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그곳의 요즘 날씨는 어떻니? 창밖엔 비바람이 몰아치고 유리창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 덜컹거리는 밤을 지나 본 적이 있지? 이런 날이면 아빠는 거실 한복판에 묵직한 흙항아리가 있다고 상상을 하곤 한단다.
그 항아리는 세상의 폭풍우 속에서도 덜컹이며 깨질 듯 흔들리거나, 비명을 지르지 않잖아. 그저 제 몸을 울림통 삼아 폭풍의 소리를 받아내며 그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있지.
아빠는 요즘 그 (상상의)항아리를 보며 달관의 경지를 배운단다. 내가 상황을 억지로 해결하려 드는 게 아니라, 상황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도록 허락하는 것. 그게 아빠가 뒤늦게 배운 인생의 가장 유효한 스포일러야.
젊은 시절 아빠는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폭풍을 막아낼 방패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어.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건 방패가 아니라 나를 가두는 감옥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제는 생각을 좀 바꿨지.
인생이라는 건 결국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나를 통과하게 두느냐의 싸움이더라. 슬픔이 오면 슬픈 대로 내 몸을 울리게 두고, 기쁨이 오면 그 울림을 충분히 즐기면 돼. 항아리가 비바람을 막으려 했다면 진작에 금이 가거나, 산산조각났겠지만, 그저 소리를 통과시켰기에 오늘도 저렇게 단단하게 서 있는 거겠지.
아빠가 물려주고 싶은 건 바로 이 ‘유연한 단단함’이야. 세상이 너희를 흔들 때, 같이 흔들려도 괜찮아. 다만 깨지지만 마라. 굴러다니는 돌멩이처럼 가볍게 살기보다는, 묵직한 항아리처럼 너희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길 바란다.
우리의 삶이 매일 맑을 수는 없겠지만, 폭풍우 치는 밤에도 우리 마음속 항아리 안에는 각자가 소중히 담아온 향기로운 술이나 맑은 물이 찰랑이고 있었으면 좋겠다. 너희의 사유가 깊어질수록 그 항아리의 깊이도 더해지겠지. 아빠는 그 과정을 옆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는 관객이 되고 싶구나.
조만간 비 안 오는 날, 시원한 맥주 한 잔 나누며 너희의 ‘항아리’는 요즘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지 들려주렴.
p.s. [ 이번주의 통쾌한 미션 ]
오늘 퇴근길에 너의 정신적 평화를 위해 1만 원 이하의 사치를 부려라. 편의점의 비싼 수입 맥주도 좋고, 평소 비싸서 망설였던 ‘1+1 안 하는’ 초콜릿도 좋다.
그 맛있는 것을 먹는 10분 동안만큼은 스마트폰을 던져두고 항아리 모드에 돌입해라. SNS 알람이 폭풍우처럼 쏟아져도 <응, 지나가라~ 난 먹는다~>라는 마인드로 오직 미각에만 집중해 보기!!!
무엇이 너를 지나가든, 너는 여전히 너란다.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