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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Feb 10. 2020

건강이 제일입니다. 정말로!

이야기 9. 병상일기 2

1부(https://brunch.co.kr/@bombambuyli/18)와 이어집니다.


Day3. 가스가 나와야 합니다.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아침이 밝았다. 만으로 48시간 정도 굶었을 뿐인데 어찌나 배가 고프던지. 몸이 그렇게 아픈데도 그 와중에 배가 고픈게 신기했다.

의사분이 오셔서 수술은 잘 끝났고 장기의 유착이 심했기 때문에 아프더라도 가능한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더불어 이제부터 물은 조금씩 마셔도 되지만 가스가 나오기 전에는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슬픈 말씀도 하셨다.

기본적으로 배가 고프기도 했지만 특히 내 침대 머리맡에서 솔솔 향기를 풍기고 있는 레드향이 너무 먹고 싶었다.

우리집은 매년 설 즈음해서 제주도 레드향을 주문해서 먹곤하는데, 이번에는 수술 직전에 배달되어 고작 한개만 먹고 입원을 했었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레드향이지만 난 워낙 과일을 좋아하는 탓에 한자리에서 몇개씩 먹는 것도 문제가 없었는데 며칠 째 레드향 향기만 맡고 있자니 큰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 내가 빨리 움직여서 저 레드향을 먹고 만다! 생각했다.


역시 사람은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몸은 한쪽으로 돌리는것도 불가능하게 느껴졌던게 아침이었는데 점심즈음해서 레드향을 생각하며 일어섰다.

물론 그날 아침 소변통을 떼어낸 덕분이기도 했다. 비록 피주머니는 내 입원복 한쪽 주머니에서 여전히 뜨끈하면서도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정도는 견딜만 했다.

링거걸이를 질질 끌고 만 하루만에 병실밖을 나가서 거울을 봤는데 영락없이 산모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났다. 내가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떡진 머리에 링거를 맞아 퉁퉁 부은 얼굴, 배가 아파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천천히 걸음을 때는 모양새, 입원복 아래로 입은 바지내복과 수면양말, 목에 두른 가제손수건까지.

뭐 아이를 하나는 물론이고 둘을 낳았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니 남들이 봐도 그렇게 보이겠다 싶다가도 비슷한 또래의 다른 환자분들은 아이를 낳고 와 있는 곳에 나는 아파서 왔구나 하는 생각에 잠깐 슬퍼지기도 했다.


병원 건물안은 생각보다 갈 곳이 많지 않다.

내가 입원해있는 8층 병실을 돌다가 너무 좁아서 복도를 걸어 다녔다. 접수 데스크와 1인실 사이를 몇번이고 오가다가 지겨워져 다른 층으로 내려갔다.

통원치료 받는 사람들이 몰려있는 2층도 가고 1인실만 있는 7층도 가고 수술실과 신생아실이 있는 5층도 갔다.

건물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5층이었다. 신생아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고 수유실도 있어서 인지 늘 달큰하고 좋은 냄새가 나고 포근했다. 같은 층에 바로 유리문 하나를 두고 위치한 수술실은 그렇게나 추웠는데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5층에서 걷기를 하다 신기한 풍경도 보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후처치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커튼을 열어주었는데 태어나 처음보는 모습이었다.

갓 태어난 아가는 빨간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울고 있었다. 의료진분은 아가의 몸을 닦고 눈에 연고를 바른 후 머리사이즈, 허리사이즈, 키를 재고 아가를 스트레칭 시켰다. 팔도 돌리고 다리도 돌렸다.

수많은 처치들을 한 후 아이를 흰 천으로 감싸안고는 유리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우리들에게 아이를 보여줬다. 물론 우리 모두를 위한건 아닐테고 눈물이 가득고인 눈으로 내내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누가봐도 그 아이의 아빠인 남자분을 위한 것이었겠지만.

나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너무나 작은 생명체가 몸을 떨며 울었다 멈췄다 하는 모습을 연신 귀여워 하며 흐뭇하게 바라봤지만 아빠만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아이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아마 그 사진은 아내와 남편의 부모님, 다른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송될 것이고 그 사진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심심해서 할 것도 없고 침대에 누워만 있자니 영 따분해서 병원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니 환자분들 중에 제일 열심히 운동한다고 간호사분들께 칭찬도 받았다. 역시 나는 당근파. 칭찬에 힘입어 더 열심히 병원을 돌아다녔고 그날 저녁 드디어 가스가 나왔다.

'선생님 저 가스나왔어요!'

누군가에게 방귀를 뀌었다고 이렇게 자랑스레 말한적이 있었던가. 지나치게 해맑았다고 생각이 들어 조금 부끄러웠지만 간호사분들도 나와 함께 기뻐해주시며 저녁에 흰죽 넣어드릴게요! 라고 말씀해주셔서 기뻤다.


애타게 기다렸던 저녁시간. 간을 하지 않은 흰 죽이 나왔다. 분명 기다렸던 시간이었는데 간장도 없이 흰죽을 먹자니 영 넘어가질 않았다. 작은 종지에 담겨있는 동치미도 몇 숟가락 떠먹긴 했는데 생각보다 영 입맛이 돌지 않고 오랜만에 밥을 먹어서 인지 배가 너무 아파서 반의 반도 먹지 못하고 상을 물렸다.

대신 레드향을 한입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비록 한쪽밖에 먹지 못했지만 레드향 나무 한그루를 먹은 것 처럼 기뻤다!


