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링유리 Oct 13. 2021

3.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피렌체” 

    

시칠리아 여행이 끝나고 베네치아에서 머물다 피렌체로 넘어왔다.

시칠리아 여행은 휴가 온 친구와 함께했지만, 베네치아부터는 오롯이 혼자 여행이었다. 친구와 있을 땐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각자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니 많이 외로웠다. 나는 참 수다스러운 사람인데, 말할 사람 없이 돌아다녀야 하니 말이다. 입에 단내가 났다. 하지만 이 외로움을 즐기는 것도 나에겐 좋았던 시간이었다. 몇 달 전 왔던 베네치아는 아는 언니와 여행했었다. 언니가 호텔을 예약했고, 그 호텔에 가니 우리 이름이 예약 한 사람 목록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분명히 했는데 하고 예약 확인했던 종이를 보여주었다. 그 인포메이션에 있던 직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속 찾고 또 찾았다. 나는 직원이 왜 저래? 하면서 우리한테 실수하면 잡아먹어 버릴 것 같은 눈으로 부릅뜨고 쳐다보고 아니 째려보고 있었다. 내 눈이 호랑이에서 사슴이 된 순간은 언니가 날짜를 잘못 선택한 것이었다. 우리의 잘못이었다. 다른 달로 체크가 돼버렸던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그 직원이 다른 호텔을 소개해 주었고 가격도 싸게 소개해 준거라고 말했다. 5월이라는 성수기에 숙소를 구하기 어려워 우리는 직원이 소개해준 곳으로 갔던 추억이 떠올랐다. 그 호텔을 지나가면서 그때 언니한테 많이 화가 났지만, 화를 낼 수 없었지.. 하면서 이런저런 추억들이 스쳐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고 재미난 에피소드일 뿐인데 그때 감정은 지금과 조금은 달랐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기도 하기에 때때로 혼자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유난히 무언가를 먹을 때 외로움이 찾아오곤 했다.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유럽에서는 많은 소매치기 때문에 카메라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못한다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사진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게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여행자와 친해지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또 다른 매력은 새로운 사람들을 우연히 만난다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같은 공통 관심사가 있어서 그런지 참 빨리 친해지는 것 같다. 시간이 맞으면 같이 여행지를 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같이 즐기기도 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동행이 찾기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나는 동행이 생겨 함께 베네치아를 잘 즐기고 같이 피렌체로 넘어왔다.

피렌체에서도 동행들과 다니면서 즐거운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반가운 사람을 보게 되었다.

같은 해 몇 달 전 피렌체에서 스냅사진을 찍어주신 작가님이었다.

나는 여행을 혼자 다녔기 때문에 여행했던 나라에서 스냅사진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은 추억을 가장 오래 간질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 중에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심히 찾아보다 내 눈에 훅 들어왔던 SNS 피드를 발견했고, 나는 그 작가님에게 스냅사진을 예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연은 시작된 것이었다. 피렌체에서 몇 달 전 우리는 고객과 사진작가의 명분으로 만나게 되었고, 사진을 찍으며 많은 대화를 나눠본 것도 아니지만, 따뜻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사진 찍었던 날 너무 더웠던 날이었고, 나는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는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구두를 신고 갔었다. 사진에 예쁘게 나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구두를 신고 미켈란젤로 언덕을 올라가다 계단에서 발가락이 잘려나갈 것 같았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도착하니 물을 사서 나에게 건네주는 작가님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내려오면서도 흑인들이 다가와 호객 행위를 하면 그 흑인이랑 인사하면서 “차오” 내 고객이야 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길을 비켜주었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던 기억이 있다. 자주 이 길을 다니다 보니 흑인들이랑 친하다고 답했고, 다들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결국 남편이 되었지만, 남편은 나한테 첫눈에 반했다고 말했다. 거짓말인지 진실인지는 그만 알 것이다.

처음에 믿지 않았지만, 거짓이든 진실이든 우선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믿는 수밖에...  

그는 사진을 찍을 때 시크할 것 같고 무서운 외모였다. 머리를 위로 묶은 예술인의 외형적인 모습이었고, 눈빛이 강했다. 하지만 의외로 다정하고 스위트 한 면이 있는 작가님이라 생각했다. 몇 달 전 함께 여행했던 언니는 이 작가님 좋은 사람 같다고 이야기를 계속했고, 나도 어느새 그 작가님은 너무 좋은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촬영이 끝나고 두오모 성당 앞에 있는 무브온이라는 펍에서 나와 언니 그리고 작가님 셋이서 맥주를 한 잔씩 즐겼다. 이 맥주 맛은 지금 내가 35년 살면서 먹은 맥주 중에 최고의 맛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맥주 한 모금 마시면 눈앞에 아름다운 두오모 대성당이 우뚝 서 있기 때문에 말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잊을 수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셋이었지만, 남녀가 함께 낯선 곳에서 맥주를 마시며 아름다운 뷰를 보기에 더 맛이 좋게 느껴진 것 같다. 술을 먹으니 내 심장도 더 빨리 뛰는 듯했다. 물론 술을 마셨기 때문에 취기 일지 모르지만 내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빨리 뛰고 있었던 건 확실하다. 이게 호감의 설렘일까? 술 때문일까? 뭐지? 생각했다. 그는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주었고, 그렇게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난 한국으로 갔었다. 종종 오는 연락에 나는 늘 웃음이 나오곤 했었던 것 같다. 앞에서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내심 연락을 기다렸다.

