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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10. 2023

시시해도 하찮아도 괜찮아

사진: Unsplash의x )

운전을 하면서 항상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켜 놓는다. 크르럭거리는 엔진소리에 기분 좋은 목소리가 따라 나온다. 그러나 백색소음이 될 때가 대부분이다. 오늘 해야 할 일, 전해야 할 말, 이번주에 마무리해야 할 내용, 읽어야 할 책, 써야 할 글감, 떠오르는 글감 정리, 쓰고 있는 글 마무리하기, 누구누구 만나기, 허리 통증과 같은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잡념들에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추억 돋는 노래가 나오거나, 울컥하는 사연이 들리면 그 잡념들이 잠깐 밀려난다. 1월 어느 날. 그날도 그랬다.


"여러분,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올해는 어떤 좋은 계획 가지고 계신가요? 뭐 특별할 것 없지만 나도 한번 해보고 싶은 도전 있으신가요? 우리 같이 해봐요. 서로 응원해줘 봐요. 이름하야 '해볼 만 해' 챌린지". 출근 시간에 엔진 소리에 따라 나오는 카랑카랑하게 기분 좋은 DJ의 제안이었습니다. 그게 오만가지 잡념을 밀어내면서 내 귀에 쏙 하니 파고들었습니다. 그럴 때 잡념은 집념으로 짙어진다.


"여러분, 대단한 거, 멋진 거 그것도 의미 있는 거지요.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거, 소소한 거, 매우 매우 하찮은 거, 하지만 매우 구체적인 것 그걸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도전이 굳이 크고 벅차고 대단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작지만 기뻐지는 작은 성공, 좋은 습관을 기르는 거 어때요? 여러분의 해볼 만 해 챌린지를 공유해 주세요" 소소한 거, 작은 것, 매우 하찮은 거. 그 소리게 그렇게 내 고막을 살살 간지럽히다 둥둥 둥둥하고 때리고 있었다. 아, 좋다. 오, 궁금하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비슷한 시간에 많은 이들의 해볼 만한 도전을 들을 수 있었다. 잊고 있다가도 같은 멘트가 나오면 옆으로 지나치는 큰 트럭 소음이 신경 쓰일 정도로 집중하면서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떤 도전을 해보고 싶어 할까, 소소하고, 시시하고, 하찮다고 생각하는 도전이 뭘까'


그렇게 일주일을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도전을 들었습니다. 시시하고 소소하고 매우 하찮지만 하고 싶은, 변하고 싶은 작은 도전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여전히 무엇인가를 변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만보 걷기     #매일 감사하기     #매일 음악 듣기     #포커페이스 유지하기     #아침에 따뜻한 물 한잔 먹기

#크로스백 오른쪽으로 메기    #하루 1만 원씩 모으기     #연하 남편에게 반말하지 않기     #65세 운전면허 따기     #상추 키워 쌈 싸 먹기     #저녁 먹고 공원 한 바퀴 꼭 돌기     #온라인 쇼핑 줄이기     #우리 부서 화분들 1주일에 한번 물 주기     #걸을 때 주머니에 손 넣지 않기     #치약 끝부터 짜기     #똥손이지만 뜨개질 도전하기     #사춘기에게 잔소리 줄이기     #하루에 종이컵 하나 이하로 쓰기     #금연, 작년이어서 올해도 성공하기     #오늘부터 왼손잡이 연습하기     #새벽 요가 하기     #유튜브 공방 시작하기     #거제도 도보 여행하기     #변의가 느껴질 때 바로 화장실 가기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자 다짐하기    #옆자리 미운 선임 이쁘게 보기(상대방은 바꿀 수 없으니 내 맘을 바꿔보자)     #과속, 신호위반 고지서 절대 안 받기     #아침 메시지처럼 행복 기록해 보기     #일어나면 리모컨 대신 종이(책) 잡기     #매일 좋은 말 한 가지씩 해주기     #신경질적이고 큰 목소리 부드럽고 작게     #정년 퇴직한 남편과 잘 지내보기     #손발귀 매일 마사지해주고 고맙다고 칭찬해 주고 로션 발라주기     #거절하기     #아들 걱정 안 하기(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절대 큰소리 내지 않기(예외-도둑, 불)     #이틀에 한 번은 샤워하기     #남편, 자식에게 대답 잘하기     #하루에 한 가지 반찬 만들기     #토스트, 샌드위치 꾸준히 만들기     #빗질 잘하기     #대화할 때 머릿속으로 말조심 외치기     #눈 맞춤 인사하기     #사랑 고백하기(일단은 'ㅅ'부터)     


