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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유리 Oct 13. 2021

4. 로마의 휴일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 “로마”의 휴일     


언젠가 로마의 휴일 영화를 보면서, 로마에 간다면 오드리 헵번처럼 아이스크림도 먹고, 스쿠터도 타고, 로맨틱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은 왕실의 딱딱한 규율과 제약 때문에 뛰쳐나가 로마를 즐겼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경험을 하고서 두고두고 잊지 못했던 그 주인공처럼, 나도 10년 동안 간호사 생활하면서, 병원이 아닌 세계를 경험하고서 잊을 수 없어 여행에 맛에 빠져 이렇게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해보지 못한 경험은 후회로 가득할 것이다. 안 하고 후회할 바엔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한테 맞는 사람이라 해보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봐야 직성이 풀렸다.

예전 간호사 4년 정도 일했을 때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려고 했다. 그래서 퇴사를 계획했는데, 동기가 큰 병원으로 이직을 한다고 나에게 말을 전해왔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그날 잠이 오질 않았고, 머릿속에 나도 더 좋은 병원으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나는 더 좋은 병원으로 이직하는 것과 호주 워킹홀리데이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나는 호주로 떠나지 못했고, 더 큰 병원으로 이직을 했다. 남들이 다 알만한 빅 5로 불리는 병원에 들어가 힘들게 다시 간호사로 일했지만, 그 동기의 이직이 부러웠나 보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호주를 못 간 것이 후회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지금은 워킹홀리데이라는 것을 갈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들어버렸다. 그냥 호주로 떠났어야 했는데 못 갔던 그때의 아쉬움이 지금은 하고 싶은 건 지금 당장 꼭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는 로마의 휴일 영화에서처럼 로마를 재미있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로마로 왔었다.

그는 잠시 피렌체에 있었고, 나는 혼자 로마를 걸었다. 목적지는 따로 없었다. 늘 여행을 가면 정처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또 그러다 길을 잃으면 잃은대로 걸어보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주했던 잔상이 좋아서 늘 그렇게 걷는 것 같다.  로마를 처음 온 것이 아니었지만 늘 나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길은 다시 찾으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가끔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누군 좌절하겠지만, 나는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길을 잃는 여행을 통하여 나는 헤매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기쁨이 크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콜로세움을 지나치면서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로마에 왔을 때 콜로세움을 지나가다 누가 나에게 칼을 한 자루 손에 쥐어주면서 “벨라 벨라” (예쁘다 라는 이탈리아어) 외쳤고, 중세시대 옷을 입은 몇 명의 무리가 “포토포토”하면서 찍으라고 말했다. 나는 얼떨결에 양 팔을 들고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때 옆에서 찍어준 사진 한 장 때문에 25유로를 뜯길 뻔했다. 나는 “노머니 노머니”를 왜 쳤지만 막무가내 달라고 했고 나는 끈질긴 사람들 때문에 15유로를 내어 줬다. 25유로에서 10유로 깎았던 나의 딜 능력은 이때도 탁월했나 보다. 콜로세움을 지나치면서 아직도 그 중세시대 옷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젠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아주 씩씩하고 당당하게 그들을 지나쳐 걸었다. 내가 처음 로마에서처럼 누군가는 그들에게 속고 있었고,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에 웃음이 나왔다. 한국 인이었더라면 오지랖 부렸을 텐데 한국인이 속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서 곳곳에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내가 혼자 외롭게 로마를 즐기고 있을까 봐 촬영이 끝나자마자 피렌체에서 기차를 타고 나에게 왔다.

혼자보단 역시 둘이 걷는 게 더 좋았고, 혼자보단 둘이 음식을 먹을 때 더 맛있었다. 이렇게 함께하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나를 데리고 본인이 좋아했던 곳, 추억이 가득한 곳들을 함께 다니면서 추억을 이야기해줬다.

나와 함께 공유했던 추억들이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함께 추억을 공유해왔던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가득 찍어 주었다. 혼자 있었더라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을 텐데 내가 있는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로마에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게 특별했다..

오드리 헵번처럼 스쿠터를 타고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손을 잡고 걸었고, 오드리 헵번처럼 스페인 광장 앞에서 젤라토를 먹었다. 콜로세움 앞에 카페에 앉아 콜로세움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에스프레소도 마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별거 아닌 소소한 일들로 즐겁게 보냈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을 같이 한다는 것이 좀 더 가깝고 편안해지고 있는 듯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이 편하고 눈치 볼 것이 없어서 좋은 점들이 많다. 그러나 둘이 함께하는 여행이 이렇게 설레고 행복한 일이었다면 더 빨리 사랑을 시작할 것을 그랬나 보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 덕분에 내 여행이 빛나게 되었다.

그는 피렌체로 돌아가야 했다. 촬영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잠시 또다시 떨어지게 되었다.

남녀가 공항에서 헤어지는 장면을 보면서 “왜 저래?” 하면서 봤던 내가 딱 그 장면 속 같은 순간처럼 헤어짐을 하는 것을 보니 참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는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듯해 보였다. 마음속으로 남자가 이렇게 쉽게 눈물을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왜 울어?라고 물었을 땐 울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나는 보았다 그때 그 두 눈을 말이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잠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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