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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Oct 18. 2021

엄마가 휴대폰 뒤에 붙은 종이를 떼지 못하는 이유

[팔순의 내엄마] 낡고 오래된 휴대폰에 묻어난 당신의 세월



식탁 위 수북하게 쌓인 약봉지들 틈으로 자그마한 금속성 물체가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뭐지? 약봉지를 들춰보니 엄마의 휴대폰이었다. ‘아, 엄마의 휴대폰이 너무 낡았네.’하며 살펴보다 그만 코 끝이 찡해졌다. 금방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 전화기 뒷면에 적힌 글자들이 카메라 렌즈의 초점을 맞출 때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동공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의정부시 장암동 ***아파트 *동 ***호


엄마의 집 주소다. 3년 전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엄마 휴대폰 뒷면에 주소를 적어 붙여 드렸다. 반년쯤 지나 새로 교체한 휴대폰에도 '주소가 적힌 종이'를 붙여드렸는데 그게 여태 붙어 있는 것이다. 종이가 떨어지지 말라고 스코치 테이프까지 덧대어져 있었다.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한 다음날이었다. 바뀐 집에서 잘 지내고 계시나 걱정이 되어 전화를 드렸다.


“엄마, 저녁 드셨어? 어제는 잘 주무셨어요?”

“아직. 이제 들어가는 중이야.”


그 시간이면 집에서 저녁 드시고 쉬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밖이라니. 


“어딘데?”

“모르겠다. 지금 가능 중인데 아파트들이 다 똑같이 생겨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수화기로 들려오는 엄마 목소리는 지치고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엄마가 길을 잃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혼자 헤매지 말고 사람들한테 물어봐.”

“아냐. 이제 어딘지 알 거 같아. 이대로 쭈욱 가면 될 것 같아.”

“알았어, 그럼 잘 찾아와. 나도 엄마네 집에 가 있을게.” 


부리나케 엄마네 집으로 향했다. 속이 탔지만 할 일이 없었다. 가는 중에 또 전화를 걸었다. 금방 간다는 엄마는 여전히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집 찾았다며? 거기 어딘데? 엄마 그냥 거기 그대로 있어. 딴 데로 가지 말고. 내가 갈게.”

“아니야. 이젠 확실히 알아. 갈 수 있어. 거의 다 왔어.”

엄마네 집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는지 모르겠다.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니 다행히 엄마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엄마도 놀랐는지 조금 얼떨떨한 모습이었다.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아유 그게. 지름길로 간다고 한 것이 그만…”


엄마는 늘 다니던 체험관을 다녀오는 길이었단다. 당신 생각에는 이웃한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면 훨씬 빠를 것 같아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는데, 전혀 다른 곳이 나오더란다. 아침에 집을 나가면서 머릿속으로 수십 번 외우고 눈으로 익혔던 길은 안 나오고 점점 이상한 곳으로 갔으니 얼마나 놀랬을까.


“얼마나 헤맨 건데?”

“한 시간 정도 헤맨 거 같아. 분명 그리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영 다른 데가 나오는 거야. 글쎄.”

“길가던 사람들한테 좀 물어보지. 다리도 안 좋은데 그렇게 한참 동안 헤맸어?"


엄마에게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물어보면 금방인 길을 한 시간이나 헤맸다니... 엄마가 너무 ‘미련 맞아’ 보였고 속이 상했다. '노인네가...'


“분명 그리로 가면 될 것 같았는데…”


엄마는 꼭 아이가 핑계를 대는 것처럼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았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맹하니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어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엄마를 안심시켜 드렸어야 했는데.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공감해 드렸어야 했는데. 나 속상한 것만 생각해 가뜩이나 주눅 들어 있는 엄마에게 상처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 괜찮아. 이사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래. 이제 겨우 첫날이잖아. 나도 아직 여기가 낯설어.” 