이 도전 중에 아내의 도전도 있습니다. 라디오를 같이 듣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이 이야기가 들리기 한참 전, 어느 날 저녁 맥주 한잔 하면서 그랬습니다. #거절하기. 물론 생략되어 있지만, 앞에 '잘'이라는 음절이 있을 겁니다. 현대인들이 참 많이 연습이 필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너도, 나도 거절하기를 잘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사회생활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는 연습입니다. 다른 이들의 도전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도전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몇 가지.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코브라 5회 하기

@워치에서 알람 울리면 앉았다 일어서 업무 보기

@일어섰다 다시 앉으면 바로 업무로 들어가지 말고 앉아서 다리 뻗어 유지하는 스트레칭 5회 하기

@담임 욕심 버리기

@내 교재에 한국지리 쉽게 공부하는 팁 삽입하기(힘들어하는 학생들 도와주기)


앞에 세 개는 허리병 재활과 연관되어 있다. 그래,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뭐? 내 허리를 원래대로 만드는 것. 달리고 자전거 타는 그 상태로 회복하는 것. 그리고 담임 욕심 버리기? 원래 그렇다. 어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어른이고 싶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그게 우리 반, 우리 반 하는 과거의 경쟁적 담임 욕심에 머물렀을 때가 많다. 그 욕심을 내려놓는 거다. 전체적으로 시큰둥 한 척. 개인적으로 이야기 자주 나누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글감 찾기. 저장하기. 쓰기. 마지막 하나는 내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 도와주기. 내 머릿속에 있는 팁들을 무한방출하기, 를 수업시간에 판서와 말로 했던 것들을 교재에 삽입하기. 그래서 하고 싶은데 관심이 적고, 요령이 없어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의욕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기. 그렇게 몇 개월간 만든 교재 속에 아래와 같은 디테일을 추가 삽입하는 데 다시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위에 이미지처럼 교재 속에 수업 중에 말고 판서로 잠깐씩 던졌던, 내 머릿속 팁을 텍스트화했다. <Fun Tips 이렇게 기억해 봐요>라고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면, 강원도의 도시 위치를 기억하는 방식. '얘들아? 강원도 제일 북쪽에서 가장 훌륭한 고등학교는 '철화양인고(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야. 그 학교에 다니는 '춘홍양(춘천-홍천-양양)'은 친구 '원횡평(원주-횡성-평창), 정영태(정선-영월-태백), 강동삼(강릉-동해-삼척)'과 같이 '고속버스타고 양양'(고성-속초-양양)으로 놀려갔데~'라고 말로 했던 것들을 펀팁으로 텍스트화해서 삽입을 했다. 어제까지 두 번째 시간 진도를 나갔는데, 상당수의 아이들이 이미 똘망똘망한 눈으로 다 외우고 있었다. 헤죽헤죽 웃으면서.


아내는 올해 나에게 대박 재물운이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어디선가 뭔가를 물어보고 온 듯. 내가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좋데, 너무 좋대. 금전운이 대박이래'라고 자주 이야기 한다. 학교에 애들 가르치는 내가 월급 말고 용돈조차 생길 곳이 없는데..... 아, 쓴 글이 대박 나나라는 아니면 말고의 상상을 한다. 월터의 상상이 현실이 디는 기적처럼. 내가 월터가 되는 그런 상상을 혼자 해 보면서 이 새벽, 이 공간에서 풉하고 내뱉어 본다.


