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그린와인
서로 다른 이유, 서로 다른 계기로 이곳에 도착해
각자의 여행을 하고 있던 우리 셋은 어느 밤 우연히 도우루 강변에서 만났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밤이었고 누군가에겐 이제 시작인 밤이었지만, 모두는 똑같이 이 밤이 너무나 아름답다 느끼고 있었다.
포르투를 지나 온 여행자들이라면 낮이고 밤이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은 도우루 강변 그리고 동루이스 다리의 특별함을 알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루이스 다리로 이어진 히베이라 지구와 가이아 지구를 넘나 들며 이 아름다운 도시의 맛과 멋을 즐기다 보면, 하루가 긴 한 여름의 낮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보내 버리고 어느새 동루이스 다리를 넘어 Serra do Pilar 전망대가 있는 Morro 공원으로 갈 시간이다.
Morro 공원에서 일몰을 보는 일은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가장 만족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었기에 해 질 녘이면 늘 활기와 젊음으로 가득 찼고,
늦은 밤까지 도우루 강의 산책을 나선 여행자들에게만 특권처럼 주어지는 도우루 강변의 밤 풍경은
포르투를 그저 잠시 스쳐 지나면 충분한 도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우리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강변을 따라 걷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텅 빈 와인바에 들어섰다. 포르투갈 여행의 시작이었던 포르투에 있는 동안 물보다 더 많이 마셨던 포트 와인을 잠시 잊고 포르투갈에서만 즐길 수 있다는, 그래서 특별한 그린 와인을 주문했다.
진솔한 대화가 오고 갔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했고 대화 속 신중하게 선택된 단어들과 그것들을 표현하는 방법, 신뢰 가득한 목소리로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끌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음악에, 와인에, 분위기에 취해 나긋나긋 각자의 여행을 나누고 있는 우리 셋에게 다가 온 와인바의 오너.
어디에서 왔느냐 묻고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잠시 후 엽서 3+1장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곳을 찾은 각 국의 여행자들에게 엽서를 선물하며, 당신들의 나라에 돌아가면 그 나라의 우표를 붙여 당신들의 언어로 엽서를 보내달라 부탁을 해왔고, 그렇게 도착한 전 세계의 엽서들이 저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한국인들에게도 몇 번인가 부탁을 했었지만 아직 한국에서 온 엽서는 없어. 너희가 한국 엽서의 주인공이 되어줄래? 그렇게 해 준다면 나중에 다시 포르투에 왔을 때 와인을 한병 대접할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엽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특별하고 신나는 미션을 받은 사람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흔쾌히 엽서를 건네받았다. 우리의 엽서가 저 벽에 걸린다면 더 오래오래 포르투를 기억하며 다시 이곳에 올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곧 12시가 지나고 영업 종료를 알려왔다.
아쉬움에 망설이다 마지막 잔을 서로에게 채워주며 둥글게 아름다운 와인잔의 레벨을 맞춘다. 이 밤, 이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린 와인이 담긴 투명한 잔을 부딪히며, 우리가 다시 만날 이유가 생겼다고, 한국에 돌아가면 꼭 다시 만나서 함께 엽서를 쓰자는 약속과 함께 포르투의 밤거리로 나온다.
부슬비 내리는 포르투의 밤거리를 걷는다.
우산이 있었지만 포르투의 밤거리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빗방울은 우리에게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의 걸음을 지치지 않게 해주는 단비였고 이 아름다운 포르투 밤거리의 빛을 더욱 반짝이게 반사시켜 주는 효과일 뿐이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거리는 우리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고, 거리의 반짝이는 불빛들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우리만의 감성이었다. 문 닫힌 상점들 사이 운 좋게 아직 영업 중인 mini market을 발견하고 포르투갈 맥주, Super Bock을 꺼내 든다.
걷다 보니 금세 상벤투역 앞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는 면모를 낮 동안에는 수많은 여행객들에 가려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역의 내부는 우리에게만 허락한 듯 고고하게 빛나고 있었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느껴질 정도로 침묵의 포르투 역에서는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카메라를 꺼내려 하자 역무원이 다가와 문을 닫아야 한다며 우리를 내보낸다.
비록 단 하룻밤의 만남이었지만 헤어짐이 아쉬워 우리는 한참을 거리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KJ은 며칠 뒤 리스본에서 꼭 다시 만나기로,
MJ는 한국에서 봐 안녕.
포르투에서의 일주일이 지나고 리스본에서의 또 다른 일주일을 위해 상벤투역에 들어섰을 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을 내려다보며,
‘포르투는 작은 도시라서 1박 2일, 2박 3일이면 충분하니 여행 중 꼭 들러보라’ 던 주변인들의 말이 떠올라 중얼 거렸다.
‘너흰,
포르투를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