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부가 되고 나서 느낀 불안감과 무력감
2019년 10월
문제가 없는 하루하루다.
문제가 있으면 배불러 터진 소리다.
남편이 일이 힘들다고 푸념하지만
그게 스트레스였다면 애초에 헤어졌을 거고
그걸 빌미로 폭력과 음주와 바람은
가당치도 않는 인물이다.
오히려 집에만 있는 내가 약간의 불만족스러운 하루를 툴툴대면
세상 무너진 거 같은 표정으로 어떡하지 어떻게 해줘야 하지 하면서
재롱을 부리거나 포옹을 해주면서 한국 다녀올래 마사지받고 올래 했다.
시댁에서 좁쌀만 한 스트레스를 준다 해도
거리가 머니 상관없다인데 그러한 문제조차 없다.
뭐가 그렇게 문제여서 무기력하고 가끔 우울해질까.
1년 가까이 지켜보던 남편이
한국에서 부인과 치료를 받는 동안
정신과도 같이 가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모든 건 미리미리 성격이라
치료보다 중요한 예방을 강조하며
진료 보길 추천했다.
맘을 먹고 예약하고(정신과는 대개 예약제)
진료 전 인터넷에서 짜깁기한 것
같은 테스트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막 최면술사 같은 느낌은 아니고
감기 걸려 왔어요, 하는 게 맞을 듯한
내과 의원 같은 인테리어였다.
테스트지와 면담 결과로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진단을 내린다.
불안증세가 있다 했다.
어떤 정서가 있는지 원인이 뭐라 생각하는지
치료의 방법이 있고 선택할 수 있다.
강요할 수 없다는 인트로를 남기고 내 차례가 되었다.
이러저러한 내 상황 때문에 그런가 봐요,
약물은 좀 더 증상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 하고 싶어요.
알겠어요. 그렇게 하세요.
나와서 진료받았고 불안 장애 초기 증상이라는 얘기 들었다 하니
"많이 불안해~?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봐. 더 잘할게. 왜 이리 불안해 하누ㅠㅠ"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뭘 그러시나,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사모님인데
엄마는 배 떼지가 부른 사람이
고민이 많은 법이라 그랬다.
"남들은 벌어주는 돈으로 집에서 쉬고 싶어 하는데 그 좋은 걸 마다하냐."
집에만 있다 보면
내가 이러다 경력이 오래 단절되고
중국어도 어중간하고,
영어점수도 못 만들고,
대학원도 못 가고,
취업도 계속 떨어질 거 같은
그런 생각들이 지배하는 시간이 종종 생긴다.
맘을 다잡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 라는
남편의 긍정적인 답변은
예습 복습 철저히 하면 서울대 가지, 라는
허망한 얘기같이 들렸다.
그 결과로 2세에 대한 어긋난 열망이 발현되기도 했다.
아기를 낳으면 생산적인 인간이 되지 않을까.
기러기는 죽어도 못한다는 남편 덕분에
여기서 당장 의미 있고 생산적인 건
2세를 배출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
그거라도 하게 해 달라고 떼를 썼다.
한 두 달 정도?
그러나 단호한 남편의 입장 성명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육아시간이 현저히 작을 거고 그만큼 나의 희생이 배가 될 거고,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공부도 일도 미뤄지고 미뤄지다 보면 몸도 마음도 아파질 거다. 나는 그걸 두고 볼 수가 없고, 아이를 안 가지면 누구 하나 아픈 것도 아니고 오히려 가지면 아플 수 있는데 왜 지금이냐, 나는 반대한다. 우리가 둘 다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지금보다 나아졌을 때 가지는 것이 맞다. 한 때의 흐려진 판단력이 너의 미래와 나의 삶을 흔들어놓을 순 없다.
하긴, 아기가 없는 20대 주부도 이 정돈데
진짜 일하고 싶어 하는
전업주부들은 어떤 심정일지
백 분의 일 정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풍요로웠지만 자아실현을
이루는 돈 받고 하는 일이 없다는
일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역시, 남의 신발을 신지 않고서는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긴
힘들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신발을 신어보지 않고도
자기 일처럼 어려워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고마운 남편이
있어서 참 고마웠다.
병원을 나서고 중국으로 돌아오면서
스스로 불안을 없앨 수 있도록
장치를 세워 두었다.
출퇴근 시간처럼 반복적인 일상,
업무 같은 공부 시간 만들기,
식사 시간은 최소화 하기 등
집에 있으면서 생긴 자유들을 줄여가며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