하지만 집념이 다시 잡념이 되고, 현실이 상상처럼 희미해지는 건, 나의 의지는 다시 일상의 여행 속에 묻힐 가능성은 지금껏 경험치만으로도 충분하다. 차에서 내리면, 하루 업무를 하고 나면, 퇴근을 하고 그다음 날 다시 출근하기 위해 그 시각에 엔진을 켜기 전까지 다시 잊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아, 모든 게 이렇다. 태도의 문제다. 간절하지 않으면, 불편하지 않으면 괜찮다. 변화하지 않는다. 특히, 항상 의미 있고 재미있고 남는 게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갈구하는 데는 열정적이다. 하지만 나에게 집중하는 힘은, 연습은 되어 있지 않다. 소소하고, 시시하고, 매우 하찮은 건 그냥 소소하고 시시하고 하찮은 거다. 나를 변화시키는 데 의미가 그리 많지 않은 거다,라는 무의식적인 자기 무시의 태도 때문이다. 항상 공허한 큰 것에 대한 열망 속에서 좌절하지 말자. 나의 인생은 항상 자질구레한 작은 성공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거니까.


2월 둘째 주. 늦은 세배를 하러 찾아온 서른아홉의 여고생. 소주 한잔 기울이면서,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자신과 동생의 이야기를 나와 친구들에게 해주었다. 그러면서 울다 웃다 하는 모습에서 열일곱, 교실에서의 미소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학생 때부터 고졸까지 동네에서 유명하리만큼 말썽을 피웠다는 제자의 두 살 터울 남동생. 그런데 이 사람이 이런저런 말썽과정에서도 한 게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는 데 열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다 한 달 80만 원의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누나한테 거금 200만 원만 만들어 주면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했단다. 그렇게 어렵게 만들어 준 그 돈으로 컴퓨터를 사고, 그 이후 밖에서 말썽을 피우는 시간을 빼면,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고, 영상을 올리고, 게임을 하고, 음악을 듣고.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어느 날. '누나? 나 구글이랑 아마존에 합격했는데, 어디를 갈까?'라는 말을 밥 먹다가 담담하게 하더란다. 부모님은 못 알아들으시고 두 눈 동그랗게 쳐다만 볼 때 누나가 그 구글, 그 아마존?이라고 물었단다. 그리고는 지금 미국 아마존 본사에서 개발자로 살고 있다고. 그렇다. 십 년 넘게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가치관은? 등등의 것들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아주 객관적이고 공정한 방식이 바로 그 사람의 흔적을 추적해 보는 것이란다. 선진국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재를 발굴하는 방식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다. 태도 때문에 다시 의지가 꺾이는 것을 방지하는 방식은 단 하나.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 속에서 스스로 반추하는 것이다.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지금 나의 이 글도 영원히 어딘가에 남아, 나를 나타낸다. 그래서 쓰는 게 신나지만, 무섭다.


하지만 써야만 한다. 쓰는 내가 쓰지 않았을 때의 나보다 훨씬 더 호기심이 많다. 관찰을 한다. 조심성이 생긴다. 욕심을 객관적으로 경계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실천한다. 그렇게 나를 표현한다. 남을 배려하면서도 마음 졸이고, 힘들어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기록 속에서 발견한다. 그렇게 기록 속에서 만나는 나가 나에게도 낯설지 않은 나가 된다.

고3 한국지리 교재 속에 기록으로 남긴 나의 도전. "해볼말한지" 챌린지

나의 기록을 통해 나를 선택하고 만나 '자그마한 목표'라도 이루고 싶은 열여덟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오늘도 그 아이들을 위해 나부터, 나 먼저  신나게, scene나게 떠들어야 한다. 이게 나의 올해 시시하고, 하찮지만, 흥분되는 챌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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