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새해 첫날, 꼭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싶었다.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는 2014년 4월 16일에 벌어졌던 참사를 떠올렸었지. 헌데 이제 더는 없기를 바랐던 그 비슷한 참사가 벌써 작년이 된 2024년 12월 말에 또 일어났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155명 전원이 무사히 생존했던 그 때 그 당시 허드슨강의 상황을 나는 다시 보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위안 아닌 위안을 받고 싶을 뿐이었다.
155명 전원 생존이라는 기적. 그 기적의 선두엔 물론 기장 설리가 있었다. 40여년동안 비행기를 몰아온 실력으로 위급한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함으로써 모두를 살려낸 영웅. 그러나 설리 말마따나, 그와 그의 동료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치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모두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 한 마음 한 뜻이란 무엇인가. 그건 그들의 직업 정신에 있었다. 영웅이 되기를 원치도 않았고, 위급한 순간 앞에서 놀라 망설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직업윤리대로 생각하고 또 움직였을 뿐. 기장과 부기장은 프로토콜에 맞춰 비행기를 운항했고, 승무원들 역시 프로토콜에 맞춰 승객들을 진정시켰다. 여기에 비상착수 후 155명을 돕기 위해 달려왔던 출근 페리의 선장 및 선원들, 구조대의 요원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 직업에 부여된 바대로 행동했을 뿐이었고.
그저 정해진대로 요행 없이 따박따박 해내는 것.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볼수도 있겠으나, 그간의 수많은 참사들을 모두 인재로 귀결시켜왔던 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그는 참으로 고결하고도 부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설리를 비롯한 그 사람들은 모두 그 날 자신의 직업윤리에 명시된대로 움직였고 또 책임을 다 했다. 하지만 2014년 대한민국의 한 선장은 자신의 배와 그 안의 승객들을 모두 버린채 나몰라라 하며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되어 또다른 누군가는 2022년 10월의 이태원을 제대로 통제 관리하지도 못했으면서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지. 슬프게도 재난 공화국이란 멸칭으로 불리는 이 나라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프로 정신은 그저 멀게만 느껴져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은 허드슨강 비상착수로 영화를 끝맺음하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155명의 생존 후 상황에 더 무게감을 싣는다. <캐스트 어웨이>의 진짜 이야기가 무인도에서 탈출한 이후부터였듯, <설리> 또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통해 인물과 사회를 보다 더 깊게 조망한다. 재난의 순간에 비록 옳은 선택을 했음에도 설리는 끝까지 자신의 결정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저 겸손이나 겸양을 떠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영웅 칭호를 마다하는 설리. 역설적으로 그럼으로써 설리는 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다.
선뜻보면 극중 악당들처럼 보이는 사고 조사관들. 하지만 그들도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직업윤리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근데 그게 또 부러웠다. 미국이란 나라의 시스템은 저리도 견고하구나. 한 사람을 영웅으로 남기기 전에, 일단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최대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 드는 구나. 그 얄밉도록 집요한 시스템의 근성이 너무 부러웠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벌어진 사고 이후 그것을 어떻게 수습하느냐도 중요하다. <설리> 속 미국의 시스템은 그 점에서 너무나 견고해보였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또 어땠나. 대한민국의 누군가들은 세월호를 두고 정쟁이 되어버렸다며 혀를 차는 것은 물론이요, 그 사건의 상징이 된 노란 리본을 보면 경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2022년의 이태원 참사 유족들을 보고 누군가는 이리 말했었지, "이 사건이 세월호 사건처럼 횡령 수단으로 악용되면 안 될 것"이라고. 속 터지게도 정작 사건에 실제적인 책임이 있는 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가끔씩 장르적인 자장 안에서 뜻을 펼쳐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항상 인간이란 존재를 철저히 해부해왔다. 그리고 그는 <설리>를 통해 '인간성'의 오류를 인정한다. AI 컴퓨터에 비해 인간은 나약하고, 또 잘못된 결정에 휘둘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은 그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또 힘이 있다. 그래서 결국 인간은 더 위대하다. 그래서 결국 인간의 결정은 더 숭고하다. AI와는 달리 어떤 신념과 결정에 있어 스스로의 목숨도 걸 수 있는 인간의 힘. 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그 관점에 동의하며, 그 힘이 부디 이 대한민국에도 하루빨리 제대로 깃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