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 아니 익음에 대하여

[ 아빠의 유산 ] 69

by 정원에


아이야.


요즘 주중에 출퇴근 하느라, 주말에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몸과 마음이 많이 바쁘겠구나.


게다가 날씨도 우중충한 날들이 연일 이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낡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이렇게 새벽 앞에 앉았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가는 타인과 연결된다는 것을 ‘감각이 낡아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더구나.


처음엔 그 말이 참 아프게 들렸어. ‘내 예민하고 날카롭던 감각들이 타인의 소음 때문에 무뎌지고 닳아버리는 걸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낡음이야말로 내가 너희의 아빠로서, 그리고 이 세상의 한 시민으로서 받아온 훈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마트에 가면 원하지 않아도 들려오는 CM송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소리를 던지지. 너희의 투정, 누군가의 하소연, 때로는 억울한 오해들까지.


그런 것들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면 우리의 귀는 필터가 헐거워진 낡은 라디오처럼 변해버려. 하지만 아빠는 이제 그 헐거워진 틈이 참 좋다. 틈이 생겨야 비로소 타인의 이야기가 걸러지지 않고 내 안으로 툭, 떨어져 잠들었던 내 '감각'을 깨워주곤 하거든. 목련꽃잎처럼.

새것처럼 빳빳한 감각은 남의 아픔을 튕겨내지만, 낡아서 보들보들해진 감각은 타인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단다. 똑똑하게 나를 지키는 법보다는, 기꺼이 낡아짐으로써 누군가를 ‘환대’하는 마음 말이지.


아빠도 요즘은 실천 중이야. 예전엔 <아빠, 그거 아니야!>라는 너희의 말에 내 논리를 세우기 바빴다면, 요즘은 <허허, 그래? 내 귀가 좀 낡아서 잘 못 들었나 보네. 다시 한번 가르쳐줄래?>라고 묻게 돼. 자식에게 조언을 구하는 낡은 아빠가 되는 것, 그게 생각보다 근사한 사유의 전환점이 되거든.


인생은 말이야, 완벽한 새 차를 유지하는 레이싱이 아니라, 진흙탕도 구르고 긁히기도 하면서 결국 ‘잘 낡은 골동품’이 되어가는 과정이야.


아빠는 너희가 세상을 향해 세운 날 선 감각들이 조금씩 닳아지기를 바라. 그 닳아진 자리에 타인의 숨소리가 머물 수 있도록 말이야. 물론, 너무 낡아서 고물상에 팔려 갈 정도는 아니어야겠지만!

우리의 감각이 낡아진다는 건, 사실은 표면적인 낡음 이면에 숨은 밀도 높은 '익음'의 증거일 거야. 그만큼 누군가를 뜨겁게 견뎌내고 사랑했다는 증거! 매년 낡아지는 목련 나무에 맺히는 꽃이 해마다 더 진하고, 예뻐지듯이.




p.s. [ 한 주를 응원하는 시 ]

새 신발의 뒤축은 발뒤꿈치를 갉아먹지만

오래 신은 구두는 비로소 발의 모양을 닮는다


나의 귀는 이제 헐거워진 가죽 가방 같아서

비바람 같은 네 투정도, 먼지 같은 세상 소문도 가리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팽팽하던 마음의 고무줄이 느슨해진 건

게을러진 탓이 아니라 너라는 무거운 존재를 오래 매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슨 경첩이 삐걱대며 문을 열어주듯 나의 낡은 감각들이 비명을 지르며

너를 환대할 때 그 틈새로 고소한 사람 냄새가 번진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부드러워지는 것


오늘도 나는 낡은 소파에 앉아

더 낡아질 내일을 기다린다


네가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기분 좋은 주름이 되기 위하여


라이팅 레시피6.jpg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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