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블랙홀에 대한 설명을 좀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막상 하려고 하니 이렇게 막막할 수가 없군요. 블랙홀을 “블랙”하게 만드는 근원인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을 정직하게 설명하는 게 필요할 텐데, 그동안 여러 글에서 비유적인 말로 설명 아닌 설명을 했던 것을 이젠 조금이나마 수식도 쓰고 그림도 넣어가며 다시 해볼까 합니다. 여기서는 일단 "사전의 지평"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인 빛의 고깔을 설명하고 이를 사용하여 상대론적 지평을 다시 정의하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는 KAOS재단의 초청으로 최근에 한 일반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의 일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결과물은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대론적 지평을 이해하자면 먼저 “빛의 고깔”이라는 것을 배우면 편리한데, 사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x=y=z=0 이라는 좌표에 서서, 레이저 포인터 두 개를 들고 좌우 정확히 반대쪽을 향해 동시에, 아주 잠깐 비추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두 방향을 x축의 양 방향이었다고 하자. 그 잠깐의 레이저 펄스가 그 이후 어떻게 진행하는지를 그림으로 옮겨 놓으려고 하는데, 물론 광속으로 움직이는 빛을, 종이 위의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것이다.
레이저를 계속 켜 놓았다면 색깔을 잘 고른 형광펜으로 좌우 두 줄을 그리면 되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잠깐 켰다가 끈 경우이니 그 광속으로 멀어져 가는 빛 무더기를 도대체 어떻게 형상화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스타워즈 7편 도입부에는 “포스”로 광선총이 발사한 빛을 한자리에 묶어두는 장면이 나오지만, 현실과 영화는 다른 것임을 기억하자.) 그런데, 이걸 할 수 있는, 생각보다 쉬운 방법이 있다.
종이면에 두 개의 서로 수직인 직선을 그어 x축과 y축으로 (혹은 약간의 상상력과 원근법을 발휘하면 z 축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대신 공간 방향을 하나 포기하고, 예를 들어 세로축을 y 대신 시간 방향이라고 해보자. 물론 시간은 길이와 다른 개념이므로, 이런 그림이 말이 되려면, 시간을 길이로 변환시키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 역시 생각보다 간단하다. 앞서 여러 번 이야기했듯, 상대론의 출발은 누구에게나 일정하고 빛의 속도 c 이므로, 따라서, 시간 t 라는 축 대신 w=c*t 라는 길이를 세로축이 표시한다고 하면, 하나의 종이 위의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표현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럼 이 새로운 모눈종이에, 위에서 처럼 x와 -x 방향으로 각기 쏘아 보낸 두 레이저 펄스는 어떻게 표시될까? 시간에 따라 계속 위치가 변하므로 예를 들어 t=0 시점에 쏜 이 펄스들은 t=w/c > 0의 모든 시점마다 각기 하나씩의 점들로 표시된다. c 라는 속도로 좌우로 멀어져 가니, 이 두 점은 물론 x=c*t 과 x=-c*t 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모든 시점마다 있는 것이므로, 이 점들을 다 모으면, w=x=0에서 시작하는 w=x와 w=-x로 표시할 수 있는 두 개의 반직선에 해당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어떤 사물의 위치를 시간을 따라서 모두 표시하면 나타나는 줄을 worldline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실제로 나를 나타내는 worldline은 고작 70년에 c를 곱한 전후의 길이를 가진, 공간적으로는 지구 표면에 꼬물거리고 시간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그런 곡선이 될 게다.
위의 두 펄스의 worldline인 반직선은 빛을 보낸 나의 위치 즉 x=y=z=0을 나타내는 worldline 직선과 45도의 각도를 이룬다. 이제,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제 수백 개의 레이저를 준비하여 빈 우주공간에서 수백 개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았다면? 물론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이 수백 개의 빛 무더기가 그려나가는 각기의 worldline들은 하나 같이 x=y=z=0에 있는 w (혹은 t) 방향의 직선과 45도 각도를 이룰 것이고, 이 반직선들을 다 모으면 x=y=z=w=0에 꼭짓점을 둔, 중심각이 45+45=90도인, 하나의 원뿔이 될 것이다. 이는 누가 어디에서 무슨 광원을 사용하건에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이렇게 모든 시점과 모든 지점에는 원뿔을 하나씩 그릴 수 있고, 이들을 빛의 고깔이라고 부르자.