이렇게 서로 연락하면서 지냈기에 지금의 만남이 더 반가웠다. 피렌체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연락할 때도 나에게 이건 뭐지? 하는 연락이 올 때가 있었기에 이 사람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싶어 꼭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보다니 너무 반갑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멀리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꽁지머리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열심히 촬영을 하고 있던 작가님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나는 동행들과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사진 찍으면서 놀고 있던 찰나에 작가님이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우리 눈이 마주쳤다. 참 신기했다. 그 다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당신만 보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었을 것일까?

그렇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는 말이 진짜일까? 내가 수많은 나라 중에 다시 이탈리아를 온 것도 내심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칠리아는 핑계였을지도 말이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베키오 다리에서 만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우리 둘은 베키오 다리에서 만나지 않고,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만나 사랑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피렌체에 있는 동안은 늘 잠깐이라도 나를 보기 위해 내가 있는 곳으로 만나러 왔고, 소소한 대화를 하면서 몇 날 며칠을 보냈다. 나에겐 낯선 여행지지만, 이 사람에겐 일상이 된 피렌체에서 우리 둘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여행이 로맨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사랑이라는 설레는 감정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소소한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티본에 와인을 마시다, 아쉬워 이 사람과 한 전 더 하기로 하고 아르노강과 베키오 다리 뷰를 가진 와인 가게에 갔다. 거기서 와인도 같이 고르고, 우리가 고른 와인을 마시면서 나란 사람은 이런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고 인생 이야기 등 별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다. 나는 수다스러운 사람이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이었다. 나와는 반대 성향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날 분위기와 와인에 흠뻑 취했다. 취할 수밖에 없는 내 뒤엔 베키오 다리가 아르노강 위에 빛나고 있었고, 10유로짜리 와인이 어찌나 맛있게 술술 들어가는지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날 근교 나들이를 약속했다. 사실 이 근교 여행은 나 혼자 여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10월에 토스카나는 봄 토스카나처럼 초록 초록 예쁘지 않아 비수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찾지 않아 여행 플랫폼에 모집 객이 모이지 않아 내 여행이 취소됐었다. 나는 운전을 할 수 없어, 갈 수 없었고, 어떻게든 가고 싶어서 버스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렌트를 해서 나를 토스카나에 데려가 주었고, 이렇게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못 가고 있던 근교 여행을 시켜주는 그가 얼마나 멋지고 좋았는지 말은 안 했지만 나는 너무 행복했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로 행복을 맞이할 때가 종종 생긴다.

우리의 인생도 늘 계획보다는 생각하지 못했을 때 맞이했던 기쁨이 더 크게 와닿고 행복하다.

둘만의 첫 여행지가 아름다운 토스카나가 되었다.

토스카나 너무 가고 싶었던 곳인데 이렇게 마음을 써주고, 여행 가서 예쁜 사진도 찍어주니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예쁜 사진 찍어서 내 개인 계정에 올리는 것이 행복한 일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여자들이 그렇듯이 금손 남자 친구를 원한다. 나도 늘 원했지만 내게는 없던 금손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이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가득한 곳에 나를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는데, 난 참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지만 입술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아직 편해지지 않아서였겠지만, 내 밝음을 다 보여주기엔 아직 마음이 덜 열렸다.

남들은 내가 워낙 밝고 잘 웃고 있어서 걱정 하나도 없이 살고 지낸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내 나름대로 걱정이 많은 편이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앞서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바뀐 건 이런 걱정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유로운 마음이 여행하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행은 나에게 또 하나를 가르쳐 준 셈이다.

유럽 여행에서 이렇게 차를 빌려 여행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늘 뚜벅이로 다니던 나에게 렌터카 여행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편한 건 편한 건데, 가다가 맘에 드는 곳에 내가 멈출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사람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나 또한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에서 얻는 위로가 큰 것 같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토스카나가 너무 좋았고, 위로되는 여행지였다. 비록 그와 갔던 첫 토스카나는 초록초록보다는 갈색 갈색 한 가을 느낌에 가까웠지만, 이 또한 매력적이었고, 아쉬움이 있어야 또 가고 싶은 마음을 주니깐 다시 봄에 가고 싶어졌다. 물론 이 사람과 함께 말이다. 덕분에 토스카나 구석구석 작은 마을까지 여행할 수 있어 행복했다. 마을 사람들도 내 행복한 마음을 아는지 어찌나 친절하고 미소까지 아름다운지 모른다. 역시 좋은 것만 생각하면 좋은 것만 보이나 보다. 우리의 여행이 시작이었고, 우린 그렇게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있었다.      




이전 04화 2. 숨 가쁜 일상에 쉼표 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