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여행하고 싶다

<리얼 페인>

by CINEKOON


유태계 미국인으로 사촌지간인 데이비드와 벤지. 두 사람은 평소 가까웠던 친할머니의 죽음을 계기삼아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서는 홀로코스트 여행에 나선다. 그런데 서로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지만 성향은 너무나도 다르다. 데이비드는 안정된 직장에 결혼 후 자식까지 얻은 반면, 벤지는 아직도 부모의 집 지하실에 얹혀 사는 신세이며 거의 백수나 다름없다. 데이비드는 수줍고 낯을 많이 가리는 내향형 인간인데 반해, 벤지는 처음 본 사람과도 바로 가까워질 수 있는 확신의 외향형 인간. 여기에 데이비드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철저한 계획형, 반대로 벤지는 역시나 당연하다는 듯 마음가는대로 하는 즉흥형.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치면 데이비드는 필시 ISTJ일 것이다. 아마 벤지는 ENFP겠지.


버디 무비나 로드 무비는 대개 서로 다른 정반대 타입의 두 주인공을 상정하기 마련이고 과연 <리얼 페인>도 그렇다. 다만 제아무리 주인공이 둘이라 할지라도 조금이나마 더 관점을 점유하는 쪽이 있기 마련. <리얼 페인>의 경우엔 데이비드가 그 관찰자 역할을 맡는다. 비록 영화의 시작과 끝 모두를 장식하는 것은 벤지의 클로즈업이지만, 그 클로즈업은 관찰자를 선언하기 보다는 오히려 관찰 대상을 시연하는 목적에 더 가깝다. 그렇게 우리는 아마 ISTJ가 아닐까 싶은 데이비드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벤지와 이 여행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데이비드 말에 따르면 벤지는 그가 방에 들어오는 순간 어디선가 불이 환하게 켜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항상 아우라가 따라다니고 또 펼쳐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다. 그의 말마따나 관객들도 자꾸만 벤지를 더 기대하게 된다. 이번엔 그가 어떤 행동으로 이 일견 지루해 보이는 여행에 활기를 더해줄지, 또 어떤 말을 해서 데이비드를 난처하게 만들며 괴롭힐지를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은 우리의 대변인이 데이비드이기에 더 강화된다. 한없이 소심하고 소극적인 데이비드의 눈을 거쳐 보는 벤지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놀라운 건 벤지가 일종의 재밌는 양념 정도로만 쓰이지 않는단 점이다. 점점 여행이 진행됨에 따라, 데이비드도 고백하게 된다. 그가 벤지에게 느끼는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동정과 비애를 말이다. 그토록 밝은 벤지는 최근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었다고 한다. 데이비드는 다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그에 대해 고백하며 울먹인다. 그리고 그 장면으로 말미암아 벤지는 물론 데이비드의 캐릭터 역시 입체적으로 도톰해진다. 이 장면 즈음부턴 우리 모두 데이비드와 벤지 둘 다를 진심으로 아끼고 걱정하고 있다.


둘의 키 컬러가 계속 유지되다 종국엔 뒤바뀐단 점이 흥미롭다. 여행내내 데이비드는 파란 옷을, 벤지는 빨간 옷을 입고 폴란드를 돌아다닌다. 그러다 여행이 마무리될 때쯤엔 데이비드가 빨간 옷을, 벤지가 파란 옷을 갈아입게 된다. 여행, 다투고 서로에게서 도망치기도 하지만 종국엔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경험. 흔히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고들 하지 않는가. <리얼 페인>은 그렇게 '데이비드와 벤지 두 사람, 그리고 그 두 사람의 관계'라는 세계를 안내하는 가이드북이다. 아주 짧은 시간임에도, 마치 오랫동안 열어둔 창을 통해 그 두 사람의 옛 시절이 쏟아져들어오는 것만 같은 영화. <리얼 페인>을 보고 느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여행하고 싶은 것을 넘어, 그 '소중한 사람'이란 세계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가치를. 


tempImageE65tdg.heic <리얼 페인> / 제시 아이젠버그


keyword
이전 10화우리 모두의 일기가 된 그녀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