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직격. 시대유감.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by CINEKOON


작품 자체는 이전에 완성되었고, 국내 개봉이 많이 늦어 이제서야 도착한 영화다. 그러나 2024년의 마지막 날로 결정된 국내 개봉일이 어쩌면 이 작품을 현실과 가장 잘 공명시키는 날짜가 아닐까 싶다. 영화가 만들어진 본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어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기 직전이고, 이번에 개봉된 우리나라에서는 때아닌 비상계엄 선언을 한 제정신 아닌 대통령이 탄핵과 체포를 동시에 당하기 직전이지 않은가. 삶이 예술을 받아들이듯, 예술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반영하고 체화해낸다. <시빌 워 - 분열의 시대>는 그 주장의 가장 최신 예시다.


9/11 테러를 제외하면 개국이래 단 한 번도 본토 침공을 당해본 적이 없는 국가. 그것도 국지전 또는 전면전은 영토에서 단 한 번도 치러본 적이 없는 국가. 누군가는 말했다, 미국이야말로 21세기 가장 최후의 제국이라고. 그러면서도 역사상 가장 친절하고 관대한 제국이라고도 말했지. 물론 그 말을 두고 한국인으로서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가치 평가까지 덧붙이고 싶진 않다. 하지만 <시빌 워>는 그 관대한 최후의 제국 또한 내부적으로 충분히 무너질 수 있음을 무섭도록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주관성을 교묘하게 감춘 이 영화만의 객관적 시선은 주인공들이 모두 종군기자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더 잘 성립된다.


작은 규모의 전쟁 영화이면서도 로드 무비이기도 한데, 누가 알렉스 갈렌드 아니랄까봐 기묘한 긴장감을 시종일관 선사한다. 카메라를 통해 보여주지 않다가, 이후 앵글을 움직여 숨겨져 있던 피사체 또는 정보를 드러내는 방식은 긴장감을 창출하는 좋은 방법일 뿐더러 종군기자라는 주인공들의 직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무척이나 적절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시카리오>를 통해 드니 빌뇌브가 그랬듯, 클로즈업 따위의 강조 없이 풀샷 안에서 인간의 잔인한 면모를 그냥 있는 그대로 전시함으로써 사실감과 냉혹함을 배가시키고.


비록 태평양 건너 남의 나라를 배경으로 한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최근 12/3 비상 계엄 사태를 경험했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영화를 보며 괜시리 으스스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태평양이 넓다고 해서 미국이란 나라의 이야기가 우리와 아주 상관없는 이야기는 또 아닐 것이다. 언제나 말해왔지만, 우리는 놀랍도록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란 나라가 비단 우리와 동맹국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현상은 한국에서도, 또 다른 그 어느 나라에서도 다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 아닌가. 지구촌이란 고색창연한 말을 굳이 쓰자면, 이제 미국에서 유행하는 음악은 한국에서도 유행한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드라마는 또 중국에서도 유행하고, 중국에서 유행하는 패션은 또 저멀리 브라질에서도 유행할 수 있지 않은가.


문화가 그렇듯, 사회에 대한 인식과 그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감정들 역시 지구촌을 휘감는 유행의 일부일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를 넘어 세계 곳곳에서 분열과 혐오, 날조와 선동, 비난과 몰이해가 넘쳐나고 있다. 극중 주인공 리의 말마따나, <시빌 워>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극단적인 이야기로 경고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멈추세요"라고.


tempImage2ClFRt.heic <시빌 워 - 분열의 시대> / 알렉스 갈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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