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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8. 2023

'토끼'는 잘못이 없지만...

사진: Unsplash의Kenny Eliason

작년 연말. 내년에는 황금 토끼해라며 아내가 나에게 그랬다. '자기 내년에는 엄청 좋데. 아주 좋데. 특히, 재물운이 크데...'. 아내는 장난감이 넘쳐나서 신난 아이 같았다. '누가 그래?'라고 나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누가 그랬는지 아니까. 아내는 그 말을 얼른 던지고는 내 앞에서 총총총 사라졌다. 어제 퇴근길에도 같은 말을 했다. 올해만 벌써 몇 번이나 들었다. 마치 나에게 엄청 좋으니까, 재물운이 있다니까 잘 살자라고 최면을 거는 것만 같았다. 아니, 자기 확신을 위해 반복하는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어찌 되었건 고맙고, 귀엽다. 하지만 아내 마음, 내 고마움과는 달리 나는 '토끼'가 그리 달갑지 않다. 언제인가부터 토끼가 싫었다. 


쥐소호토용뱀말양원닭개돼지 속 그 토끼.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토끼를 싫어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친구들이 토끼이빨, 토끼이빨 하면서 놀려서 그랬나. 아니면 초점 없는 토끼 눈동자에서 이유 모를 공포감을 느꼈나. 그러나 분명한 건 그날 아버지의 현란한 손놀림 과정에서 본 장면 때문에 토끼를 싫어해야지 하고 나 스스로 결정한 적은 없었다. 아버지는 싫어할 수 없으니까 - 싫어하면 안 되니까,라고 다짐했었으니까 - 대신 토끼가 더 미워졌었나. 그냥 그렇게 언제부터인가 토끼가 싫었다. 심지어는 어릴 적 거북이한테 달리기에서 진 토끼를 속으로 쌤통이다,라고 생각했었다. '여우같은 아내, 토끼같은 자식'이란 말도 결혼후에 한번도 쓰지 않았다. 일단, 아내가 여우스럽지 않으니까. 그리고 남매들은 절대 토끼같이 되어서는 안되니까. 어릴 때 둘 다 거금을 들여 치아교정부터 해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토끼는 나에게 부정의 상징이었다.  


2023년 토끼해. 카운트다운을 같이 보고 자정이 넘어 자야 한다는 일팔 청춘 따님과 아내의 말을 들으면서 잠자리를 찾아들었었다. 따님이 태어나고 올해가 처음이었다.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었던 해가. 새벽에 일어나야 하기도 했지만, 그냥 자고 싶었다. 침대까지 걸어가는 짧은 몇 걸음 속에 아내에게 한 번도 이야기하지 못한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섬뜩하리 만치 선명하게. 오늘처럼 해와 바람과 사람이 좋은 주말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 토끼'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린 마음 그리고 도망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소환되리라는 생각으로. 


산비탈에 가지런히 놓여 진 직사각형 슬레이트 집. 탄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하나씩 배정받아 살던 레고 같이 똑같았던 집 중 한 곳. 우리 집은 앞 집 덕에 공터 같은 앞마당이 있었다. 그 마당 가운데에는 검은색인 도톰한 전깃줄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당 가운데 긴 작대기가 그 전깃줄을 받치고 있었다. 엄지와 검지처럼 벌린 작대기 끝을 기준으로 전깃줄은 양쪽으로 커다란 엉덩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그 전깃줄의 용도는 빨랫줄이었다. 어느 날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몇 살쯤이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눈이 시릴 만큼 선명하게 그 장면은 연속 동작으로 또렷이 나의 저 깊숙한 창고 속에 총 천연색 컬러사진으로 보관되어 있다.


산 아래 동네는 빨리 어두워진다. 어릴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 시간만 되면 저녁을 먹고 잠을 잘 준비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9시만 되면 티브이에서는 방송을 해댔다. 빨리 자야 한다고. 그래야 새나라의 새 어린이가 될 수 있다고. 새나라가 어떤 나란히 새 어린이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시키는 대로 착하게, 착하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야만 엄마가 저녁을 푸짐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 알았다. 그 장면이 서늘한 그날, 같은 날 저녁에도 닭볶음탕을 참 맛있게 먹었다. 물컹거리는 살코기 사이사이에 감자와 당근이 흐늘흐늘 풀어진 국물이 잘 배겨 있었다. 내가 지금도 닭볶음탕을 즐기는 이유는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을 거다. 


