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미식가가 되거라

[ 아빠의 유산 ] 65

by 정원에


아이야.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어 가는구나. ‘완연한’ 봄은 아침, 저녁으로는 스산하지만 한낮에는 가슴까지 펴질 듯 화창해지는 날씨거든. 이런 날 하늘을 올려다 보다 보면, 아빠는 <신은 죽었다>,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거창하고 머리 아픈 질문보다 음식, 기후, 휴식 같은 ‘작은 것’들이 인간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니체의 말을 두팔 벌려 동의하게 된단다.


사실 아빠도 젊은 시절엔 남들이 말하는 성공, 대단한 철학적 가치, 사회적 지위 같은 ‘큰 것’들만 쫓아다녔어.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알겠더구나. 습하고 찌뿌둥한 날씨가 내 안의 '명랑함'을 뺏어가면, 아무리 대단한 철학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말이지. 명랑함을 잃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탱할 힘을 잃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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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빠가 말하는 너희의 과제는 거창한 직업이나 연봉이 아니란다. 바로 ‘네 자신이 되는 것’이지. 너희라는 고유한 존재가 이 세상에서 날개를 펼치려면, 일단 몸이 가벼워야 해. 정신의 날개는 사실 잘 먹은 음식충분한 숙면에서 돋아나는 법이거든.


아빠도 요즘은 사유의 방식을 바꾸고 있어. 예전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오늘 저녁에 어떤 신선한 채소를 먹어 내 몸을 가볍게 만들까>를 먼저 고민해. 몸이 무거우면 생각도 진흙탕 속을 걷게 되니까.

가끔은 너희에게 묻고 싶구나. 너희 세대는 이 복잡하고 빠른 세상에서 어떻게 마음의 습기를 닦아내는지 말이야. 너희만의 ‘제습기’ 같은 비법이 있다면 이 아빠에게도 좀 전수해주지 않겠니?


삶의 지향점이라는 건 결국 거창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내 몸과 정신을 쾌적한 상태로 유지하는 관리의 예술이란다. 아빠가 너희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바로 이 ‘명랑한 자기 관리’인 이유란다. 유머를 잃지 않고, 맛있는 음식 한 접시에 행복해질 수 있는 그 가벼운 발걸음 말이야.

너희가 마주할 미래는 생각보다 더 변덕스러울 거야. 하지만 걱정 마라. 너희가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고, 작은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다면, 어떤 거친 파도가 와도 너희의 정신은 기분 좋게 서핑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인생은 ‘나를 나로 만드는 과정’이란다. 그 과정이 너무 비장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가끔은 나 자신을 비웃어줄 줄 아는 여유와, 맛있는 것을 먹고 <아, 살 것 같다!>라고 외치는 솔직함이 너희를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기억해라, 명랑한 자만이 자신의 삶을 창조할 수 있다.

사랑한다!



p.s. [ 이번주의 통쾌한 미션 ]

자, 편지를 읽었으니 이제 실전이다. 정신의 유산을 계승하는 의미로 이번주에 다음 미션을 수행하고 인증샷 혹은 후기를 가족 단톡방에 공유해 봐봐.

1) ‘가공식품’이 아닌, 땅에서 난 신선한 재료가 들어간 최고의 한 끼를 너희 자신에게 대접하기(몸이 무거우면 철학도 짐이다!).

2) 너희의 명랑함을 1%라도 올려줄 수 있는 음악 한 곡을 찾아 끝까지 감상하며 10분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기.

3) ‘명랑한 미식가’가 된 상황을 묘사하는 일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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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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