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의 내 엄마] ‘내년엔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말
“내일 배추 씻을 사람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된다.”
“그렇게 빨리?”
“그럼, 그래야 배추 씻고 물 빼서 속 넣지.”
우리 집은 오 형제가 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는데 3년 전부터는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집에서 김장을 한다.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칼, 믹서기 등 주방용품과 갖은양념 그리고 커피, 쌍화차, 점심거리까지도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 한다. 혹여 빼먹고 못 챙긴 것이라도 있으면 차를 타고 읍내 장터까지 나가야 한다.
시골집 마당에서 펼쳐지는 김장 모습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다섯 집 김치니 좀 많겠는가. 배추만 120포 기고, 무, 갓, 파, 젓갈, 생강, 마늘, 고춧가루, 설탕 등등과 김치통에, 고무 다리이에, 광주리에 좁은 시골집 마당은 발 디딜 틈도 없다.
“엄마, 설탕 이거 다 넣어?”
“응, 그거 다 넣어.”
“고춧가루 더 넣을까?”
“그럼 맵지 않을까?”
“올해 고춧가루가 하나도 안 매워서 다 넣어도 돼. 생강이랑 마늘도 다 넣고.”
“이제 먹어봐. 된 거 같은데.” 엄마가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하신다.
“엄마, 좀 싱거운 거 같은데?”
“난 괜찮은데.”
누군 싱겁고, 누군 괜찮고, 누군 맵고… 근데도 엄마는 결국에는 모두의 입맛에 딱 맞게 간을 해 놓으신다. 눈대중으로 대충 넣는 것 같은데도 어떻게 그렇게 맛깔나게 간을 맞출 수 있는지. 그것도 배추 열 포기도 아니고 백 포기에 들어갈 양념 간을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 아마 대한민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럴 것이다.
엄마만의 '눈대중'과 '적당' 때문에 공연히 엄마와 충돌을 하기도 한다. 이런 식이다.
“엄마 이 파 얼마나 길게 썰어?”
“적당한 길이로 썰어.”
“이 정도?”
“그건 너무 길지.”
“그럼 이 정도?”
“그거보다 좀 길게.”
“이렇게.”
“에이, 그건 또 너무 짧지.”
“아, 몰라. 그럼 엄마가 썰어!.”
그렇게 해서 기껏 다 썰어놓으면 엄마는 또 잔소리를 한다.
“어휴, 파 너무 길게 썰었다. 파 대가리 큰 것은 반으로 잘라야 하는데 하나도 안 잘랐네. 그럼 먹을 때 씹혀서 별로 안 좋은데”
“5cm로 자르라며? 파가 질기긴 왜 질겨?"
나는 결국은 짜증을 내고 만다. 파가 좀 길면 어떻고 좀 짧으면 어떻다고. 다른 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는 모든지 다 ‘적당히’라고 하는데 나는 그 ‘적당히’를 이해하지 못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김장할 때에도 내내 엄마의 잔소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속은 배추 하나 버무릴 만큼만 가져다가 해라”
“배추 큰 거는 반으로 쪼개서 해라”
“김치통에 너무 많이 담지 말아라.”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데도 잔소리를 한다. 물론 엄마의 잔소리에는 다 이유가 있다. ‘파가 너무 길면 먹을 때 질깃질깃 잘 씹히지 않고, 무 양념을 한꺼번에 휘둘러 놓으면 고춧물이 다 빠져 나중 것은 하얘지고, 김치를 너무 많이 담으면 김치 국물이 넘치니깐.’ 그래도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리까지 아프다.
엄마는 나한테 잔소리를 쏟아붓고는 이번엔 다 담아 놓은 김치통 쪽으로 가신다.
“이건 왜 이렇게 헐렁하게 담았어? 배추 두 개는 더 들어갈 것 같은데. 석의야, 배추 작은 걸로 2개만 가져와 봐라.”
“김치통에 묻은 고춧가루 닦고 뚜껑 덮어라.”
