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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Oct 18. 2021

이사가 코앞인데 자개장만 쳐다보는 엄마

[팔순의 내 엄마]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 참 장해, 정말 감사해

“안방에 있는 문갑 좀 옮기자.”


하루는 엄마 집에 갔더니 안방에 있는 문갑 좀 옮기자고 하신다. 


“문갑은 왜? 어디로?”

“침대 매트를 큰 걸로 바꾸려고 하는데 문갑을 치워야 자리가 나올 것 같다.” 

“그럼 문갑은 어디다 놓으려고?” 

“버리야지, 뭐.”

“그걸 왜 버려? 엄마 안 쓰면 내가 가져갈게.”

“그래라 그럼.”


엄마는 순순히 승낙했다. 엄마 역시 문갑을 버리지 않게 되어서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이 문갑은 산 지 족히 30년은 넘었을 것이다. 한창 자개장이 유행할 때 엄마가 큰맘 먹고 장롱과 화장대 그리고 반닫이와 함께 구색을 맞춰 들여놓은 것이니 말이다. 


3년 전 이사를 할 때 엄마는 장롱을 비롯해 화장대며 문갑까지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두 끌고 오셨다. “장롱은 새로 들여놓자.”라고 해도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장을 새로 사니?”하면서 막무가내였다. 


“이 장롱 30년도 더 된 거 같은데요? 이거 한쪽 밑이 빠졌는데요. 오래 못 가겠어요. 새로 하나 장만하셔야겠어요.” 이삿짐센터의 직원들도 한 마디씩 할 정도로 엄마의 가구는 심하게 낡고 상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장롱은 종이를 괴지 않고는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고, 문짝은 어긋났는지 열고 닫을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났다. 문갑도 여기저기 긁힌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장롱과 문갑 모두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한 마디로 추레했다. 

엄마의 오래된 자개장, 이사할 때 버리자고 해도 못 버리게 한 엄마의 장롱에는 엄마의 삶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듯하다. 



엄마는 왜 이 낡은 가구들을 굳이 가지고 오셨을까. 정말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였을까. 분명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내 기억에 이 자개장들은 엄마가 번듯한 ‘파란색 2층 기와집’을 짓고 처음으로 구색을 갖춰 들여놓은 ‘엄마의 가구’였다. 그러니 얼마나 애착이 가겠는가. 그것들은 엄마 인생의 첫 성과물이기도 하고, 잘 나가던 시절의 증거물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엄마는 ‘소중한 물건’들을 모두 자개장 안에 보관하셨다. 며느리가 선물해 준 두꺼운 솜이불이며, 처음 맞춰 입은 땡땡이 한복이며, 우리 어릴 적에 입었던 배냇저고리까지 모두 장 속에 넣어 보관하셨다. 제일 아래 서랍에는 아버지와 엄마가 돌아가시면 입을 ‘수의’도 미리 만들어서 넣어 두셨다. 그렇게 하면 오래 산다면서.

그뿐만이 아니다. 엄마는 집문서나 땅문서 같은 중요한 서류들과 적금 통장, 도장들까지도 모두 장롱 속 깊숙이 숨겨 놓았다. 아버지가 달라시면 엄마는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가 이불 사이사이에 숨겨 놓은 서류와 통장들을 꺼내 나오곤 했다. 반닫이장 위에는 수 십 권이 넘는 앨범들과 자식들이 타 온 상장들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다. 



화장대와 문갑 서랍에는 계를 탄 돈으로 처음 사서 낀 백금반지와 아버지가 큰맘 먹고 선물하신 다이아반지와 오팔 반지, 우리들이 선물해 드린 브로우치 같은 액세서리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망할 놈의 도둑놈들이 엄마의 패물을 다 훔쳐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에게 안방의 가구들은 그냥 세간살이가 아니라 통째로 ‘엄마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버리고 올 수 있었겠는가. 

이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 엄마는 수시로 장롱과 문갑을 열어보면서 

“이거 다 어떻게 정리하냐?”