식사후에는 여느때와 같이 소화를 시키기 위한 운동을 좀 하고 엄마를 배웅했다. 이제 혼자 움직일 수 있으니 엄마는 일단 집으로 갔다가 내일다시 오시기로. 혼자 남을 내가 걱정됐는지 엄마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셨지만 집에서 다리 뻗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신나보이기도 하고!?ㅎㅎ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속이 울렁거려 휴대폰을 보긴 힘들었는데 책은 그런 현상이 없어서 입원 기간 내내 통증이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책을 읽었다.

병실 침대가 등을 세울수 있는 기능이 있어서 비스듬히 기대 누워 책을 읽기에 딱 좋았다. 오른쪽에 팔걸이도 있고. 덕분에 평소 읽고 싶었지만 휴대폰 하랴 TV보랴 순위에서 밀리던 책들을 맘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Day4. 조기퇴원 하는건가요?


아침 회진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의사선생님을 기다렸다. 어제 회진 때 피주머니에 고인피가 많이 나오지 않으면 오늘 퇴원을 시켜주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몇번이고 피주머니를 보았는데 여전히 뜨끈하고 무언가 찰랑찰랑 했지만 첫날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내심 기대하는 마음으로 회진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의사선생님은 여전히 피가 좀 나오고 있으니 오늘은 하루 더 있고 내일 상태를 보고 퇴원하자고 말씀하셨다.

입원 전 안내받은 내용을 되새겨봐도 오늘 퇴원은 좀 빠른 것이긴 했지만 내심 기대했던 탓에 속상했다. 이 좁고 답답한 곳을 드디어 탈출하나 했는데 하루 더 있어야 한다니!

아침에는 흰죽에 (빛과 같은!) 간장이 나왔고 점심부터는 일반식이 나왔지만 몇 숟갈 뜨기도 전에 배가 아팠고 울렁거리기까지 하니 밥도 싫고 병원도 싫고 모든게 싫었다.

아 정말 입원은 하지말자. 아프지말자. 다짐에 또 다짐을 했다.


대체적으로 힘들었던 입원이지만 그 안에도 작은 즐거움은 있었다. 일단 24시간 만나는 간호사분들과 친해졌다. 매일 보다보니 정도 들고 고맙기도 하고, 교대로 24시간 근무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간호사 분들도 있지만 간호학원에서 나온 예비 간호사 분들도 많았는데 다들 친절하고 따뜻하셔서 고마웠다. 입원 기간 내내 많이 의지를 했다.


또 한가지 즐거움은 줄어드는 주사와 링거였다. 식사를 한 이후로 항생제 맞을 때만 빼놓고는 링거를 맞지 않았는데 그게 그렇게 편했다. 어느 곳에 가던지 링거걸이를 가져갈 필요도 없고 링거에 맞아 퉁퉁 부었던 얼굴도 조금씩 가라 앉았다.

몸이 편해지니 마음도 편해지는지 옆 침대의 환자분들과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와 같은 날 입원해 같은 수술을 한 23살 학생은 아직 가스가 나오지 않아 식사를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지 알 것 같았다. 힘내라 힘!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잠깐 입원하는 산모분들은 대부분 컨디션이 좋았다. 아이를 낳았음에도 여전히 만삭처럼 부풀어 있는 배는 신기했지만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지내는 모습이 건강해보였다.

거의 가족, 특히 남편과 함께 와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참 보기 좋았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낳고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를 지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경험은 나로서도 뜻깊었다.


넷째날 저녁이 되서야 비로소 휴대폰을 볼 수 있었다. 수술 후 간간히 연락을 받긴했지만 잠시만 휴대폰을 봐도 울렁거리는 통에 뭐라고 답장을 했던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밀린 카톡들에는 지인들의 걱정과 응원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하나하나 대화창을 열 때마다 마음 속에 하트가 하나씩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이렇게나 사랑을 받았구나. 잊지말고 갚으면서 살자. 생각했다.


Day5. 드디어 퇴원!


나를 담당해주셨던 의사분은 휴진이라 다른 분께 퇴원 전 마지막 진료를 받았다. 수술 부위를 소독하고 피주머니를 뽑았다. 호스를 뽑으며 '많이 아팠죠? 고생 했어요'라고 물으시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몸이 약해져서 그런지 별거아닌 말에도 마음이 울렁. 퇴원해도 괜찮다는 말에 인사를 꾸벅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퇴원 판정을 받은 후 남은 절차는 정산과 마지막 주사 맞기! 약 일주일간 쓰고 먹고 맞은 것들에 대한 정산이라 그런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술비를 포함한 일주일간의 치료는 약 90만원 정도 비용이 나왔는데 실비보험이 있기에 망정이지 없었다면 부담이 됐겠다 싶었다.

사실 입원 전에도 병원에 올 때마다 진료비에 초음파 검사비, 가끔씩 주사비도 포함되어 있으니 매번 3만원에서 6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왔다.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의료보험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가 없고 그만큼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낮은 편임에도 이정도라니. 평소 보험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래서 보험을 드는구나. 싶었다.


퇴원 후 입원 내내 먹고 싶던 막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웬걸, 가는 동안 멀미가 너무 심하게 나서 차에 거의 눕다시피 누워있었고 결국 식당가서는 한젓가락도 먹지 못한채 먼저 나와 부모님이 식사하시는 동안 또 차에 누워 있었다.

매슥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져 바로 잠이 들었다.

늦은 저녁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니 아 집이구나. 그제야 집에 돌아온 실감이 났다.


낮에 5시간은 넘게 잔 탓에 잠이 또 올까 했는데 그날 밤 나는 병원에서 밀린잠을 보상이라도 받듯 꿀잠을 잤다. 역시 집이 최고다. 집이 최고야! 다시는 입원하지 말자. 다짐에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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