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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May 26. 2023

땅 사라는 전화

집에서 해먹은 것보다 맛있던 김치 스팸 볶음밥으로 정신 차렸습니다.

"땅이요?" 좋은 땅이 나왓다며 뜬금없는 전화가 왔다. 왠만했으면 "죄송합니다."하고 뚝 끊엇을텐데 전화가 이어지게 된 것은 아마도 대략 이런 이유였을까. 


내가 모르는 방법으로 누군가가는 돈을 벌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50대 후반으로 느껴지는 전화 속 상담원분의 친근한 화법.

모르고 살았던 그 많은 기회들 중의 하나.


"나도 땅을 진작에 사 둘 걸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전화나 걸고 있겠어?" 그분의 시원하고 공감가는 말에 웃음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한편으로 나중에 '내가 저 소리를 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그러게 땅 하나 사봐야하나.' 그런 생각이 든거 보니 어느 정도 그 분의 전략은 성공이었다. 


"이번 땅은 너무 좋았어. 0 0 신도시 알죠? 그 옆에 그린밸트라서 아직 풀리지 않아서 아직 가격이 저렴해. " 상담사분 말에 (그러면 그린밸트가 도대체 언제 풀린다는 말인가? 그게 풀릴 수 있는건가) 속으로 생각했지만서도, '지금 저렴한 저 땅 나도 사고 싶다. 남들이 알기 전에 !! 나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싶다.'그런 생각이 드는 거 보니 나 스스로도 내가 의아했다. 


"이번 땅은 다 마감이 됐어. 바로 마감될 만하지 뭐. 다음 주에 내가 양평에 있는 땅 소개해줄께. 다시 전화할께요~" 그 말에 '아니 !! 내가 놓친 땅,!!! 다른 좋은 땅있나?' 그런 마음이 되고 말다니, 요새 유투브로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본 탓인가.


더군다나 귀찮음에 발신인을 저장해두지 않는 바람에 두어번쯤 그 땅 전화를 받고 말았다.


"승아씨 잘 지냈어요? 나도 이번에 양평에 나온 땅 하나 샀어! 잘됐죠? 나 지난번에 산 땅도 많이는 아닌데 조금 올랐잖아. 내가 이번 양평 땅 보고 왔어요. 그 땅 너무 괜찮아. 우리 놀러갈 때 어디가요? 양평 많이 가잖아요. 거기 카페 많은 곳 옆에 있는데 그 카페쪽은 당연히 1평에 백만원하고 그러지. 아직 여기는 1평에 몇십만원도 안해." 그러고는 알고 있을만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 뭐든 공사 첫 삽 뜰때 또 오르잖아. 그 전에 얼른 사야해."  '그렇지. 살거면 뭐든 공사하기 전에 사야되지.' 어줍잖은 나의 정보들이 상담사의 말과 겹치면서 나도 한번 알부자가 되고 싶어졌다. 


평소 같으면 바로 끊어버렸을 이 전화!! 남들이 무시해버릴 전화로 나만의 기회가 되거나 모르는 세상을 좀 더 알아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나. 그런 내 자신이 어색하면서도 스스로 혼동이었다. '지금의 나, 이거 분별력 없는걸까.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이 당하는 사기가 우리의 부모님이 어리숙해서 당한 것만은 아니었을텐데. 그 때의 부모님들이 절박했었나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번호를 발신자 제한으로 걸어두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며칠 후, 사무실 근처 분식집에서 평소 시켜보지 않았던 김치 스팸 볶음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쉬운 음식이어서 시켜본 적 없었건만, '아니 이게 집에서 하는 거랑 비슷한데 왜 이렇게 맛있는거야? 어이없게 맛있군.' 하고 아주 만족하고 있던 가운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승아씨 나야~" 다른 번호로 전화를 하신 상담사 분은 자신의 번호가 발신자 제한이 되었다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아보여서 잠시 머슥했지만, 나 또한 '당신을 발신자 제한 한 적 없어요'한 듯 인사했다.


"아~ 네네. 남편이랑 상의하고 연락드릴께요." 나의 대답에 그 분이 여느 때보다 재빠르게 대답했다. 

"아니~ 보니까 땅이랑 부동산은 여자들의 몫이야. 남자들은 그런거 신경쓸 여력이 없고 그래서 지금 강남 사모님들이 다 자기네가 부동산 굴렸던 걸로 자리 잡고 있는 거잖아요. 나도 이전에 더 일찍 알았다면은 지금 사모님 됐겠지. 지금 얼마나 고생이야. 그나마 오년 전부터 내가 알게되서 내 이름으로 남편이름으로 아들 이름으로 하니까, 이제 땅값 오르니까 남편도 아무말 못하더라니까." (아니 이것은 여자들의 공감 화법 중 하나 인가!!!)


"아.." 잠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틈이 생긴 나의 문장에 비
집고 상담사님이 비집고 들어왔다.

"아니 승아씨 개인적으로 천만원은 굴릴 수 있다고 했었잖아~!!! 이런건 남편한테 말해봤자 하지 말라고만 하지! 당연하지 남편들은 지금 이 땅이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르잖아. 내가 가서 브리핑해줄께! 나한테 10분만 시간 못 내줘요?! 어차피 점심은 먹을텐데 그 때도 못내줘요?! " 그 안에는 짜증이 보일듯 말듯하게 숨어있었다. 들키지 않으려 했겠지만 들킬만한 어투였다. 그 분의 절박함이 30초의 문장에서 그려졌다. 그 30초로 그 분의 지금 상황을 짐작이갔다. 


그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생각이 없다며 서둘러 끊었다. 그리고 평소의 나라면 다 못 먹었을 1.5인분 같았던 그 맛있는 김치 스팸 볶음밥을 거의 다 먹었다. 여러 생각을 더듬어보고 정리해보며 먹는 김치 스팸 볶음밥을 여전히 맛있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땅 전화'를 검색했다. 

나에게 했던 비슷한 호재들

땅을 몇배나 비싸게 주고 샀다는 기사.

그리고 전화 속 상담사분들도 땅을 팔지 못하면 자기가 메꾸어야한다는 기사.

전화 속에 시원한 화법의, 이번에 땅을 사서 올랐다는 당찼던 상담사님은 어쩌면 이번 달 땅을 팔지 못해 메꿔야할 수도 있겠지. 


순간, 지금 분별력이 흐려졌나, 무엇에 의지하고 싶고 기대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이 와중에 괜히 서너번이나 전화하는 헛수고를 하게 해드렸군 하는 늘 내 안의 죄책감도 어김없이 가졌다.


이 모든게 우울이나 불안 때문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이 들어 올 틈이 너무 많은 요즘이었다. 




-

일종의 감기 같은 우울과 불안을 얼른 낫게해주려고 기록해보고 있습니다.

쓴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어느 부분은 개운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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