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넘는 향기는 공짜란다
[ 아빠의 유산 ] 67
아이야.
어느덧 너희가 성인이 되어 각자의 궤도를 도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이제 슬슬 인성 준비를 다시 해야 하나’ 싶어 거울을 보곤 한다. 55세에 무슨 ‘인성’ 준비냐고?
아빠, 어른, 선생으로서의 ‘체면’이나 ‘권위’를 내려놓고, 진짜 괜찮은 어른, 인간이 될 준비를 해야겠다는 뜻이야. 앞으로 남은 은퇴 준비 시간 동안 말이지. 보통 은퇴준비라고 하면 통장 잔고나 연금을 떠올리잖아?
그런데 아빠에게 필요한 건 ‘돈’만큼 ‘대화가 통하는 매력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거든. 그래서, 오늘은 아빠가 최근에 읽은 책들이 내 낡은 고정관념을 어떻게 두들겨 팼는지에 대해 조금 수다를 떨고 싶구나.
예전에 아빠는 무조건 퍼주는 게 미덕인 줄 알았다. 내 곳간이 비어도 남에게 씨앗을 나눠주면 그게 성인군자의 길인 줄 알았지.
그런데 니체라는 까칠하지만 통찰력 있는 형님이 그러시더구나. <네 정원부터 만발하게 하라>고 말이야. 씨앗을 홀랑 다 나눠주고 황무지에서 <나는 청렴하다>고 자위하는 건, 사실 아름다운 정원을 가꿀 노력을 회피한 일종의 ‘게으른 친절’일지도 모른다는 소리였어.
이 메시지는 내 뒤통수를 꽤 강하게 때렸단다. 아빠는 너희에게 ‘희생하는 부모’의 뒷모습만 보여주는 게 정답이라 믿었거든.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의 정원이 잡초투성이인데 너희에게 어떤 향기를 전해주겠니?
그래서 아빠는 요즘 내 정원에 물을 주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한참 전 필명을 ‘정원에’로 바꾼 이유이기도 하고!). 내가 읽는 책, 내가 시도하는 새로운 취미,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조금 더 유연한 시선들이 바로 그 물줄기란다.
삶의 지향점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 내 정원에 꽃을 가득 피워서, 그 향기가 너무 진해 자연스럽게 담장을 넘어 너희의 코끝을 간지럽게 하는 것. <아빠, 요즘 무슨 좋은 일 있어? 왜 이렇게 향기로워?>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게 아빠가 너희에게 물려주고 싶은 진짜 ‘정신의 유산’이다. 억지로 씨앗을 쥐여주는 게 아니라, 향기를 따라오게 만드는 삶 말이야.
가끔은 아빠도 길을 잃는다. ‘이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나?’ 싶을 땐 사실 너희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어. 너희가 보는 요즘 세상은 아빠의 낡은 지도에는 없는 길들이 참 많을테니까.
아빠가 자기계발서에 밑줄 치며 공부하는 것보다, 너희가 툭 던지는 <아빠, 그건 좀 ‘꼰대’ 같은데?>라는 한마디가 내 정원의 잡초를 뽑는 데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거든. 그러니 주저 말고 말해주렴. 아빠는 언제든 리모델링할 준비가 된 정원사니까.
인생에 대해 미리 ‘스포일러’를 하나 해주자면, 세상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너희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원하고 있단다. 이기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야. 너라는 근사한 꽃을 먼저 피우라는 뜻이지.
네가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를 때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백 마디 위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주변을 치유하거든.
아빠는 이제 너희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으련다. 대신 너만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길 바라. 네 정원이 풍요로워지면, 담장 너머로 흐르는 향기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세상 모든 이의 것이 될 테니까.
아빠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진한 향기를 풍기는 정원사가 되어볼게. 우리 서로의 정원이 얼마나 울긋불긋한지 가끔 (온라인으로라도)모여서 자랑이나 하자꾸나.
p.s. [ 이번주의 통쾌한 미션 ]_ ‘나부터 살고 보자’ 프로젝트
자, 이 편지를 읽었다면 지금 당장 네 정원을 위한 ‘비료’를 투입해라!
오늘 퇴근 길에 네가 평소 <돈 아까워>라며 망설였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사치’를 하나 실행하렴. (예: 2만 원 넘는 비싼 스테이크 혼밥, 읽고 싶었던 빳빳한 신간 도서 구매, 혹은 평소 갖고 싶었던 킹받게 귀여운 피규어 등). 단, 조건이 있다. 남을 위한 선물은 절대 금지! 오직 ‘나’의 즐거움을 위해 지출하고, 그 영수증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인증해라. 아빠가 그 사치 비용의 50%를 ‘정원 관리 보조금’ 명목으로 즉시 계좌 이체해주마. 네가 행복해야 내 코가 즐겁지 않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