햇빛이 뻥 뚫린 마당 가운데를 비추는데도 추웠다. 그날 아버지가 하얀 토끼 한 마리를 들고 전깃불 아래를 서성이고 있었다. 잡아 오셨는지, 받아 오셨는지, 내가 몇 살쯤이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처럼 눈부시던 새하얀 눈밭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 하얗디 하얀 토끼, 아버지의 손끝에서 축 늘어져 흔들거리던 그 토끼. 마치 집 뒷산에 수북이 쌓여 있던 눈 속에서 폭하고 금방 빠져나오다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기절한 것 마냥.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망막에 그 토끼는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오싹하게 추웠던 그날 아침. 검은색 빨랫줄에 축 늘어져 매달려 있었다. 귀도 쳐진 있었고, 기억자 발도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그 토끼는 죽어 있었다. 눈동자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여 있었다. 부릅뜬 그 눈동자는 새하얀 몸뚱이에 반사되어 많이 공포스러웠다.  


(지금부터는 잠깐 주의 바람. 임신부나 심신이 약한 경우는 대충 읽으시기를 적극 권함.)


그렇게 나에게는 '토끼와 거북이'에서 본 상상의 토끼를 갑자기 마당에 늘어져 환생한 듯한 실물로 만나게 되었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참 신기하다, 는 생각을 두고두고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대단하다, 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심지어는 위대해 보였다. 무슨 조화였는지, 그 공포스러움은 어디 간 듯 사라지고. 아버지는 모나미 볼펜 - 그 당시 국민 볼펜이었던 이 펜은 8할은 흰색 기둥, 2할은 검은색 주둥이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도 판매되는 요 제품이다 - 을 하나 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볼펜의 앞쪽 검은색 부분을 돌려 빼셨다. 다른 한 손에는 짧은 커터칼을 들고. 그리고는 천천히, 천천히 거대한 의식을 진행하려는 주술사처럼 늘어진 토끼에 다가갔다. 여닫이 문 앞 툇마루 주춧돌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나를 보며 한두 번쯤 씩 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마치 무대 위에서 마술을 하는 마술사가 관객에게 눈으로 메시지를 던지듯이. 아버지는 검은색 빨랫줄에서 골목 쪽을 바라보고 늘어진 토끼의 턱을 한 손으로 낚아채듯 잡았다. 그리고 나의 얼굴 쪽을 향해 토끼의 턱을 잡아 돌렸다. 그때 거무스레한 새빨간 그 토끼눈이 나의 눈에 휙 하고 순간 날아와 꽂혔다. 무서웠다. 그런데 신기했다.  


아버지의 손놀림은 엄청났다. 분명 마술사 보다 더 빨랐다. 그 토끼의 코 밑 인중 부분. 코와 입이 연결된 부분은 마치 양팔 벌린 만세모양이었다. 그 Y자 모양에 연결해서 가로 한번, 세로 한번 쓱쓱 커터칼이 재빠르게 스쳐갔다. 그러자 그 토끼 코 밑에 커다랗고 진하게 알파벳 T가 만들어졌다. 작은 Y자가 큰 T모양으로. 물론 그게 Y이고, T모양이라는 건 아마 나중에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정리한 것 같다. 그때는 한글도 읽지 못할 때였을 테니까. T 모양을 따라 하얀 눈밭 사이에서 시뻘건 용암이 몽글몽글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기억에 그 용암이 뚝뚝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기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는 볼펜에서 뺐던 검은 부분을 입고 물고 있었다. 그리고는 입에 문 채 천천히 벌겋게 벌어진 T자의 -와 ㅣ가 만나는 지점에 정확하게 볼펜심이 들락거리는 구멍 부분을 가져다 대었다. 마치 토끼의 입에 입 맞춤을 하듯이. 


한 손은 축 늘어진 그 토끼의 목덜미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축 늘어진 오른쪽 토끼 귀 부분을 감싸 쥐고. 그렇게 나의 시선에 아버지의 뒤통수가 그 토끼 얼굴을 몽땅 덮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얼른 주춧돌에서 내려와 마당 왼켠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는 그 토끼 얼굴과 아버지 얼굴 사이에 짧은 검은색이 연결된 것을 유심히 지켜봤다. 어정쩡하게 구부린 자세였을 거다, 아마. 빼꼼히 머리를 내밀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공포감에 혹시나 하는 궁금증이 뒤섞인 상태로. 잠시 뒤. 아버지의 왼쪽 볼과 토끼의 얼굴이 동시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볼이 커지고 벌게질수록 토끼의 얼굴도 빨간 눈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졌다. 그러다 구멍 뚫린 하얀색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을 때, 아버지의 붉었던 볼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말 순식간이었다. 손재주가 많은 아버지의 양손이 토끼의 부풀어 오른 얼굴로 향했고, 힘껏 양손을 아래로 내리치듯 잡아당겼다. 그러자 처음 보는 낯선 광경이 - 물론 지금까지도 계속 낯선 광경이었지만 - 나타났다. 검은색 전깃불에 축 늘어져 있던 새하얀 토끼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멍이 든 듯한, 검은 듯 벌건 토끼가 더 축 늘어져서 흔들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아버지가 양손 엄지손가락을 이용해서 토끼의 새하얀 가죽을 벗겨 낸 거였다. 그리고는 찢어진 원피스 같았던 새하얀 토끼 가죽은 살덩어리 옆에서 쪼그라져 매달렸다. 나는 숨도 못 쉬고, 소리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다. 내가 어느 날 저녁에 먹은 닭볶음탕이 그 토끼였다는 사실을.


