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보다 가난한 세대, MZ는 현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 MZ는 현명해질 수 밖에 없었다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어차피 월급 모아 집 못 산다” 필자의 친구들이 매일 하는 말이다. 물론 필자도 하는 말이다. 결혼해서 부모님 도움없이 급여만으로 인구 절반(2020년 6월 기준, 2,601만명)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서 내 집을 마련하는 사람은 소위 금수저다. 증여받지 않고 급여만으로는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Z세대는 벌써부터 내 집 마련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며, M(밀레니얼)세대는 매일 아침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는 청약 신청에 목을 맨다. 처음부터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천하태평하게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내 집 마련도 힘들고, 취업도 힘들고, 저축도 힘들고, 투자도 힘들고… 모든 게 닫혀 있는 MZ가 사는 시대를 저성장 시대라고 부른다.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뉴스는 이제 지겨울 따름이다. 아직도 대학에 들어가서 비싼 등록금으로 인해 빚에 허덕이고 있는 청년이 허다하다. 심지어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를 맞아 취업문은 더 좁아져만 가고 다니고 있던 회사는 눈치만 보일 뿐이다. 이에 MZ세대를 과거 IMF세대처럼 코로나 세대로 분류할 정도다.
불명예스럽게도 MZ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다. 두 차례의 거대한 경제위기(IMF,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점차 소득은 줄기 시작했고, 실제 국회예산정책처의 ‘세대 간 소득 격차 분석’ 자료에 따르면 생애 평균 실질임금(25~29세 첫 취직 가정할 경우)이 73~77년생의 375원을 기점으로 그 이후 세대들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물가상승률은 해마다 오르는데 부모보다 자식세대의 소득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백세시대의 도래는 MZ세대를 부모보다 더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 평균수명이 60~70세 정도일 때는 자녀가 결혼하고 아이가 초등학생이 될 때 즈음 부모의 상속을 받아 재산을 키워 내 집 마련 등의 경제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서면서 이제 노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부모에게 자녀는 재산의 증여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과거 부모 세대는 부모의 도움을 받아 경제적 여유를 누렸다면, MZ세대는 본인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저성장 시대를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MZ세대의 관심사는 ‘투자’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020년 1분기 20∼30대 연령층의 주식 계좌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국내 대형 증권사 중 한 곳인 NH투자증권은 올해 1∼5월 신설된 계좌의 69.3%가 20∼30대 소유라고 전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저성장이라는 경제 환경에 놓인 젊은 세대들이 고수익의 기회를 잡기 위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최근 MZ세대에게 가장 인기있는 유튜버도 경제/투자 관련 유튜버다. 20대 카톡방에는 주식이나 부업(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의 유튜브 콘텐츠가 자주 올라온다. 다만, 이들이 무절제한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다. 저금리때문에 은행에 맡길 돈으로 차라리 투자를 하는 것이다. 본인이 무리한 투자로 실패하면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저성장, 그들은 현명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기성세대는 사회가 원하는 보편적인 가치에 맞춰 선택했다.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야하는 것, 대학을 가면 취업을 해야하는 것, 취업을 하면 결혼을 해야하는 것,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 사회생활을 하면 승진을 해야하는 것 등등 이들은 자신의 가치보다 사회가 원하는, 부모가 원하는 가치에 맞춰 선택해왔다. 그러다보니 희생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세대였다. 그러나 MZ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더 나이가 어려질수록)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굉장히 능숙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성장 시대는 MZ세대를 가치 판단에 능한 합리적 존재로 만들었다. 불확실성 속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법을 배웠으며, 내 행복을 위해 무엇을 선택해야 할 줄 안다.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MZ세대의 가치 판단 능력은 더 좋아졌고 인터넷의 혜택을 받으며 내가 합리적으로 선택하기 위한 정보들을 쉽게 공급받고 SNS를 통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며 선택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는 가족, 회사 등 주변 사회의 영향을 고려하여 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했던 기성 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상대적으로 높아진 지식 수준과 낮아진 소비 수준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 판단에 의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되었다.
충동적? 합리적인 소비자 MZ
최근 MZ 세대를 표현하는 워딩으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는 '플렉스(Flex)'다. 플렉스는 힙합 문화에서 래퍼들이 부나 귀중품을 뽐내는 모습에서 유래하여 ‘과시한다’는 의미가 담긴 단어인데, 미디어에서는 플렉스 문화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을 즐기는 MZ 세대의 자유분방한 모습의 상징처럼 묘사한다. 그 안에는 충동적 소비와 근시안적으로 가치를 추구하는 MZ 세대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겨 있다. 그러나 MZ세대는 주관이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비든 인간관계든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세대다. 비싼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서 사발면을 먹고 돈을 모으는 행위는 이들에게 행복해지기 위한 현명한 선택이다. '시발 비용(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게 된 비용)'도 MZ세대의 소비 특성을 대표하는 워딩으로 알려져있는데, 이 또한 이들에게는 합리적인 소비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이고, 소비로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 있다면 그 소비는 역할을 200% 수행했다고 보는 것이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 현명하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이들 입장에서는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에 투자를 하는 셈이다. 결정을 할 때 항상 가족이나 주변을 신경 써야 했던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MZ세대는 에어비앤비나 우버 같은 공유경제 서비스를 잘 활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이 무작정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세대는 아니다. 이들은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템이라면 과감하게 구매하고 소유한다. 롯데 엘포인트 거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명품 구매 비중은 2017년 2분기 5.4%에서 2019년 2분기 11.8%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과거의 명품은 돈 있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사치품이라고 여겨졌지만, MZ세대에게는 소득 수준을 넘어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충분히 구매하고 소유할 수 있는 아이템인 것이다. 이와 달리 굳이 소유할 가치가 없는 아이템은 경험으로만 소비한다. 개인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소유할 만한 가치에는 과감하게 투자하여 행복을 찾고, 소유할 만한 가치가 없는 아이템에는 중고마켓 앱(번개장터, 당근마켓 등)이나 공유경제 플랫폼(쏘카, 에어비앤비 등) 같은 실용적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MZ세대에게 중고거래나 공유경제는 나의 더 큰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이며, 다른 것을 절약하고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얻는 행복이 더 크다면 이들 입장에서는 현명하고 밸런스 있는 선택이다.
MZ 세대가 소비에 있어서 합리적이라는 근거는 IBM의 연구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IBM은 전미유통협회(National Retail Federation)와 공동으로 Z세대부터 베이비붐 세대까지(18세~73세) 전 세계 28개국의 소비자 1만9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글로벌 소비자 동향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MZ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소비하는데 있어 꼼꼼하게 따지는 모습을 보였다. 표를 보면, 실제 MZ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구매 행위 전에 제품에 대한 조사를 상당히 많이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를 할 때 각 소비의 중요도 및 상황을 고려하여 스트레스 안 받고 쉽게 살건 쉽게 사고, 중요한 구매는 깐깐하게 사는 것이 MZ세대의 소비 특성이다.
MZ는 충분히 현명하다
MZ세대를 충동적, 근시안적인 존재로 오해했다면, 이 글이 그 오해를 해소시키는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 그래서 MZ 세대는 현명해질 수 밖에 없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적절히 판단하여 소비할 줄 아는 법을 터득한 MZ 세대를 충동적, 근시안적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MZ세대는 충분히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