엄마의 표정이 그제야 밝아졌다. 어쨌거나 엄마가 제대로 집을 찾아왔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며칠 후 엄마는 또 길을 잃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금방 집을 찾았노라며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했다. 이번에도 괜찮지 않은 것은 나였다. 엄마가 집을 못 찾아 길거리를 헤매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자꾸 길을 잃다가 아주 집을 못 찾아올까 봐 겁이 났다. 이름과 주소를 새긴 목걸이를 걸어드려야 하나. 그러면 엄마 자존심이 상할 텐데. 그러다 또 길을 잃어버리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다 생각해 낸 것이 주소를 적은 종이를 휴대폰에 붙여 드리는 것이었다.


전화기에 붙은 너덜너덜해진 종이를 보니 그때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다행히 엄마는 그 후로는 한 번도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주소도 잘 외운다. 그런데도 종이를 떼내지 않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나친 호들갑이었다. 그때 나는 분명 엄마의 상태에 대해 훨씬 앞서 가 있었다. 처음 낯선 동네로 이사 와서 조금 헷갈린 것을. 30년을 같은 동네 한 집에서 살다가 아파트 촌으로 이사를 왔는데, 헷갈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인데.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때 엄마는 길을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뭐라고 물었어야 했을까? 그때는 주소도 모르고, 지금도 ‘푸르지오’라는 생경한 아파트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데. 아파트 이름만 대면 된다고 생각했던 우리는 얼마나 이기적이고 배려심이 없었던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캐슬이니 래미안이니 푸르지오니 하는 그 생경한 집 이름을 대지 못해 저녁거리를 헤매었을 어머니는 당신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것도 모르고 길가던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알려 줬을 텐데 고집스럽게 혼자 찾아오려 했다고 핀잔을 주었으니. 어머니는 자식 때문에 몇 배나 더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팔순의 어머니에게는 점점 낯선 외국이 되어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나서면 번쩍이는 외국말들, 또 우리들의 말속에는, 뉴스에는 얼마나 많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이 많을까. 늙음이란 점점 섬처럼 고립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이모들과의 모임에 다녀온 엄마는 이모들이 연신 딸들한테 사진 보내고, 손주들하고 영상 통화하느라고 바쁘더란 얘길 하신다. 


“엄마도 스마트 폰으로 바꿔줄까?” 

“싫다. 전화 걸고 받을 수 있으면 되지, 멀쩡한 전화를 왜 바꿔?”

“이모들처럼 엄마도 우리한테 사진도 보내주고, 우리랑 문자도 하면 되지.” 

“싫다. 내가 다 늙어서 왜 그렇게 복잡한 걸 들고 다니면서 고생을 하니?”


엄마에겐 휴대폰도 캐슬이니, 푸르지오니 하는 단어들처럼 요사스러운 물건일 것이다. 손도 잘 구부러지지 않는데 그 작은 모니터를 터치해서 문자를 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비현실적이다. 


“맞아, 엄마. 휴대폰 별로 쓸데도 없어. 기껏해야 게임이나 하고… 복잡한 거 하지 마. 근데 엄마 휴대폰에 주소 적은 종이는 왜 안 떼 버려? 이제 주소도 다 외우잖아?”

“다 외우지. 근데 누가 물어보거나 택시 타면 머릿속에서 생각은 나는데 얼른 말이 안 나와. 그럴 땐 그냥 보여주면 되니까.”


지난날 엄마가 제대로 아파트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고 다그치고, 스마트폰 하나도 어렵지 않다고 강변했던 일들이 죄송했다. 동시에 엄마가 구닥다리 휴대폰에서 주소가 적힌 종이를 떼내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엄마는 정말로 길을 잃을까 봐 두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차마 그 말은 물어보지 못했다. 가만 보니 테이프 가장자리가 일어나서 너덜거린다. 다시 깨끗하게 적어서 붙여 드려야겠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이 더 많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면 엄마가 더 쓸쓸해질 것 같아서 말이다. 


[20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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