친구들과 뒷산에다 우리들만의 '본부'를 만들었다. 동네 쪽으로 튀어나온 커다란 바위 아래. 굵고 가는 나뭇가지들을 주워다가 울타리를 치고, 출입문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편 애들이 모여 작전을 짰다. 그리고 건너편 다른 애들의 본부를 공격했다. 나무로 만든 칼을 차고, 역시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그렇게 우리는 '입'으로 전쟁을 했다. 그러다 해가 질 무렵, 전쟁을 마치고 산비탈을 내려와 각자의 집으로 하나씩 하나씩 쏙쏙 들어갔다. 내일의 전쟁을 다짐하면서. 그럴 때마다 친구도 나도 언제나 외쳤던, 우리 팀에게 내렸던 명령이 있다. '야, 토껴. 이쪽으로 토껴. 토끼라고'. 토끼다는 도망가다의 강원도 사투리였다. 물론 그게 사투리였는지 뛰어다닐 때는 몰랐었지만. 토끼를 왜 토끼라고 부르는지도 몰랐지만, 묻지도 않았고 그냥 그렇게 뒤섞어 불렀다.


레고 같은 그 집들 뒷산은 온통 나와 친구들의 놀이터였다. 천연 장난감이 수북이 쌓여 있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릴 적 뒷산에서 숨어 있던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지, 자꾸 숨어드는 나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현실을 외면하려는 나. 대중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특성상 인정의 욕구도 소란하리만큼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인정을 못 받으면 덤비지 않으려고 하는 자존감이 낮은 어른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선명하게 나의 기억 창고 속에 남아있는 토끼의 T자 상처가 나의 온몸 여기에 만들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나이게 걸맞지 않게 누군가로부터 쫓겨 다니는 꿈을 아빠가 된 지에도 한참, 어른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꿨다. 그럴 때는 내일이 두렵다. 사람을 만나고, 내가 내뱉어야 하는 말이 겁이 나고, 나에게 반드시 돌아올 것만 같은 화살이 무서웠다. 그러다 보니 먼저 말하지 말고, 먼저 하지 말고, 먼저 나서지 않고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못난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어른이었다는 것 역시 달리면서,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을 뿐. 그 이전에 나를 만나 이런저런 일을 같이하고 관계를 맺은 이들에게는 내가 그런 어른, 어른 같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지금도 옅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이들에게 솔직하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나로부터, 나의 것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르면 얼른 모른다고 한다. 안다고 바로 말하지 않는다. 아내건 남매건 부모님이건 타인이건 간에. 그리고 떠오르는 대로 쓴다. 타인의 글을 읽는다. 정성껏 고치면서 쓴다. 새벽 시간을 놓치지 않는다. 새벽 공간을 지켜낸다. 잘 거절한다(욕심을 버리면 된다. 내가 또 못할 건 뭔지). 업무에 빠지지 않는다(집이건, 직장이건 아이들에게 집중하자). 토끼해가 된 지 벌써 두 달 반이 지나간다. 어느 날 어쩌다 이 이야기를 일팔 청춘 따님에게 이야기를 했다. 따님이 조른 이유도 있었지만 속으로는 그때의 나보다는 다 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따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보리쌀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빼다 닮은 나를 벌레보듯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침까지 시큰둥하게 나에게 삐쳐 있었다. 안한다고 안한다고 하는 나를 꼬득여 이야기를 들은 자신에게 토라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무심한, 원래 그렇게 자랐던 아버지. 하필 그 아침에 잠이 깬 덕분에 오십 넘은 아들이 토끼를 싫어하리라는 상상을 전혀 하시지 못할 아버지. 그 토끼와의 화해는 이제 나의 몫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와의 화해는 아버지가 된 나의 몫이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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