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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Jun 12. 2024

멋진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아름답게 늙어가기

 “이것 좀 봐.” 남편이 휴대전화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건배하는 낯익은 얼굴들은 남편의 친구이자 내 동아리 선배였다. 대학 시절엔 하루가 멀다며 만났던 이들이었지만 전국 각지로 흩어져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끼리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을 하면서도 동기 대부분이 모이는 건 처음이라며 모임을 앞둔 며칠 전부터 남편은 살짝 흥분해 있었다.



 “헉, 이 선배 누구야?” 머리가 훌러덩 벗어져 눈부시게 반짝이는 낯선 사람을 가리켰다.

 내 기억 속 체격 좋고 머리숱 많던 무근 선배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진에 찍힌 선배 모두 대머리가 진행 중이거나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하긴 30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



 “다음 주 양현이 첫째 딸 결혼식이라는데 같이 갈래?”라고 묻는 남편에게 생각해 보겠다고는 했지만 내심 걱정이 밀려왔다. 선배들이 나를 못 알아보면 어쩌지?




 아직도 나는 지천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다림질이 귀찮아 세탁 후 탈탈 털어 말릴 수 있거나 수업할 때 움직이기 편한 옷을 자주 입다 보니 평소에도 후드 티셔츠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남편 사무실에 잠깐 들를 때 직원들이 내 차림새만 언뜻 보고 방 구하러 온 교대 학생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길을 물어보며 ‘학생’이나 ‘아가씨’로 부를 때 꽤 당황스럽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도 않다. 실제 모습도 학생이나 아가씨처럼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는 요즘 내 가장 큰 고민은 30대에 발현한 흰머리다.



주름이 생기고 피부가 처지면 피부관리나 시술로 해결되겠지만 흰머리는 어찌할 방도가 없다. 염색한 지 1주만 지나도 관자놀이에 촘촘하게 올라오는 새하얀 융단을 보고 있자면 아무리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고 다녀도 노화는 비껴갈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오히려 나이 듦에 저항하는 치기 어린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다.


    

흰머리와의 전쟁

 흰머리가 몇 가닥에 불과할 때는 족집게로 뽑는 재미라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인생에서 가장 숨 가빴던 시절에 갑자기 늘어난 흰머리 부대는 뽑아도 뽑아도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세를 확장해 갔다. 한국 전쟁에서 쏘아도 쏘아도 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징그럽게 늘어나 한국군을 두려움에 빠뜨렸다던 중국군의 인해전술처럼. 속수무책으로 늘어가는 흰머리를 감당하기 버거워 30대 후반 나는 새치염색을 시작했다.



처음엔 6주에 한 번이던 염색이 나이가 들면서 4주, 급기야 3주로 점점 간격이 줄었다. 제아무리 ‘오징어 먹물’이나 ‘천연염색제’란 이름을 달고 있어도 염색약에는 눈 건강과 피부 건강을 해치는 화학성분이 포함되어 있을 테니 염색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쩌다 염색할 시기를 놓치고 출근할 날 아이들이 하얗게 드러난 관자놀이를 빤히 보며 “선생님, 몇 살이에요?”하고 천진난만하게 묻기라도 하면 “백 살이야.”라고 장난스럽게 받아치다가도 아이들의 눈에 신경이 쓰여 어쩔 수 없이 염색약에 손이 간다.



 스트레스, 유전 등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노화로 인한 세포의 멜라닌 색소 생성 저하가 주요 원인인 노년의 흰머리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친해지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 과학기술과 현대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불치병이 사라진다 해도 노화와 죽음은 해결할 수 없다.



내게 남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삶을 도전보다 안정으로 채우게 된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니 선택의 폭도 점점 줄었다. 염색 간격이 3주로 줄어든 이후 나는 매사에 자신이 없어지고 침울해졌다. 주위에선 갱년기나 스트레스라는 흔한 이름을 갖다 붙이며 운동이나 영양제 복용을 권하거나 한약을 지어먹어 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청춘시대, Forever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 건지 문득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다. 오랜만에 부모님 옆에서 어리광 피우고 싶었다. 갑자기 들이닥쳐 놀라게 해 드리려고 일부러 전화도 하지 않고 살며시 현관문을 열다 하늘하늘 꽃무늬 블라우스에 주홍빛 주름 스커트를 단아하게 차려입은 엄마와 하마터면 크게 부딪힐 뻔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는 내게 아빠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바삐 집을 나섰다.

