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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08. 2023

죽은 친구가 보내는 소식

몇 달 전 친구가 하늘로 먼저 소풍을 떠났습니다. 그 친구는 대학에서 만난 동기입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삼수를 해서, 재수를 한 나의 형입니다. 학교 다니면서 학형, 학형, 형하고 불리기보다 친구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언제나 진지하게 유쾌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의롭고, 사랑이 넘쳤습니다. 학생 운동도 동기 사랑도 열심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소식이 뜸해진 동안 천안 외곽 어느 시골에서 형수를 만나 새 삶을 꾸렸습니다. 지금은 스무 살인 우리 아드님이 다섯 살 때 안고 찍은 결혼식 기념사진에서 잔주름에 해맑게 웃는 모습은 늙은 신입생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농촌 계몽 활동을 하며, 그 동네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그 속에서 형수를 만났답니다. 지금은 일팔청춘인 우리 따님이 막 돌을 지날 무렵, 어느 날 저녁. 계란 한 판과 표고버섯 상자를 바리바리 들고 우리 집을 노크했더랬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며 천안에서 의정부까지 단박에 달려왔더랬습니다. 


그렇게 오랜만에 자기 소식을 직접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천안에 흙으로 손수 집을 짓고 있노라고 자랑했습니다. 놀러 오라고 와서 자고 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렀습니다. 아내를 통해 친구라고 불리고 싶었던 형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 년 전쯤이었습니다. 암이랍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 뒤, 천안의 한 병원을 아내와 같이 갔습니다. 아내와 미리 연락을 주고받은 형은 여전히 해맑은 얼굴로 햇빛을 쬐며 병원 입구에 미리 나와 있었습니다. 링거를 꽂은 기둥을 혼자 끌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아재 개그를 하는 걸 보니 여전하다 싶었습니다. 항암 치료가 잘 되고 있고, 조만간 집으로 갈거라 했습니다. 그 옆에 형수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동네로 돌아와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는가 봅니다. 남의 집 일도 봐주고, 동네 대장 노릇도 잘하고. 하지만 일 년 전 암이 재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악화되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동기들이 먼저 만나서 찍어 올린 사진은 딴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투병 생활을 하다 작년 11월, 먼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연말에 코로나에 묻혀 있을 때. 동기들 톡방에 형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내용을 보고서야, 흐려지는 글을 읽고서야 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수가 보낸 거였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가끔, 형의 소식을 형처럼, 형의 이름으로 보내줍니다. 동기들이 고맙다고. 동기들이 형 같다고. 친구 같다고.





지교 동기님들 안녕하세요.  **씨 이름으로 글이 가서 놀라실 텐데요…**씨 옆지기 @@@입니다. 추운 날씨 모두 편안하신지요. **씨의 많은 추억과 소중한 인연들이 담긴 전화… 해지도 생각했으나 도저히 못하겠어서  잠시 정지해 두었다가 제 이름으로 명의변경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잠시 전화기에 담긴 **씨 흔적을 찾다가 지교카톡방을 보고 인사드리고 싶어 들렀습니다. 떠나기 전에 많이 아파했지만 그래도 지교 동기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간 것 같아 제게도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씨에게 보내주신 동기님들의 촘촘히 우정과 사랑 깊이 감사드립니다. 함께 한 16년의 시간과 추억들이 순간순간 떠올라 아직은 평상심을 찾기 어렵지만 **씨가 살아왔던 선한 삶의 지향과 실천들을 기억하며 잘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12월 1일부터 복직도 하였습니다. 지난 17일… 집 주변 새가 날아와 거실유리창에 부딪히고 날아갔는데 멋진 흔적을 남기고 갔네요. 직접보신 분들도… 사진으로 보신 분들도 **씨가 천국에 있다고 보낸 메시지라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편안해지고 마음 위로가 됩니다. 동기님들께도 작은 위로가 되시길 바라며 사진으로 공유합니다. 비록 **씨 떠나고 없지만 추억이 그립고  **씨 향이 생각나시면 언제든지 천안에 오세요. 제게도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바쁜 연말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씨 옆지기 @@@ 드림


친구네 흙집 벽유리에 생긴 흔적. 친구소식을 전해주느라 온 몸을 던졌을 파랑새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안녕하세요.

**씨 짝지입니다. 오늘은 **씨 가 하늘 소풍 간 지 100일… 그동안 함께 기도와 애도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맙고 감사한 마음 담아 안부 전합니다. 아직도 허전함이 익숙하지 않지만 **씨 사랑 마음에 새기며 씩씩하게 잘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 따뜻한 봄날 소풍 삼아  오시면 냉아국 끓여 따뜻한 밥 한 그릇 해드릴 수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에드 쉬런이라는 가수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모한 곡이라는데 가사가 좋아 100일 맞으며 지교 동기분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Ed Sheeran - Supermarket Flowers (한국어 가사/해석/자막) - YouTube - https://m.youtube.com/watch?v=GVgefOL5wKQ#bottom-sheet



이제 곧 온 세상이 천연색으로 옷 입을 때가 왔습니다. 그 사이를 그냥 걷기만 해도 살아있다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살아가면서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형은, 그 친구는 우리 동기를 속에 여전히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흩어져 바쁘게 살아가는 남은 친구들을 다시 잘 모아 놓아 주었습니다. 지금, 이제서야 친구들은 톡으로 삶을 조금씩 조금씩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면서, 살면서 나누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친구는 내 마음속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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