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작나무숲 Feb 20. 2020

푸른 자국들로 뒤덮인 엄마의 몸

[팔순의 내 엄마] 이제야 듣게 되는 엄마의 아린 속마음


낙산사 말고 낙산 해수탕




“엄마 이제 숙소 들어갈까? 일찍 짐 풀고 해수탕 할까?”

“거기 해수탕이 있대? 그럼 그러자.”


엄마가 반색을 하신다. 이제 오후 네 시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여행 와서 이렇게 이른 시간에 숙소로 들어간 적이 있었던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예전에 온천 여행을 가서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11시가 다 되어서야 호텔 문을 나섰던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잔뜩 골난 표정으로 “지금이 몇 시냐? 저 햇살이 아깝지도 않냐?" 하면서 우리를 타박했다. 그러니까 젊을 때 엄마는 여행을 가면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해가 질 때까지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데 지금은 ‘일찍 숙소로 가지 뭐', '아침은 숙소에서 먹고 천천히 나가자', ‘거긴 가서 뭐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엄마의 체력이 날로 저하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엄마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여행 코스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죽어라고 다니고, 목적지는 끝까지 가고, 늦게까지 다니다 저녁까지 먹고 숙소로 들어오곤 했는데 지금은‘가능하면 많이 자주 쉬고, 목적지까지의 완주보다는 여정을 즐기는, 적당히 게으른 여행을 하고 있다.  가끔은 목적지에 턱없이 못 미친 곳에서 여행이 끝나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지만 우리들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엄마는 또 ‘나 여기 있을 테니 너희들이라도 보고 와.’ 하면서 등을 떼밀거나 ‘나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해서 어쩌냐’하면서 미안해한다.


숙소인 낙산 비치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낙산사 한번 올라갔다 올까요?’하고 물으니 ‘거긴 뭐하러 또 가? 봄에 갔다 왔잖아’하면서 바로 숙소로 가자고 하신다. 몸이 많이 고단하신가 보다.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몸




낙산 비치 호텔 내에 있는 해수탕은 명성에 비해 초라할 정도로 작았다. 호텔에 딸린 작은 온천장이었을 뿐 대대적으로 낙산 해수탕으로 홍보할 정도는 아니었다. 탕 안에는 낡아서 녹물이 흘러내린 곳도 있었다. 낮 시간이라 그런지 해수탕에는 4-5명 정도의 손님이 있었는데 그나마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이었다. 


엄마는 샤워를 마치고 바로 온탕에 몸을 담갔다. 요즘 나는 엄마 몸을 보면서 깜짝 놀라곤 한다. 젊을 때 엄마는 제법 살집이 있는 퉁퉁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한 마디로 뚱뚱했다. 몸무게가 75kg까지 나간 적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엄마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때 엄마가 왜 그렇게 몸무게가 늘었는지 알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던 거야." 

"..."


“그땐 니 외할아버지 꼼짝도 못 하시고 누워 계시는 거 들여다봐야지, 석의 집에 데려다 놨으니 챙겨야지,  (*석의는 큰 손주의 이름)  너네 친할아버지 모셔야지... 정말 양쪽 할아버지와 손주까지 키우느라고 진짜 힘들었어. 그때 갑자기 살이 막 찌고 몸무게가 확확 늘어나는데 좀 겁나더라고.”


"정말?


"그렇다니까. 사람이 너무 힘들어도 그렇게 살이 찌더라고."


그랬구나. 근데 난 그것도 모르고 여태 엄마가 그냥 많이 먹어서 살이 찐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엄마 몸은 어떤가? 몸속의 살과 기름은 온데간데없고 가죽만 남아 있었다. 탄력 없이 축축 늘어진 피부는 잔뜩 쪼그라들었고, 구부러진 등과 휘어진 다리는 힘없는 뼈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었다. 잔뜩 쪼그라든 엄마의 몸은 예전의 반도 안돼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의 몸은 하루하루 작아지고 있을 텐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작아질지 겁이 났다. 



‘저 노인이 우리 엄마란 말인가.’

‘우리 엄마가 언제 저렇게 작아졌을까.’


어릴 적 엄마는 우리 네 자매를 데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목욕탕에 갔다. 설이나 추석 밑에는 예외가 없었다. ‘묵은 때를 씻어내고 깨끗하게 한 해를 맞이해야 된다’고 하시면서. 그리곤 애들 넷을 하나씩 붙잡아 놓고 등이 아프도록 때를 밀어 반들반들하게 만들어서 데리고 나왔다. 지금도 벌겋게 달아오르고 반들반들 윤이 나는 얼굴을 하고 바나나 우유를 빨면서 목욕탕 문을 나오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리고 그때의 암팡졌던 엄마의 손길과 쓰라렸던 등가죽의 아픔도.


“엄마 옛날에 우리 목욕탕 데리고 가서 씻겨 나올 때 힘들지 않았어?”

“왜 안 힘들어? 아프다고 울고 버텨서 더 힘이 들었지, 특히 너는 때 안 밀겠다고 도망 다녀서 붙들어 와서 씻기느라고 더 힘들었어.”

엄마는 애들 넷을 다 씻기고 나면 힘이 다 빠져서 정작 당신의 몸을 밀 힘도 없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우리 클 때까지 한 번도 빼놓지 않았다고.

“ㅇㅇ아, 등 좀 밀어봐라. 살살 조금만 밀어.”


엄마가 등을 밀어달란다. 그렇잖아도 살살 밀 수밖에 없겠다. 엄마의 등과 배는 이제 가죽만 남아 있어서 힘을 주고 싶어도 힘을 줘서 밀 수가 없었다. 내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엄마의 몸에서는 때가 아니라 가죽이 밀려 나갔다. 들어 올린 팔은 또 왜 이리 가벼운 지. 속을 다 파먹은 늙은 호박도 이렇게 가볍지는 않겠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푸른 이끼가 뒤덮은 듯한 엄마의 몸


엄마의 몸에는 찜질방에 다니면서 생긴 푸릇푸릇한 열상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그 자국들은 멍자국 같기도 하고 푸른 이끼가 낀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봤을 때의 그 놀라움은 지금도 가시지 않아 엄마의 벗을 몸을 보면 지금도 흠짓 흠짓 놀란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찜질방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찜질기의 온도 때문인지 얼마 지나서 않아서 몸에 푸른 멍자국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자국들이 보기 흉해서 찜질방에 그만 다니라고 윽박(?)을 지르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거기서 뜨끈하게 지지고 있으면 얼마나 시원한데… 내가 거길 다니니까 지금도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거야”하면서 지금까지도 열심히 다니신다.


엄마 몸의 푸른 자국들은 처음에는 배 부위에만 있더니 지금은 부위가 더 넓어져 등까지 퍼졌고 푸른빛도 더 선명해졌다. 푸른 이끼가 서서히 바위 한 귀퉁이를 덮고 급기야는 바위 전체를 뒤덮듯이 그 푸른 자국은 엄마 몸을 다 뒤덮을 기세다.


나중에 우리 엄마는 '저 푸른 몸에 수의를 입겠구나' 하는 생각이 바라처럼 스쳤다. 



[2019.11.26]

이전 01화  엄마, 늙는 건 창피한 게 아니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