 “뭐야, 딸 왔는데 어디 가?”

 다급하게 불렀지만 이미 두 분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대답 없는 메아리를 총총 남기며 내려가 버린 뒤였다.



70대와 80대임에도 열정 넘치는 부모님을 뵈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시간을 절대 허투루 쓰는 법이 없는 두 분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동네 친구분과 아파트 둘레길을 돌고 여유롭게 식사와 집안일을 하고 나면 아빠는 그라운드 골프 동호회로, 엄마는 성당 봉사 모임과 무용 연습을 가신다.



오랜만에 집에 들렀던 그날도 두 분은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와 눈이 빠지게 기다린 딸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엄마표 된장찌개에 상추쌈으로 저녁을 지어먹고 집에서 가져온 염색약을 손이 잘 닿지 않는 뒷머리와 정수리에 서로 번갈아 가며 나눠 발랐다. 아빠, 엄마, 딸이 까만 염색약을 머리카락에 착 붙인 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야, 니는 아직 젊은데 무슨 새치염색이냐?” 아빠 눈에 비친 나는 항상 어린 아이다.

 “아빠, 뭔 소리고? 내가 벌써 50이 넘었다.”

 아빠 유전자 중에서 좋은 것만 물려주지 쓸데없는 흰머리와 낮은 콧대 따위나 물려줬다며 타박하려는 찰나 옆에서 오승근의 흥겨운 노래가 쿵작쿵작 춤을 췄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아빠는 염색물이 들기를 기다리는 30분마저 가만 계시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셨다. 똑같은 구간의 노래 가사가 하도 지겹게 반복되어 슬쩍 훔쳐봤더니 아빠는 매일 운동 삼아 다니는 동호회의 대회 영상을 편집하느라 초집중하고 계셨다. 뭐가 잘 안 되는지 미간에 칼주름을 세운 채 화면을 이쪽저쪽 넘기기도 하고 손가락 두 개로 확대하거나 터치하는 모습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매주 월요일 동사무소에서 열리는 스마트폰 강좌를 2년 동안 다니면서 아빠는 결석 한 번 하지 않으셨다. 강사가 새로운 기능과 사용법을 설명하면 다들 헤매느라 정신없는데 아빠만 찰떡같이 알아듣고 척척 해낸다며 엄마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수강생들이 그 집 양반은 어째 그리 수업을 잘 따라가냐는 추임새라도 넣을라치면 우등생 남편을 둔 엄마의 어깨에 거만한 뽕이 우뚝 솟았다. 신이 난 엄마는 종알대며 생도라지 껍질을 맨손으로 까고 계셨다. 힘들여 껍질을 벗긴 후 베란다에서 며칠 동안 앞뒤로 뒤집어 가며 말리고 믹서기에 곱게 갈 것이다. 기관지 약한 딸 손에 들려 보내려고.



 엄마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듣다 보니 예정된 염색 시간이 지났다. 차례로 머리를 감고 염색이 예쁘게 잘되었나 정수리와 목 뒤 이곳저곳을 쓸어보는 두 분이 눈에 밟혀 발이 떨어지지 않아 친정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몇 달 만에 엄마 옆에 누우니 부모님과 나의 옛 추억이 10배속으로 아른거렸다.



 마누라와 자식 건사하느라 물려받은 재산 하나 없이 맨몸으로 공장을 일구셔야 했던 가장의 책임감과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식당 꾸리느라 기지개 한번 켤 겨를 없었던 두 분의 고단한 시간이 덕분에 포근했던 내 어린 시절과 더불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끝에 받은 달콤한 노년을 이제는 당신만을 위해 소중히 보내는 부모님을 보며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초능력을 내게 물려주신 두 분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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