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말고, 위로를 믿으세요

<아노라>

by CINEKOON


사창가에서 일하는 성 노동자들은 보통 그곳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들이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컨대 서울에서 활동하는 성 노동자들은 경상도나 전라도 등의 타 지역을 고향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란 것. 그 이유가 참 명징하더라. 일하다가 혹시라도 아는 얼굴과 마주치면 안 되니까. 가족 친지는 물론이고 혹시라도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나게 될까봐. 아마 나였어도 그게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의 아노라는 그조차 꿈꾸지 못했다. 미국 땅이 그리 넓다는데도, 아노라는 자신의 집에서 지하철로 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의 클럽에서 육체를 밑천삼아 일을 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 미소로 호객하고 몸짓으로 돈을 버는 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언뜻 듣기로 잘 나가는 성 노동자들은 돈도 많이 벌어 명품 가방을 여러개 들고 다닌다던데 이 역시 아노라에게는 요원한 일인가 보다. 가난에 의해 꿈과 희망까지 저당잡힌 젊은이의 처량한 뒷모습이 <아노라>의 도입부를 더 쓸쓸하게 만든다.


그러던 그녀에게 기회처럼 보이는 것이 왔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재벌 2세 이반. 아노라도 처음엔 그를 일종의 고객으로서만 대하나 이후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이반의 진심, 아니 적어도 진심처럼 보였던 그 무언가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홧김에 결혼까지 해버린 두 사람. 그렇게 아노라는 제 2의 신데렐라가 되어 영원히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것처럼 보였다. 이반의 부모가 보낸 웬 덜 떨어진 하수인들이 찾아오기 전까진 말이다.


<아노라>는 션 베이커가 만든 80년대 풍의 하룻밤 소동극이며,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군상극이다. 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았음에도 사회 고발이나 에로티시즘에 매몰되지 않은채 오히려 일견 로맨틱 코미디처럼 발랄하게 풀어낸 스타일 또한 인상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극중 아노라와 이반의 데이트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속 클라이막스 마냥 시각적으로 예쁘고 아름답다. 두 남녀는 마치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처럼 서로를 껴안고, 그런 그들이 누비는 라스베가스의 풍경 또한 로스엔젤레스 뺨치는 환락의 낭만으로 가득하다. 성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무조건 어둡고 비릿할 거라는 모두의 선입견을 깬 도발적이면서도 산뜻한 영화. 아마 <아노라>는 그런 의미에서 역사에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수사를 빼더라도... 당신이 이 영화에 만족했든 또는 만족 못했든, 이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다. 당신은 아마 아노라를 잊지 못할 것이다. 희망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삶에서 일말의 구원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해 온몸을 투신했던. 하지만 이후 돌아온 철저한 배신감과 공허함에 일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던. 아마 당신은 그런 아노라의 마지막 흐느낌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비록 성 노동자란 상대적으로 비일반적인 직업의 주인공을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혼란으로 약동하는 요즈음의 세계에서 그같은 아노라의 모습에 대부분의 20대 청년들 모습이 겹쳐 보인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열정은 짧고 순간적이기에 열정이다. 길고 영원하면 그것은 열정이 아닐 것이다. 물론 열정은 유효하고, 때때로 소중하다. 그러나 열정이란 것의 태생적 속성이 그러하니, 그거 하나만 믿고 인생을 전부 걸기엔 우리네 삶이 너무 길다. 그러니까... 열정처럼 보이는 것 말고 위로처럼 확실한 걸 믿으면 어떨까. 마구 뜨거워져 서로를 탐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등을 토닥여주며 달래주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으니까. 무언가 꼰대의 불필요한 조언 같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아노라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고르처럼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따스히 속삭여주고 싶었다. 


tempImagevYwBB5.heic <아노라> / 션 베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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