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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괴물

by 윤경환


"태평양 한가운데서 달빛이 비친 밤바다를 본다는 건 예술이지! 그보다 아름다운 걸 본 적이 없어. 그런데 거칠고 난폭해진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이야!"


인생의 절반을 바다 위에서 보낸 아버지는 바다가 아름답지만 무섭다고 했다.

기관장이셨던 아버지에게 바다는 가장 아름다운 괴물이다.

가족의 생계를 양어깨에 짊어진 아버지에게 이 아름다운 괴물은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애증의 존재였을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아름다운 괴물은 거친 날씨에만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론 달빛이 스며든 고요한 바다의 어둠이 사람을 집어삼킨다고도 했다.


실제로 아버지가 항해하던 당시에 일등항해사가 밤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바다로 뛰어내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아버지는 일등항해사가 무언가에 홀린 듯 벌인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이야기대로라면 그날 바다 아래에는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을 현혹하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괴물 세이렌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가족의 생계를 홀로 해결하는데 버거움을 느꼈던 그가 밤바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곳이 현실보다 낫다는 충동에 빠졌을 거라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아버지의 과장이 들어간 이야기일지 모르나 아버지는 그 일을 겪은 후로는 혼자 밤바다를 보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내비치는 바다에 삼켜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반대로 폭풍을 뚫고 지나가는 동안 배가 거의 뒤집힐 정도로 기울어졌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 아버지는 이대로 배가 침몰되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안의 집기들이 뒤집어지고 아버지의 몸이 튕겨 나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고 한다.


처음 어머니를 만났었던 때, 내가 태어나고 처음 마주했던 날, 기관장으로 승진하고 가족 모두가 기뻐했던 식사 자리, 이 모든 기억이 한데 어우러지자, 아버지 마음에 솟아오른 감정은 살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오직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온 힘을 다해 아버지는 벽에 있는 손잡이를 부여잡고 버텼다.

어깨의 뼈가 부러질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괴력의 힘을 발휘해 튕겨 나가지 않아 더 큰 부상을 막을 수 있었다.

난폭해진 아름다운 괴물은 도리어 아버지의 마음에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이제는 현역에서 은퇴하신 아버지는 청춘을 날려 보낸 바다 위의 시간을 그토록 지겨워하면서도

술 한잔을 걸치시면 여전히 그 지겨웠던 바다에서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바다 위에서 이슬처럼 흩어진 청춘의 시간은 이제 아버지의 이야기로만 남았다.


누군가에는 아름답지만 떨쳐내고 싶었던 아름다운 괴물에 대한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코끝을 찡하게 건드리며 새롭게 살아갈 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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