빛의 고깔 (출처: wikipedia)
물론, 이는 단순히 빛의 속도가 어디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항상 c라는 이야기를 시공간에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에 불과하다. 빛의 고깔이 중요한 이유는, 그 고깔 혹은 원뿔의 꼭짓점에서 시작한 그 어떤 물리적인 현상도 그 고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데 있는데, 이 또한, 빛보다 빠른 것은 없다는 말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한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비슷한 그림을 반대로 생각해서 과거에서 내게 t=0에 도착하는 빛들의 worldline들을 모아 그릴 수도 있을 텐데, 이 역시 빛의 고깔이라고 부른다. 다만, 혼동을 막기 위해 이 두 가지에 각기 미래, 혹은 과거라는 말을 덧붙이자. 미래로 가는 빛의 고깔 안의 모든 시점과 지점들이 내가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때와 곳이라면, 과거에서 오는 빛의 고깔의 내부는 내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모든 때와 곳을 모아놓은 그런 것일 터이다.
그런데, 이제 일반 상대론의 정수인, 즉 질량에 의해 만들어지는 중력이 실은 시공간의 휘어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어오면, 상황이 조금 더 복잡해진다. 직선과 직선 사이의 각도가 45도 라던가, 90도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직선”이 필요해 보이는데, 시공간 자체가 휘어지면 예상 못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가장 직선스러워야 할 빛의 궤적이 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될 텐데, 그러면, 빛의 고깔 역시 찌그러지고, 휘어지고, 기울어지는 현상들이 가능해진다. 혹은, 조금 더 정확히는,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시간 방향과 공간 방향의 구별이 어려워지면서,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45도 이냐의 문제가 생긴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빛의 고깔이 완전히 기울어서 위 그림 중간에 있는 시간 방향 화살표의 바깥으로 나갔다고 해보자. 즉, 예를 들어 x > 0에 꼭짓점을 둔 모든 빛의 고깔들이, 중력의 영향으로 모두 원래 생각한 45도에서 x축 쪽으로 기울어져서, 몽땅 x > 0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상황에서는, x < 0에 꼭짓점이 있는 과거에서 온 빛의 고깔들 역시 x < 0 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이야기는 x > 0에서 발생한 빛 혹은 그 어떤 다른 물체나 신호도 x < 0 쪽으로 절대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x > 0 어딘가에 서 있는 관측자는 x < 0측을 볼 수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반대로 x < 0측에 서있는 관측자는 x > 0쪽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원천적으로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도록 시간과 공간이 휘어지는 경우들이 실제 상대론에서는 흔히 벌어지는데, 이런 일방통행의 경계면을 통칭하는 말이 지평, 즉 horizon이다.
앞 글에서는 우주적인 스케일에서 이러한 지평이 나오는, 즉 우주의 지평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 경우는 x < 0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의 우주이고, x > 0에 해당하는 부분, 즉 내가 전혀 볼 수 없는 그곳들은, 나를 기준으로 어떤 매우 먼 거리에 있는 큰 구면의 바깥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이 우주의 지평이 생기는 이유는 공간의 팽창 때문인데 대략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해볼 수 있다. 우주의 지평은,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것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가장 단순하게 은하와 은하의 거리가 e^{H*t}에 비례한다고 생각해 보자. e는 오일러 상수이고 a^b라는 기호는 a의 b승을 의미한다. 이과 출신 독자들은 고등학교 때의 수학 II의 악몽을 떠올릴 것이고, 문과 출신들은 경제가 망가진 국가들에서 가끔 일어나는 기하급수적인 인플레이션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하여튼 이 경우 현재 시점에서 거리 L만큼 멀리 있는 두 은하 사이의 상대 속도는 H*L이 되는데, 따라서 L=c/H의 거리만큼 멀리 있는 은하의 경우 내 기준으로 마치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이런 상황에서는 이 거리 밖의 은하들은 원천적으로 볼 수가 없으며, 즉 우주의 지평이 L=c/H거리에 위치하게 된다.
방금 한 이 이야기에는 상대성이론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 누구라도 제기할 만한 두가지 질문이 가능하다: 1) 빛의 속도보다 빨리 멀어지는 은하라는 것이, 빛의 속도보다 빠른 게 없다는 상대성이론에서 가능한가? 2) 광원이 빛보다 빨리 멀어진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빛의 속도는 광원과 관찰자 사이의 상대적인 움직임에 상관없이 일정하다는 상대론의 일반적인 원리에 위배되는 이야기 아닌가?
