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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KOON Feb 03. 2024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멋진 인생>


미국의 작은 마을 배드퍼드 폴즈. 그 곳엔 조지 베일리라는 사내가 살고 있다. 사실 그는 배드퍼드 폴즈에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태어난 곳은 스스로가 정할새도 없이 그 곳이었으나,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항상 배드퍼드 폴즈를 떠나고자 했던 거지. 그리고 실제로 그에겐 그런 기회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세계 방방곡곡을 돌며 어릴적 그 꿈을 키워나갈 타이밍이 찾아왔던 것. 하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로인한 가족 사업 운영의 공백을 막기위해, 그는 스스로를 그토록 떠나고자 했던 배드퍼드 폴즈 안에 구겨넣었다. 이후 세월은 그리도 무상하게 흐르고... 


졸지에 배드퍼드 폴즈의 모든 대소사를 자신의 짐 마냥 짊어지고 살아가던 조지 베일리에게, 아주 큰 위기가 찾아온다. 삼촌이 실수로 잃어버린 돈 때문에, 사업 전체가 고꾸라질 상황!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지는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답은 없고. 끝내 그가 선택한 건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의 삶을 내려놓는 것. 그렇게 그는 한겨울 강물 위로 투신하기 위해 눈보라를 맞으며 철교를 찾아 오른다. 하지만 일생동안 이웃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에게, 하늘은 단 한 번의 기회를 내려주나니... 클래런스라는 이름의 수호천사가 갑자기 그를 찾아 구해주고는 한 가지 제안을 건넨다. "너 스스로가 없느니만 못한 사람이라고? 그럼 실제로 조지 자네가 없는 세상을 한 번 구경해보겠나?"


21세기에 다시 찾아보는 그 옛날의 고전들이 으레 다 그렇듯이, <멋진 인생> 역시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는 다소 고리타분한 이야기와 교훈을 남기는 것처럼 보인다. 이웃간의 우애와 가족간의 정, 친구들과의 의리와 연인간의 사랑 등 세상에 그것들보다 소중한 건 없을 거라 말하는 영화. 그런데 그런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이 이리도 오래 살아남는 비법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 이야기들에 깃든 그같은 교훈들이 우리네 인생사에서 바로 절대적이기 때문이지. 우애와 정, 의리와 사랑 등의 보편적인 가치들이 우리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이란 진리는 그 시점이 21세기든 20세기든 아니면 하다못해 10세기든 상관없이 절대적이다. 22세기나 31세기 같은 미래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속단하긴 어렵겠지만, 아마 그 가치들은 그 때에도 충분히 유효할 것. 


조지는 수호천사 클래런스를 통해 자신이 없는 시간선의 세상을 탐방하게 된다. 그런데 그 멀티버스의 분위기는 조지가 살아온 그의 우주와 확연히 달랐다. 조지를 낳지 않은 조지의 어머니는 피폐해졌다. 그가 한평생동안 기를 쓰고 막았던 동네 공식 스크루지 영감, 포터 씨는 결국 배드퍼드 폴즈를 사실상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한평생 이웃들을 위해 헌신해온 조지가 없었던 탓에, 포터스빌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그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자기 몸 누일 곳 없는 상황에 놓였다. 여기에 조지 자신이 없는 시간선이니, 그가 낳을 예정이었던 어린 자녀들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건 당연지사고. 


하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동생의 죽음을 조지가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지는 어렸을 때 개울에 빠진 동생을 구해준 바 있었다. 허나 이 시간선에서 조지는 존재하지 않잖아? 때문에 그의 어린 동생이자 이 시간선에서 외동아들이었을 해리는 어릴 적 그 개울에 빠져 그대로 죽었다. 그런데 원래의 시간선에서 해리는 성인이 된 후 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투기 조종사로서 정말이지 많은 인명들을 구했었거든. 헌데 이 시간선에서 성인이 된 해리는 존재하지 않잖아?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그가 구했어야 했던 사람들은 이 멀티버스 안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이라고? 단순히 조지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맞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너무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내가 뭐라고. 내가 해봤자. 내가 한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겠어?- 등등. 우리는 일개 개인이기에 이 거대한 세상을 바꿔낼 수 없을 것이란 체념과 달관. 그리고 그 체념과 달관은 밖이 아닌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는 착각. 나도 하고 당신도 하고 우리 모두가 종종 하는 바로 그 착각. 그렇지만 수호천사 클래런스가 조지에게 보여줬던 것처럼,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이 그 만약의 시간선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물론 서점 매대에 널린 흔하디흔한 자기계발서들처럼 마냥 인생을 낙관론으로만 바라보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아마도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느낄 때보다,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느낄 때가 조금 더 많을 것이기에.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다. 당신은 매일 가족 누군가를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일 것이다. 설사 가족이 없다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당신은 당신이 일하는 회사 또는 사업체를 먹여살리는 존재다. 직업이 없다고? 최소한 먹기는 할 것 아닌가. 당신은 먹고 입고 보고 즐기는 데에 돈을 쓰며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를 긍정적 의미에서 불려줄 것이다. 기타등등, 언제나 말해왔지만 우리네 운명은 너무나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운명 공동체에서는 당신 하나를 깔끔하게 적출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신이 사라진다면 당신이 행해온 무한한 가능성들도 모조리 다 제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당신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끝내 다시금 원래의 시간선으로 돌아온 조지 베일리는 자신의 인생 곳곳에 깃든 모든 요소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를 역체감 한다. 징글징글하게 눈이 오던 동네도 마냥 예쁘게 보이고, 오래되고 곳곳에 흠결이 생긴 집과 사람들 또한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하는 이웃들의 애정과 의리 어린 연대. <멋진 인생>은 제목 그대로, 정말이지 멋진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본주의자였던 감독 프랭크 카프라의 숨결이 곳곳에 들이차있는 영화. 바로 그렇기에, 이 영화 이야기에 대한 마지막은 그의 생전 인터뷰 내용으로 대신하는 게 무척이나 적절할 것 같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최고의 감정은 사랑입니다.

이 세상이 악하지만은 않아요.

네, 우린 악몽을 꾸지만 꿈도 꾸잖아요.

이 세상엔 악행이 있지만

우리에게 위대한 면도 있죠.

이 세상에 선은 존재합니다.


멋진 세상이에요.


- 프랭크 카프라 -


<멋진 인생> / 프랭크 카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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