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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22. 2023

마지막 차례상

당신이 너무 고맙습니다

산이 산을 가리는 깊은 산속 두메산골. 평지라고는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니는 도로뿐. 대부분이 경사진, 산비탈. 그곳에 한 청년이 살았다. 또래가 다하는 술은 잘 못 마시지만, 사람을 좋아했고, 동네에서도 가장 가난했지만 체력은 넘쳐 났다. 산비탈을 빌려 감자, 배추, 무를 키우던 소작농의 큰 아들. 6남매의 장남이었다. 그 아비는 들로 산으로, 만주로 나돌아 다니느라 소작을 빼앗기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 청년은 같은 마을에 살던 6남매 부잣집 넷째 딸, 그녀를 만났다. 몇 백 명 사는 좁은 산비탈에서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온 세상에 그들만이 존재했었으니까. 모든 게 청년의 대척점에 있는 것 같았던 그녀. 하지만 엄마 같았던 언니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열아홉이었던 그녀는 체력과 책임감이 넘치는 동갑내기 그 청년을 선택했다. 1969년이었다.


결혼을 하고 얼마뒤, 그녀의 뱃속에는 새로운 생명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내 그 청년은 징집을 당했다. 한참이 지난 후, 청년을 면회 간 날, 뱃속에 있던 새로운 생명은 아장아장 여관방에서, 청년 앞에서 짚고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청년은 뜨거운 눈물이 흘렀고, 그녀는 떠 뜨겁게 흐느꼈다. 징집 전 태어나자마자 열병으로 아이를 잃은 뒤 바로 찾아온 생명이었기에. 그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그 청년은 군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했다. 그 당시 흔하지 않았던, 대형 트레일러를 끌고 동해안을 누비면서 다녔다. 그러는 과정에 생기는 돈도 꽤나 있었고, 그 돈을 챙겨 아이와 둘이 있는 그녀를 수시로 찾아 건네주었다. 


음력설 전날이 생일인 그녀가 결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젖 먹이 막내 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올케 둘,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오빠 둘. 죄다 그녀보다 한 두살 아래였다. 특히, 막내 시동생은 자신의 아이와 한 살 터울. 시동생과 아들을 번갈아 젖을 물리며 하루 종일 어린 10대 시동생과 올케의 밥을 하고, 손빨래를 해야 했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첫 아이가 태어난 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화병이었다. 늘 술에 절어 있던, 가래를 아무 데나 뱉어 대던 시아비의 사랑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채. 이십 대의 그녀는 자신의 생일상 대신에 언제나 차례상, 제사상을 홀로 차려내야 했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밥상을 차려내야 했다. 자신의 십 대 때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그 청년을 선택했기 때문에 배우고, 감내하고, 이겨내야 했다. 언니들의 예언이 저주처럼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서.


국민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청년은 군에서 배운 기술로, 타고 난 손재주로 무자격증의 장인이 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어깨 넘어로 용접을 배웠다. 없던 부속품을 뚝딱뚝딱 자신만의 도면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 있었다. 그 기술로 닥치는 대로, 대구로, 부산으로, 전국으로 일년내내 뜨거운 여름인 나라에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 아비와 다르게 그 청년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비워야 했다. 그러는 사이 바로 밑 남동생 둘은 틈만 나면 그 아비처럼 술에 절어 그녀에게 행패를 부렸다. 돈을 달라, 밥을 달라, 자신들을 더 사랑해 달라. 그 모습을 어린 아들은 공포 속에서 분노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러는 사이 어릴 적 큰 화상을 입어 오른팔이 불편했던 그 청년의 넷째 여동생은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 중에 객사했고, 다섯째 여동생은 연락 두절이 되었다. 같이 젖을 물려 키웠던 막내는 스물을 갓 넘으면서 교통사고로 도로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는 사이 그 청년에게는 다섯 살 터울의 둘째 아들이 생겼다. 두 번의 유산만에 생긴 둘째였다. 이제는 그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래서 다시 자신의 동생들을 먹이기 위해 객지를 돌아다니다 얻은 기술로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탄을 캐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반평생을 어둑하고 습한 그곳에서 두 형제를 키워냈다. 다행히 큰 아들은 공부를 참 잘했다. 시골 학교에서 늘 일등을 놓치지 않았다. 대들지 않았고, 체력과 체격은 동생보다 못하지만 책임감은 그 청년을 꼭 빼닮았다. 그래서 그 청년과 그녀는 결심을 했다. 큰 아들이 원하는 대로 다른 지역의 고등학교를 보내기로. 유학이다. 그렇게 큰 아들은 고입도 대입도 취업도 한방에 합격을 했다. 이제 중년이 된 그와 그녀는 그 아들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자신들이 투팍한 삶에 반듯한 증거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그 아들의 동생은 운동을 즐기고, 친구를 좋아하고, 술과 오토바이 그리고 시 쓰기를 즐겼다. 그러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믿음으로 살아내고 있다. 큰 아들은 그의 부모가 그랬듯이 스무 살에 대학에서 동갑내기와 사랑에 빠졌다. 처음에는 친구였지만 군대를 다녀온 후 사랑을 시작했고, 알고 지낸 지 십 년 만에, 사귄 지 육 년 만에 결혼을 했다. 그 둘 사이에는 남매가 있다. 남매가 태어나 자라는 사이 중년을 넘어 노년이 된 오십년전의 그 청년과 그녀는 큰 아들 내외의 바람처럼 은퇴 후 옆 단지에 둥지를 틀었다. 산비탈에서 살던 콘크리트 블럭, 슬레이크 집보다 궁궐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 옆에 살게 되었다는 기쁨이 넘쳐 났다. 그 후 22년이 흘렀다. 


