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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Oct 18. 2021

하나도 안 덥다는 엄마, 늙어서 그런 줄 알았다

[팔순의 내엄마] 코로나로 진이 다 빠진 엄마에겐 가끔 보약이 필요하다



“엄마 안 더워?” 

“아, 난 왜 이렇게 덥지? 이거 봐! 땀나는 거.”

“엄마는 올해 땀나는 거 모르고 살았어.” 


이제 추분을 지났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의 뜨거움은 여전하지만 계절의 변화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마침내 오고 만다는 것을 계절의 변화에서도 절절하게 느끼는 요즘이다. 더위에 코로나에 그토록 힘들었던 이번 여름이 사그라들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올여름 엄마 집은 늘 찜통처럼 더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거실에 더운 열기가 가득했다. 


“엄마 안 더워?”

“아니. 가만있으면 뭐가 더워?” 

“아, 난 너무 더워. 선풍기 조금만 틀어도 돼?”

“엄마 쪽으로 바람 안 오게 하고 틀어.”


엄마는 베란다 문을 열어 놓으면 하나도 덥지 않다며 삼복에도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갱년기 증세가 나타나는 것인지 올여름 유난히 더위를 타서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더우면 잠깐 에어컨 틀던지.”라는 엄마 말에 “엄만 싫다며?”라며 못 이기는 척 에어컨을 틀곤 했다. 그런데 한 10분 정도 지나면 엄마는 “안 춥니?”하면서 긴 팔 옷을 찾아 입거나 작은 담요를 덮었다. 작은 거실에서 한 사람은 덥다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춥다 하고… 에어컨을 껐다 켰다… 올여름 유난히 에어컨을 두고 엄마와의 신경전을 많이 벌였던 것 같다. 


한 여름에도 선풍기 바람도 싫다 하고 에어컨 바람은 아예 진저리를 쳤다. 삼복더위에도 약하게 온열매트를 틀어 놓거나 허리찜질기까지 두르고 있는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요즘 부쩍 늙으셨네.’라는 생각에 코 끝이 시큰해졌다.  


코로나 이후 한동안 엄마는 거의 소파에서 지내셨다. 코로나로 인해 나들이 삼아 나갔던 외출이 제한되자 갈 곳도 딱히 할 일도 없는 엄마는 하루 종일 거실 소파에서 TV만 봤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거실의 등도 켜지 않은 채. 그래서인지 엄마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엄마 모하고 있어?” 하고 물으면 “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있지.” “오늘도 집에만 있었어?”하고 한번 더 물으면 짜증을 냈다. 그때도 그냥 집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그런가 보다 라고만 여겼다. 가끔 “요즘 다리가 무거워서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들어.”라고 할 때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학병원 정기 검진 결과에서도 특이사항이 없었다. 그런데 갈수록 얼굴은 납인형처럼 누렇게 뜨고 눈까지 퀭해졌다. 이상했다. 병원에서도 다 괜찮다는데…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던 큰언니가 나서서 한의원에 모셔고 갔더니 의사가 ‘맥이 하나도 안 잡혀요.’하더란다. ‘진이 다 빠져 버렸다’ 는 거다. ‘반감옥’생활에 맥을 놓친 건가. 그제야 우리는 보약과 공진단을 드시게 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조금씩 기력을 회복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골에 가서 밤도 따고 고구마 줄거리도 해 왔다. 얼굴에도 핏기도 돌아왔다. 그나마 보약으로 엄마가 기력을 회복하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보약으로도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렸던 거였으면 어쩔 뻔했을 것인가. 엄마는 ‘약발’이 받으시는지 약을 너무 열심히, 정성껏 잘 잡수신다. 전에 ‘보약 좀 해 드릴까 했을 때 왜 싫다고 했어?’ 하고 물으니 대답을 안 하신다. 대답은 뻔한데…. 


나이 든 부모님들은 보약 한 재 맘 놓고 드시지 못한다. 자식들에게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고, 당신의 돈으로 해 드실 수도 있지만 ‘노인네가 얼마나 더 살겠다고 보약까지 먹어?’ 하는 소리가 듣기 싫으실 거다. 그동안 말로만 ‘엄마 보약 한 재 먹을까?’라고 했을 때 ‘좋다’고 말을 못 한 엄마의 심정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때 진즉에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가끔 언젠가 엄마와 함께 오대산 천년 전나무 숲 길에서 보았던 고목이 떠오른다. 하늘까지 뻗어 올라간 전나무들 틈에 혼자 서 있는 속이 텅 빈 고목 한 그루. 엄마는 그 나무가 신기하다며 한참을 나무둘레를 둘러보더니 급기야는 기어이 텅 빈 나무속으로 들어가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달라했다. 그때 내 눈에 나무와 엄마가 얼마나 똑같아 보였는지 엄마는 모를 것이다. 내게는 엄마와 나무가 한 나무로 보였다는 것을. 


오래된 나무는 땅 속으로 얼마나 넓고 깊게 퍼져 있는지 모른다. 그 덕에 나무는 100년 200년 천년을 살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나무는 언제 뿌리가 뽑혀 나갈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멀쩡해 보여도 가끔씩 거름을 주어야 한다. 그러니 부모님들이여, 올 추석 ‘얘들아 ‘나 보약 한 재 지어다오.’라고 당당히 말해 보심이 어떠실지요.  


20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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