이 두 가지 질문은 현대 우주론 이야기를 하다 보면 흔히 듣게 되는데, 모두 "속도"라는 개념에 대한 혼란에서 출발한다. 유클리드적인 공간에서는, 내 코 앞을 지나가는 기차나 멀리서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나 적당한 관측을 통해 각자의 속도를 이야기할 수 있고, 그 개념에 차이가 사실상 없어 보인다. 그러나 중력을 인하여 휘어진 시공간에서는 무언가의 속도를 정의하는 것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을 수 있는데, 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물체의 속도를 정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시공간들 마다 다른 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빛보다 빠른 것이 없다는 명제에서부터 상대론이 출발한다는 사실은, 이 명제 안에서의 "속도"의 개념은 이러한 복잡한 과정이 필요 없는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실제 상대론에서 빛의 속도가 가능한 최대라는 이야기는 어는 특정한 시점과 지점을 지나는 물체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이지 어디 멀리 있는 은하가 내가 보기에 어떻게 움직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그 물체의 위치와 시점에 꼭지점을 둔 빛의 고깔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멀리 있는 것의 속도를 굳이 정의하려면 그곳까지 다녀오는 빛과 같은 신호를 통하여야 하는데, 우주의 지평 바깥에 있는 은하의 경우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한 이야기가 순환논리처럼 들리겠으나, 순환논리가 아닌 이유는, 또다시 말하지만, 광속이 물리현상의 속도에 주는 이 원천적인 제한은, 그리고 누가 보기에도 광속은 일정하다는 이야기는, 멀리 지나가는 무엇인가의 겉보기 속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주어진 시점과 장소를 지나가는 물체나 빛을, 동일한 시점과 장소에서 측정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수식으로 풀어내면 명확한 것을 굳이 말로 설명하다 보면, 오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이야기가 전형적인 예이다. 사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은하들은 사실은 우주팽창과 아무런 관련없이 "천천히" 제멋대로 주변 천체에 끌려 움직일 뿐이며, 내 입장에서 보이는, 우주 팽창에 의한 "속도"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거꾸로, 어떤 구면이 있어 그 구면의 안쪽이 위에서 이야기한 x>0에 해당한다고 하자. 즉 구면 내부에서 발생한 그 어떤 신호도 구면의 밖에 있는 내게 전달될 수 없는 경우이다. 이런 구면을 사건의 지평(event horizon)이라 하고, 이 구면으로 둘러싸인 내부를 블랙홀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블랙홀들은 지금도 이 우주 어디에 선가는 별의 진화가 마지막 단계에 들어가면서 만들어지고 있을 터이다.
블랙홀 부근에서의 빛의 고깔. 블랙홀에 접근할수록 빛의 고깔이 기울어지고, 결국은 사건의 지평 내부에서는 완전히 내부 방향으로 매몰된다. (출처: quantum-bits.org)
위 그림은 별이 응축하여 블랙홀을 만드는 과정을 도식화하고 그 주변에서의 빛의 고깔을 대략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붉은 원반은 사건의 지평이 별 표면 밖으로 나오는 순간의 별, 혹은 블랙홀 내부를 상징한다. 사건의 지평은 이 붉은 원반의 경계인 원 (실재로는 구면)에서 시작하여 미래 방향으로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옅은 초록으로 표시된, 미래로 향하는 빛의 고깔이 사건의 지평 안에서는 완전히 기울어져서 고깔의 내부 그 어느 곳도 블랙홀 바깥쪽을 향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블랙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이전 글에서 한 적이 있으니, 여기서는 긴 이야기는 생략하자. 다만 앞으로의 글에서는 이전에 소개했던 블랙홀 전쟁의 근원인 호킹효과, 그리고 같은 물리 현상이 어떻게 이 우주의 씨앗이 되었는지 등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물론 제대로 된 설명이라는 말은, “왜 사건의 지평이라는 것이 생기는가” 라는 질문에의 정확한 답까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상대론이 원래 그렇게 생겼으니까” 라는 무책임한 말로 끝내는 게 거의 유일한 선택지인 것도 이 수준에서는 피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가지 관련된 이야기를 덧붙여 보고자 한다.
이런 사건의 지평이 생기는 근원에는 공간 자체가 휘어져서 빛도 휘어져 간다는 사실이 있다. 일반 상대론의 첫 관측적 검증 중 하나가 태양 부근을 지나 지구에 도달하는 별빛이 휘어져 오는 것을 개기일식 때 관측한 것임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현상이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 사실 아인슈타인 이전 뉴턴의 만유인력에서도 같은 생각이 회자된 적이 있다. 즉 빛 역시 중력에 의하여 휘어진다는....