“나 살아 있는 동안은 이사 갈 일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살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하면서 무척이나 심란해하셨다. 하루는 그 많은 앨범들을 죄다 꺼내서 옛날 사진들을 보고 계셨고, 하루는 '땡땡이' 치마와 아들 장가갈 때 입었던 한복을 꺼내 보셨다. 장롱을 정리하다가 아예 손을 놓아버린 날도 있었다. 아마 그때 엄마는 당신이 살아왔던 시간이 송두리째 들려나가는 것 같은 상실감을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자개장들’은 새로 이사한 집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여기저기 흠집이 난 30년도 더 된 구닥다리 가구들이 지어진 지 10년도 안 된 아파트하고 어울릴 리가 만무했다. 자개장들처럼 엄마도 한동안 이사한 집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엄마는 외출도 안 하고 멍하니 베란다나 소파에 앉아 있기 일쑤였고, ‘아파트는 해도 잘 들지 않는다’며 심혈을 기울여 키우던 화초들도 팽개쳐 두셨다. 




하루는 엄마가 마냥 안방의 장롱을 보고 있길래 분위기 전환 삼아 “엄마, 저 공작새 진짜 예쁘네, 저기 토끼도 있네?” 하고 한껏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엄마는 “그걸 여태 못 봤어? 저기 다람쥐 있는 건 봤어?”라며 억지로 응수했다. 엄마와 나는 한참 동안 장롱에서 해와 달, 절구 찧는 토끼와 다람쥐, 오리 등을 찾아냈다. 꼭 유치원생들처럼. 그러는 사이 엄마 기분도 점차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개장을 한참 들여다봐서인지 자개 문양들이 보면 볼수록 예뻤다. ‘할머니들 취향’인 자개장에 그렇게 많은 문양들이 숨어 있는 줄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오래된 엄마의 자개농, 보면 볼수록 예쁘다. 이제 가장 엄마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다. 




“엄마, 엄마 장롱 진짜 이쁘다. 볼수록 예뻐. 엄마 안목이 참 좋으셨네.” 

“그럼, 이쁘지. 처음 들여놨을 때에는 얼마나 이뻤는데…”

“엄마, 저 장롱 살 때 참 좋았지?”

“좋았지… 그때 집도 새로 짓고… 니들도 다 잘 자라고…”

“그랬겠네. 엄마 참 대단해. 아버지랑 시골에서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나와 '판잣집'집에서 살다가 번듯한 집도 짓고, 애들 다 대학까지 가르치고... 난 엄마처럼 못했을 것 같아.” 

“으이, '하꼬방'집 살 때, 그 일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 하루는 쌀이 똑 떨어져서 저녁밥 지을 쌀도 없는 거야. 주인집에 좀 빌려 달라니까, 뭘 믿고 빌려주냐고 안 주더라고. 니들은 배고프다고 난리지. 할 수 없이 가겟집에 가서 외상으로 사 왔어. 그때 처음 외상이라는 것도 해 봤지….” 


엄마의 목소리에는 아련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엄마, 그런 일도 있었구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 속에는 힘든 시간이 참 많았구나…’ 이사 올 때 엄마는 ‘애써 이룩한 모든 것’을 두고 온 ‘허망함’과 ‘상실감’에 내내 힘들어했던 것은 아닌지. 언젠가 엄마한테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 참 많은 것을 해냈어. 우리 엄마 칭찬해…”라고.


이제 엄마는 새 매트를 위해 문갑을 내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쿨’해졌고 아파트 생활에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괜찮지 않다. 엄마의 손 때와 추억이 밴 묻은 물건을 차마 아파트 재활용센터에 내다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가져가겠다고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때에도 내 집에 두고 오래오래 엄마를 추억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문갑을 내 집으로 옮기려니 그것도 일이라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다. 결국 문갑은 아직도 엄마네 거실에 놓여 있는데, 내 솔직한 심정은 그 문갑이 오래도록 엄마 집에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와 함께.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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