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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Feb 20. 2020

"엄마는 왜 그렇게 혼자 가?

[팔순의 내엄마] 엄마, 혼자 어디 가지 마


엄마, 혼자 어디 가지 마 


엄마 손을 잡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엄마와 외출을 하면 으레 엄마 손을 꼭 잡는다. 길을 걸을 때도, 법당에 오를 때도, 시장에 갈 때도. 그리고 가능하면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처음에는 엄마 손을 잡는 것이 너무나 어색했다. 엄마도 그랬던 모양이다. 내가 손을 잡으면 슬그머니 손을 빼내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처음의 어색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주 잡은 손을 꼭 쥔다. 


엄마 손과 내 손은 닮았다. 둘 다 손등은 두툼하고 손가락은 짧고 손톱은 뭉툭하다. 유일하게 나와 엄마가 닮은 곳이 있다면 바로 ‘손’ 일 것이다. 


엄마와 나는 많이 다르다. 우선 생김새부터 완전 딴판이다. 어릴 때는 “넌 누굴 닮았니?, 엄마하고 하나도 안 닮았네!’하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난 내가 어느 ‘다리’에서 주워 온 딸인 줄 알았다. 


성격도 그렇다. 엄마는 매사에 즉흥적이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자기감정에 충실한 나와는 정반대다. 내가 아는 한 엄마는 크게 웃을 줄도, 울 줄도, 화를 낼 줄도, 짜증을 부릴 줄도, 아프다거나 힘들다고 엄살을 부릴 줄도 모른다. 또 엄마는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갖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 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 누구 흉을 볼 줄도 모르고, 샘을 낼 줄도 모르고, 꾀를 부릴 줄도 모른다. 게다가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을 무지하게 싫어해서 남이 국 한 사발 떠 주는 것도 마다하고 ‘내가 떠먹지 뭐’ 한다. 매사에 그런 식이다. 좋게 말하면 ‘무던한 소' 같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 맞은 곰탱이' 같다. 


그런 엄마의 성격이 답답하기만 한 나는 가끔 ‘엄만 왜 짜증도 안 내?’, ‘왜 아픈데도 아프다고 말도 안 해?’, ‘왜 맨날 참아?’,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없어?’ 하고 패악질(?)을 떤다. 그럴 때도 엄마의 대답은 늘 똑같다. 워딩만 다를 뿐. 


“엄마가 그런 사람이냐?” 

“내가 그렇게 했으면 이 큰 살림을 건사하지 못했을 거다” 

“엄만 여태 그런 거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손을 잡는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어색했을지 상상해 보시라.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 이유


몇 년 전 함께 TV홈쇼핑에서 방영하는 장가계 패키지 여행상품을 보다가 “엄마, 우리 장가계 한번 더 갔다 올까? 무지 싸네.”하고 물으니 “두 번이나 갔었는데 뭘 또 가?” 하면서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근데 엄마 난 장가계 하면 그 할머니가 떠오르더라.” 

“누구?”

“왜 그 할머니 있잖아. 일행들과 떨어져서 막 헤매고 다니던 할머니 말이야.” 

“아, 그 노인네. 걸음이 늦으니까 젊은 사람들 따라가지 못하고 떨어진 거지 뭐.…” 

“그러게 말이야. 가이드가 잘 챙겨서 모시고 가야 하는데. 그 할머니 일행과 떨어졌을 때 진짜 무서웠을 것 같아. 나중에 일행들과 만나셨겠지?” 

“그 시골 양반이 얼마나 무서웠겠냐? 근데 요즘 자식들 중에는 부모랑 같이 해외여행 가서 지들끼리만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더라?” 

“부모님은 거기 놔두고? 에이 설마! 아무리 그럴까. 자기 부몬데! 말도 안 돼!. 엄마는 맨날 어디서 이상한 얘기만 듣고 다니더라.”


엄마의 얘기는 계속됐다. 
 

“엄마도 아랫동네 친목회에서 장가계 갔을 때 일행과 떨어진 적 있었어.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까 글쎄, 다들 버스 타고 떠나 버린 거라.” 

“말도 안 돼. 가이드가 인원 확인도 안 하고 그냥 갔단 말이야?” 

“그래. 근데 다행히 금방 버스가 되돌아오더라고. 같이 간 이가  *숙 엄마 안 보인다고 하니까 놀라서 금방 되돌아온 거지.” 

“큰일 날 뻔했네. 엄마 그때 많이 겁 났겠네?” 

“그럼 겁 났지.”


잔뜩 겁먹은 모습으로 일행들을 기다리는 엄마와 장가계 할머니가 오버랩되었다. 우리 엄마는 한국에서도 낯선 곳은 잘 못 찾아가는데…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엄마 손을 잡고 다닌 것이. 


돌이켜보면 엄마는 언제나 우리보다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더했다. 그러다 깜박하는 사이 엄마는 혼자 혹은 다른 일행에 섞여 엄한 데로 가곤 했다. “엄마, 엄마 같이 가.”하고 부르면 그제야 엄마는 잠깐 걸음을 멈춘다. 그것도 잠시. 짧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뒤돌아 또 혼자 걸어간다. 


“엄마, 엄마는 왜 자꾸 혼자 막 가? 길도 모르면서? 그러다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하루는 작정하고 엄마를 몰아붙였다. 그랬더니 엄마는 풀이 죽어서 


“니들은 내가 혼자 막 간다고 뭐라 하지?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몰라. 그러니까 왜 그런데?”

“니들이랑 같이 가면 빨리 못 걸으니까 자꾸 쳐지잖니. 그럼 또 니들이 엄마 기다리느라 못 가잖아. 그래서 부지런히 가는 거야. 조금이라도 멀리 가 있으려고.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걸으려면 다리가 더 아프더라고. 그래서 한번 걷기 시작하면 내처 가는 거야.” 

“…”


그러니까 엄마는 자식들한테 ‘걸리적거리지 않으려고’ 그랬다는 거다. 그 말을 듣는데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 그럼 진작 말을 해주지. 그 말 하기가 뭐가 힘들어서 그렇게 혼자 애썼어?’ 엄마 혹시 ‘뒤쳐지면 엄마 혼자 두고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 거야?’  


그 후로 난 꼭 엄마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옆에서 엄마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다. ‘우리 엄마 딴 데로 갈까 봐’. 


그런데 요즘도 가끔 엄마는 혼자서 내쳐 달아난다. 그러다 우리가 없는 것을 알고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며칠 전에도 차에서 먼저 내린 엄마가 혼자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불러 세웠다. ‘엄마는 비척비척, 혼자서 어디를 가시려는 걸까’. 이제는 엄마 혼자 저만치 앞서 가는 모습을 보면 무섭다. 꼭 어디론가 먼 길을 떠나는 것만 같아서. 엄마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엄마 혼자 어디 가지 마. 엄마 내 손 놓지 마. 알았지?’ 


<20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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