18세기 초반까지는 빛이 입자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특히 뉴턴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빛 역시 그의 운동 방정식을 만족할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운동 방정식을 쓰려면 그 물체의 질량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중력이 가진 특성 중 하나는 그 중력에 의하여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이 운동 방정식의 좌우 변에서 서로 삭제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왼쪽에는 질량에 가속도가 곱한 양이 나오고, 오른쪽에는 힘이 있는데,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력이 물체에 작용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그 물체의 질량과 상관이 없게 된다. 갈릴레이가 말했던, 중력에 의하여 떨어지는 물체는 그 질량과 상관없이 같은 시간을 걸려 떨어진다고 한 이야기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질량 m의 물체가 질량 M 천체의 만유인력에 의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정하는 뉴턴 방정식. 물체의 질량 m이 양변에 있어 완전히 소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빛 역시 그 질량에 상관없이, 혹은 한발짝 더 나아가면 그 질량이 설혹 0이라 하더라도 보통의 입자와 동일하게 중력의 영향을 받게 될 텐데, 따라서 중력에 의하여 그 궤적이 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다른 천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인하여, 많이 휘지 않을 뿐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은 알고 보니 절반쯤만 옳은 것이다, 말 그대로.... 실제로 Cavendish가 처음으로 관련된 계산을 하였는데, 일반 상대성이론에서 계산되는 각도에 비하여 정확히 절반의 각도를 예측한다. 결과적으로 살짝 틀린 결과를 주기는 하지만, 빛 역시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뉴턴 역학 체계 안에서 이미 간파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상대론에서는 질량이 있는 물체와 질량이 없는 물체의 이러한 유사함이 정량적으로 표현되는데, 이들의 궤적이 모두 소위 geodesic, 즉 직선에 가장 가까운 궤적을 따른다고 말한다. 유일한 차이는 빛의 경우 빛의 고깔 표면을 따라서, 질량이 있는 물체는 고깔 안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편,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 이야기를 할 때, 그곳에서의 중력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래서 그러한 중력 때문에 빛조차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일반 상대론에서의 중력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상대론에서는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물체는 가능한 한 worldline이 직선에 가깝도록 움직이는데, 즉 위에 이야기 한대로 geodesic을 따라가는데, 단지 중력이 하는 진짜일은 이러한 "직선"의 정의를 다르게 할 뿐이다. 이를 뉴턴식으로 말하면 자유낙하라 한다.
그래서, 어떤 물체가 “느끼는 중력”은 이런 자유낙하 대신 고정된 위치를 유지하려고 할 때 필요한 “가속”의 크기로만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가속도라는 것 자체가 시간에 대한 미분을 해서 얻는 것인데, 과연 어떤 시간이 적절한 시간이냐에 대한 모호함을 피할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이 역시 정확한 개념일 수 없다.
더구나 사건의 지평 부근에서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두 가지 시간의 개념, 즉 자유낙하를 하면서 느끼는 시간과, 사건의 지평에 안 들어가려고 가속을 하고 있는 관측자가 느끼는 시간 사이에는 무한히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블랙홀에 낙하하는 물체를 외부에서 보면 마치 사건의 지평에 다가갈수록 느려져서 마치 사건의 지평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과 관련된다. 사건의 지평을 정의하는 것은 사실상 이 두 가지 시간의 상호관계이며, 이는 앞서 이미 이야기하였고 나중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하는, 그리고 호킹 복사로 대변되는, 사건의 지평에서의 양자역학 효과에 직결된다.
뉴턴의 중력이론에서 이야기하는 "힘"중에 일반 상대론에서 잘 정의되는 가장 유사한 것이 있는 경우를 찾으려고 하면 소위 "조석력 (tidal force)"이라는 것이다. 이는 가까이 있는 두 지점에 가해지는 중력의 차이를 말한다. 해안의 수위가 12시간을 주기로 올라가고 내려가며, 그 차이가 또한 달의 위상에 따라 달라지는 조수간만 현상이 달과 태양의 중력이 지표면 곳곳에서 조금씩 다른 것 때문에 생기는 이 조석력 때문이다. 이 조석력이 매우 크다면 물체가 이로 인해 찌그러지는 일이 가능해지는데, 고체로 되어 있는 지구 자체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액체인 바다는 이 조석력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해안가에는 그 결과로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상대론에서의 조석력은 시공간의 곡률에 의하여 정해지는데, 특히 사건의 지평에서의 조석력은 블랙홀 질량 M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블랙홀이 커지면 커질수록, 사건의 지평에서의 조석력은 오히려 점점 작아진다는 말이다. “한 없이 큰 중력"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현상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건의 지평의 반경 역시 질량 M에 비례하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이 거리에서 뉴턴의 만유인력을 계산하면, 이 역시 M에 반비례한다. 만유인력은 질량을 거리의 제곱으로 나눈 것에 비례하므로.....
따라서, 빛의 고깔이 완전히 기울어 버리는 위의 현상은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힘의 크기"가 아닌 조금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일반상대론에 관한 글에서 이에 대하여 짧게나마 언급한 적이 있으니, 참고해 보셔도 좋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대론적 지평은 그 자체로서 광속으로 "움직인다"는 사실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흠.... 이 말 같지 않아 보이는 말이 실제 현실이라는 점이 일반 상대론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