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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Jan 14. 2020

저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데요

이야기 7. 병

회사에서 일년에 한번씩 정기 건강검진을 한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20대 중반, 건강검진 결과표에서 가장 관심있는 부분은 몸무게였다. 1년전에 비해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는지 체지방비율과 근골격량 정도만 슥 훑어보고 말았다.

그러다 한해한해 시간이 가면서 건강검진 보고서의 제일 첫 페이지에 있는 의사 소견서를 떨리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특정 기관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사료되므로 신경을 쓰라는 글귀가 쓰여있기도 했고, 현재는 괜찮지만 1년 후에 추적검사를 해보라는 글이 쓰여있기도 했다.


그러다 2018년 건강검진에서 듣게 된 말. '이거 보이세요?'

검사를 받으면서 들을 수 있는 말 중 가장 공포스러운 말이 아닐까. 보이냐니. 뭐가 보이냐는 걸까.

복부초음파를 진행하던 선생님은 자궁에 혹이 보인다면서 산부인과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혹? 어릴 적 동화책으로 만난 혹부리 영감 이후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다.

검사가 끝난 후 회사로 날아온 검진결과표에도 자궁 내 2.* cm 의 혹이 보인다는 소견이 적혀있었고, 입사 후 처음으로 검진기관에서 전화도 왔다.

그날 생각했던 것 같다. 병원에서 나에게 따로 연락이 오는건 좋은게 아니구나. 무소식이 희소식이구나.


이후 찾아간 산부인과에서도 동일한 진단을 내렸다. 난소 내에 혹이 보인다. 하지만 사이즈가 작고 생리주기나 컨디션에 따라 없어질 수도 있으니 6개월 후 다시오세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도 일단 오케이. 다시 6개월 후에 봅시다.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는 수술해야겠네요. 네?

1년 사이 혹이 하나가 더 생겼고 가장 큰 혹의 사이즈가 3.2cm로 커졌다고 했다. 자궁내막증이 의심되므로 일단 혹을 없애고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말씀하셨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이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되어 생각보다 간단하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수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겁을 먹어버렸다.

정말 수술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서(필요없다는 말이 듣고 싶어서) 다른 병원에 가보려고 하니 진단서를 한장 써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큰 병원에서 다시 검진을 해보았는데도 같은 의견을 받았다.

현재 위험한 것은 아니나 향후 더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고, 오히려 사이즈가 적을 때 수술을 하는 것이 수술경과도 좋다고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지금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나는 번뜩 '아 그러면 임신할 생각 없으면 수술을 안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저는 임신을 할 생각이 없는데 그럼 수술을 안해도 되나요?"


내 말을 들은 의사선생님은 눈으로 나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셨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나팔관 협착 뿐 아니라 다른 장기와도 협착이 일어날 수 있으니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두군데서나 이런 진단을 받았으니 수술을 하긴 해야겠는데, 사실 당시에 나는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한다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올해 우리팀은 큰 변화가 있어서 조직장, 소속, 업무 등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최소 1주에서 2주가량 자리를 비우는 것은 영 탐탁치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가 몸이 아픈데 회사 생활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고민을 하는 내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 무슨 멍청이같은 생각인가. 됐고! 수술을 하자.


그래서 나는 이번주 일요일에 입원을 한다. 수술 후 일주일정도 입원을 더 하게 될 것이고 경과가 좋으면 설이 지나고 출근하겠지만 혹시 회복이 더디면 휴직을 쓰게 될 수도 있다.

요즘 요양을 핑계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잤더니 온 몸이 포동포동 해졌다. 수술 후에 가만히 누워있다보면 더 동글동글해질 듯 싶다. 


수술 잘 받고 잘 쉬다 오겠습니다. 건승을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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