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의 일기 - 뉴 챕터>
9년만에 다시 돌아온 속편이자 시리즈의 최종장. 9년 전의 3편에서 브리짓과 마크가 결혼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길래, 이번 4편에서 생기는 갈등이라고 해봐야 심각해봤자 기껏해 이혼 위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혼 위에는 사별이 있었구나. 오랜만에 돌아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뉴 챕터>는 그렇게 마크 다시가 사망한지 딱 4년이 되는 시점으로 우리를 불러 모은다. 다시 혼자가 된 브리짓. 어느덧 나이도, 상황도 달라졌지만 1편에서 보여줬던 그 때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새로운 일기를 써 나가기 시작한다.
마크를 죽이고 시작한 제작진들에게 일견 화가 났지만, 당시에도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을지언정 원작 소설에서 역시 그런 설정이었다고 하니 더 덧붙일 말은 없다. 그러나 이왕 그런 설정을 했다면 그게 브리짓의 성장으로도 이어지는 동시에, 마크 자체에 대한 헌사도 선연히 존재해야할 것. 그리고 정말이지 다행스럽게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 - 뉴 챕터>는 나를 비롯한 관객들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혼자가 된 브리짓은 자신의 눈앞에 자꾸 나타나 아른거리는 마크의 환영과 더불어 주위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과 잔소리에 다시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싱글맘으로서 쉽지만은 않은 두 아이 육아에, 자신을 남들과 계속 비교하게 되는 브리짓 특유의 고질병 역시 재발하고. 그러나 이젠 다소 구태의연하게 느껴질지라도, 짐짓 혼란스럽게만 느껴질 수 있는 그런 상황 안에서 브리짓이 스스로를 다잡으며 자기 중심을 세우는 성장의 과정이 이번에도 역시 내게 먹혀들었다.
연출이 무척 훌륭하단 생각이 들었다. 연하남인 록스터와의 당황스런 첫 만남은 썩 브리짓 존스스러운데, 방송 스튜디오에서 펼쳐진 그와의 끝맺음은 '브리짓도 어느새 어른이 되었구나'가 절로 느껴지게 만드는 연출로 잘 마무리 되었다. 쏘아붙이거나 자신의 감정을 주르륵 펼쳐놓곤 통쾌하게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의 추억에 대해 좋았다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야할 것 같다 다정하게 말해주는 브리짓이 정말로 좋은 어른처럼 느껴졌다. 여기에 아들의 학교 선생님이자 브리짓의 새로운 사랑으로 등극하게 되는 스콧과의 연애가 시작되는 장면 역시 그랬다. 과학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고백 멘트가 아닐까 싶어지는 대사 이후, 두 사람이 첫키스를 하는데 거기서 카메라가 인물들에게 더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 멀어진다. 딱 한 쇼트. 그 멀찍이서 찍은 딱 한 쇼트 덕에 그 장면 전체가 너무 좋아졌다. 마치 그 공간 전체가 두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외에도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은 많다. 새 일기를 쓰겠노라 브리짓이 결심하는 장면에서 그녀 주위를 둘러싸고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주위 사람들의 환영 장면이 그렇고, 또 브리짓 대신 아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마크의 환영을 두고 카메라가 그에 포커스를 부러 맞추지 않아 오히려 더 아련한 감상을 전한 부분 등이 바로 그랬다. 시리즈의 포문을 열어젖힌 1편으로부터 무려 24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 맞이한 최종편이 이토록 좋은 연출로 마무리 되었다니. 정말이지 다행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기 위해 지난 세 편의 시리즈를 연이어 보고 극장을 찾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시리즈의 25년여 역사가 이번 영화에서 한데모여 샴페인처럼 터지는 느낌이었거든. 스크린 안의 배우들을 보며 정말이지 감사했다. 25년은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영화 말고 우리들조차도 그 25년동안 정말이지 많은 인연들을 만나고 또 떠나보내지 않았던가. 25년만에, 혹은 25년동안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나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는 이제 다 알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배우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르네 젤위거는 물론이고 비록 극중 사망처리 됐지만 콜린 퍼스, 그리고 전편에서 사망처리 됐지만 죽지도 않고 다시 돌아온 휴 그랜트까지. 세 사람이 계속 중심을 잡아줘 든든했다. 그리고 브리짓의 아버지인 짐 브로드벤트와 어머니인 젬마 존스. 이외 브리짓의 오랜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심지어는 어머니의 오랜 친구 역할과 직장 상사 및 직장내 분장사까지 캐스팅이 다 유지됐더라. 실상 3편에서 잭 역할을 했던 패트릭 뎀시 정도를 제외하면 크고 작은 역할의 모두가 이번 최종편에서 다 다시 모여준 셈이다. 그게 너무 고마웠다. 영화의 마지막을 소소하게 장식하는 신년 파티가 마치 시리즈 모두의 마지막 파티 같아서 더 잔잔하게 덮쳐왔다.
올빼미가 되어 브리짓과 두 아이를 줄곧 지켜봐오던 마크. 브리짓이 스콧과 안정적인 새 사랑을 시작하자 문득 날아올라 떠나는 그 올빼미, 그러니까 마크처럼. 어쩌면 이젠 나도 홀가분히 브리짓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지켜보지 않아도 그녀는 충분히 잘 살아낼 것이다. 25년간 훔쳐봐왔던 그녀의 일기. 이제는 기분좋게 덮어주련다. 잘 살았어, 브리짓. 앞으로도 잘 살길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