“여기 우거지가 없네.”
배추가 떨어진 데에는 배추 배달까지 하면서 엄마는 전장을 누비는 장수처럼 마당을 종횡무진 누비며 김장을 총지휘한다.
엄마의 허리에는 늘 허리 벨트가 둘러져 있는데, 허리띠를 차고 있으면 허리가 힘을 받아서 좀 덜 힘들다고 삼복더위에도 풀어놓지 않는다.
“엄마, 그거 답답하지 않아?” 하고 물으면
“아니, 하나도 안 답답해.”라며 ‘요새 충전이 되는 제품이 나와서 겨울에 차면 따뜻하고 좋다고 너도 하나 사라'고 한다.
엄마는 그렇게 허리 벨트를 차고 '엄마는 이제 들어가 좀 쉬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할게.’라는 말도 못 들은 척하고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 김장이 끝났을 때에는 엄마는 허리도 제대로 못 폈다.
“아이고 힘들어.”
엄마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니깐 아까부터 쉬라고 했잖아….”
“하여간 엄마는 고집하고는…”,
“엄만 정말 못 말려.”
우리는 엄마를 위한답시고 한 마디씩 했다. 엄마는 대꾸할 힘도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 얼굴은 이상하게 편해 보였다. 마치 ‘이제 내 할 일 다 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엄마를 물끄러미 보고 있던 큰 언니가 “내년부터는 각자 김장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엄마 너무 힘드셔서 안 되겠어.” 라며 깜짝 발언을 했다.
“이제 엄마가 해 준 김치 못 먹는 거야?”
“그럼 우린 이제 김치 사다 먹어야겠네.”
“맞아, 엄마 너무 힘들어.”
“그럼 난 언니네랑 같이 해야지.”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내년에는 진짜 우리가 다 하면 되잖아. 엄만 그냥 와서 보고만 계시면 되지.”
“그게 되니? 내가 보니깐 제일 일을 많이 하는 게 엄마더라. 우리는 앉아서 배추 양념하는 동안 엄마는 혼자 무거운 김치통 옮기고, 배추 날라다 주고… 계속 허리 숙였다 폈다 하면서 한 시도 안 쉬시더라. 쉬란다고 쉬실 엄마도 아니고.”
한동안 우리끼리 이러쿵저러쿵 하다 엄마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엄마, 진짜 내년에 김장 못할 것 같아?”
“모르겠다. 내년에 엄마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아무도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죽을 때까지는 제사도 지내고, 김장도 담글 거’라던 엄마는 온데간데없었다. 엄마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드셨던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이란.!’
내년 일은 내년에 결정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열흘 후쯤 엄마한테 ‘만두 하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하여간 엄마는 힘들다면서 일도 잘 벌려.’
“엄마 몸은 이제 괜찮아?”
"이번엔 진짜 힘들더라. 그래도 이젠 많이 풀렸어.”
그러면서 또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당면 자를 때 칼에 기름을 묻혀라. 그럼 안 붙는다".
"양파는 왜 그렇게 잘게 다지냐, 씹을 거 없게."
“파 그렇게 길게 자르면 피 밖으로 삐져나온다.”
“아, 엄마 쫌.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저리 가 있어. 엄만 그렇게 우리가 못 미더워?”
“잘하는데, 그래도 틀린 건 가르쳐야지. 엄마가 없으면 가르쳐 줄 사람도 없잖냐?”
하면서 거실 쪽으로 나가셨다.
순간 ‘아차’ 싶었다. 엄마는 ‘당신이 없어도 자식들이 잘할 수 있도록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는 것인데….’ 엄마 마음을 알면서도 순간을 못 참고 또 엄마 마음을 쓸쓸하게 했다. 소파에서 TV 리모컨을 돌리고 있는 엄마가 애잔해 보였다. 그래도 평소처럼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보니 훨씬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요새 들어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될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말을 듣는 나도 ‘진짜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2019.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