버텨줘서 고맙다.」

「네 눈빛은 여전히 살아있네.」

「너 생각보다 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있어.」


자, 이제 자신에 대한 과한 진지함은 개나 줘버리고, 이번주 어느 한날, ‘나를 1도 모르는 척’하며 평소 절대 안 먹던 메뉴(예: 민트초코나 홍어회??)를 먹거나, 평소라면 절대 안 살 것 같은 화려한 양말을 하나 사서 스스로에게 선물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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