그 청년과 그녀는 둘 다 국민학교만 간신히 졸업을 했다. 그 청년은 무책임한 아비를 속으로 증오했다. 그 증오가 화살이 되어 자신을 찔러댔다. 살아남은 동생들과 연을 끊고 사는 것도 당신 때문이라고 한탄한다. 그 한탄이 큰 아들 내외에 집중되고 관심을 받고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먹고 사느라고 바쁜 작은 아들 내외보다는 큰 아들 내외에 집중했다. 일주일을 넘겨 전화를 하면,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아파도, 돈이 필요해도, 음식을 먹을 때도, 빨간 날에도 그렇게 그렇게 큰 아들 내외만을 바라봤다. 사랑이 넘치고, 형제애가 넘치고, 절약 정신이 넘치는 집안에서 자란 큰 아들의 아내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입바른 소리를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딱 스무 살 차이 나는 시부모와 함께 그렇게 22년이 흘렀다. 그 사이 큰 아들은 첫째가 열 살이 넘을 무렵, 난생처음으로 부모에게 바른말을 했단다. 하고 싶은 말을 했단다. 그 이후로 큰 아들은 결심을 했다. 세대의 대물림을 끊어 내기 위해 자식 교육의 방향을 틀어내기로. 큰 아들의 두 남매를 다른 곳에서, 다른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가치관, 문화를 학습하게 해야 한다는. 그 청년과 그녀가 그랬듯이. 무한한 희생이 묵시적으로 강요되는 구조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지기를. 그 과정에는 큰 아들의 아내의 결심히 크게 작용했다. 큰 아들만큼, 아니 큰 아들보다 훨씬 더 안전과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인 그의 아내. 하지만, 그렇게 남매들을 끼고 살면, 전통이고 관행이고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불편하고 불합리한 신념과 행위들을 고스란히 따라 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를 흔들리게 했다. 그리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하기 위해 남매의 의견에 동의하고 조금은 다른 길을 선택하였다.


2023년 1월 22일. 그녀의 결혼 후 스물두 번째 맞는 설날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의미는 오늘이 그녀가 준비하는 '마지막 차례상'이라는 것. 며칠 전, 오십여 년 전 그 청년을 선택했던 6남매 넷째 딸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단다. 한 시간을 넘게 통화를 했단다. 주된 내용은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까 이제는 산 사람들 위주로 살자'였단다. 그러면서 몇 년에 걸쳐 하나둘씩 지워 왔던 제사를 모두 없애자고 했단다. 자신이 스무 살에 물려받은, 얼굴도 모르는 시부모의 부모의 부모를 위한다고 했던 것들에 대해. 큰 아들 내외는 산비탈에서 이십 대부터 해왔던 그 '전통'이 과연 인간적인가,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조차 가질 수 없었을 때와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전통이 굴레가 되어 어쩌면 산비탈에서 보다 더 먹고살기 힘들어진 세상 속에서 자식을 키워내야 하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그들의 감내했던 무한 책임을 강요받는 건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 맞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굳이 서로 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우리 자식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전통은 무엇일까를 큰 아들 내외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눠왔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위아래 순서보다는 사람을, 그 사람의 말보다는 감정을, 갈등 금지보다는 갈등 해결을, 애착보다는 독립을 위한 힘을 키우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식에 대한 대물림의 중요성을. 오늘, 23년의 설날은 참으로 설레는 그날이 비로소 시작되었단다. 그 청년과 그의 아내도, 큰 아들 내외도, 작은 아들 부부도 뜨거운 눈물을 가슴으로 삼키면서. 멀리 있는 큰 아들의 큰 아들만 빼고 그렇게 여덟 식구가 다같이 모여 일, 이, 삼, 악! 하하하하, '눈치게임'을 했단다.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그 청년과 그녀와 눈을 보면서 그렇게 웃으면서 열살 막내가 좋아하는 그 게임을 함께, 한 시간을 넘게 한 건 오늘이 처음이란다. 그 열살이 그 청년만큼 나이를 먹어도 그 게임을 할 때 봤던 얼굴 표정을, 들렸던 웃음 소리를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란다. 그 한 시간이 오십년만의 한 시간이라는 사실은 모를지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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