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에게서 가족을 배운다

결혼 1년 차, 사위의 눈으로 본 처가 풍경

by 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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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나는 어린 시절, 가족의 사랑을 온전히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한 아이였다. 어머니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커서 마주한 세상은 가족애에 대한 몰이해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그 사실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내가 그것이 잘못임을 깨달은 것은 아내를 만나기 한두 해 전, 이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그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를 만났다. 이제 나는 고쳐져야만 했다. 아내는 아내의 가족들과 적당한 문제들을 겪고 또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평범한 가정의 막내딸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족 모두가 아내를 예뻐했고, 아내는 그들 품에서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마치 따뜻한 햇살 아래 활짝 핀 꽃처럼.


아내의 남편이 되면서 내게 주어진 특혜는 그 사랑이 고스란히 내게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를 끔찍이도 아끼셨고, 나는 그렇게 사랑스러운 사위가 되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나였지만, 아내에게 잘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만으로도 처가댁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처가댁과 여행을 가거나, 처가댁에 내려갈 때면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식사를 하고 돌아온다. 장모님은 사위의 몸을 세 배는 불려야겠다고 생각하시는지, 끊임없이 바삐 움직이신다. 힘드실 법도 한데, 가족들을 위해 쉬질 않으신다. 요리 좀 할 줄 안다는 사위가 돕겠노라 나서면, 가만히 있으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조용한 성격이시지만, 조용히 가족들을 웃기는 아버님이 계셔서 나는 마음이 편하다. 지난 추석에는 단둘이서 말없이 영화를 봤다. 아내가 장모님과 사촌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동안, 나는 아버님과 둘이서 한참을 조용히 영화를 봤다. 영화는 정말 재미가 없었고, 나는 자다 깨다를 반복했는데 아버님은 개의치 않고 조용히 영화를 보고 계셨다. 그날 시간이 멈춘 듯 천천히 흐르는 가운데, 오래 잊었던 여유를 만끽했다.


아내의 형제인 형님은 나와 성격이 닮아서 섬세하다. 우리는 서서히 스며들어야 하는 사람들이기에 지나치게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로가 그런 성격인 것을 너무 잘 알아서, 서로 보채지 않고 말도 잘 걸지 않는다. 간혹 통하는 이야기가 있을 때면 수다가 이어진다.


나는 가끔 이 어찌 과분한 사랑이 내게로 돌아오는가, 하고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정말로 대단한 직업을 가졌거나, 대단히 성공해서 처가댁에 멋진 차를 가지고 오거나, 용돈을 턱턱 내드리는 사위가 아닌데 말이다.


이번 설날에도 처가댁에 한참을 머물다 올라왔다. 예민하고 까칠한 내가 처가댁에서 그렇게 편히 쉴 수 있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나는 아내를 통해, 그녀의 가족을 통해 비로소 '가족'이라는 따뜻하고 든든한 울타리를 이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이해는 이제 내 안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 자라나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서 가족을 배운다. 그녀의 가족을 통해, 사랑으로 가득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지지하고 아끼는 것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임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가족의 의미를 이제는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의 가족은 내게 단순한 '처가'가 아닌, 또 다른 '가족'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들의 따뜻함 속에서 나는 부족했던 사랑을 채우고, 이제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내와 그녀의 가족은 내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 안에서 매일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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