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숫자는 당신의 과거, 스토리는 그 숫자의 미래다

8. 핵심 지표 심층 문답: 숫자를 이야기로 방어하는 법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II. 자기정의하기 - 설득과 결속의 대화(초기~성장, '0 to 10' 과정의 핵심)


8. 핵심 지표 심층 문답: 숫자를 이야기로 방어하는 법



"차량의 유지비보다 그 차가 어디로 갈지가 중요하다"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피칭 스토리가 끝나고, 엑셀이 열리는 순간

당신은 매력적인 회사 스토리와 진정성 있는 파운더 스토리로 투자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진짜 시험은 이제부터다. 투자자가 웃음기를 거두고 말한다.

"왜 당신인지 잘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숫자를 좀 볼까요?"

많은 창업가에게 이 순간은 가장 피하고 싶은 압박 면접의 시작이다. 감성의 영역이 끝나고, 차가운 이성과 논리만이 존재하는 심문대 위에 오른 기분. 모든 것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두려움에, 창업가는 방어적인 태도로 숫자를 숨기거나 섣부른 낙관론으로 포장하고 싶어 한다.


숫자는 당신의 가장 정직한 스토리텔러다

하지만 이 대화는 당신의 스토리를 무너뜨리는 과정이 아니라, 당신의 스토리가 '진실'임을 증명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0 to 10' 단계에서 투자자는 당신의 KPI(핵심 성과 지표)와 재무 모델을 통해 당신이 얼마나 자신의 사업을 깊이 이해하고 통제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창업가는 단순히 '꿈을 가진 사람'을 넘어, '자신의 꿈을 현실로 만들 능력을 숫자로 증명하는 리더'라는 강력한 신뢰를 얻는다. 이 대화에서 구축된 신뢰는 회사가 'Beyond 10'으로 나아갈 때, 더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된다.




2. 오해와 착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숫자를 섬처럼 고립시키는 실수

"저희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1만 명입니다."

그래서, 그게 뭘 의미하는가? 가장 흔한 실수는 숫자를 맥락 없이 툭 던지는 것이다.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고객 집단의 행동이 반영된 것인지, 그래서 앞으로 어떤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그 숫자는 단순한 사실일 뿐 어떤 통찰(Insight)도 주지 못한다. 투자자는 당신이 자신의 사업을 운전하는 '드라이버'가 아니라, 계기판의 숫자만 읽는 '승객'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허상 지표'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함정

창업가는 좋은 소식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허상 지표(Vanity Metrics)'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누적 가입자 10만 명', '앱 다운로드 50만 건'과 같은 숫자들은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사업의 건강 상태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투자자가 진짜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그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 제품을 꾸준히 쓰는가?(재방문율)', '한 명의 고객을 데려오는 데 얼마를 써서 얼마를 버는가?(단위 경제성)'와 같은 '실행 지표(Actionable Metrics)'다. 허상 지표 뒤에 숨는 것은, 지금 당장의 불편한 진실을 피하는 대가로 미래의 신뢰를 모두 잃는 어리석은 거래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핵심 원칙: 모든 숫자는 인과관계의 결과물이다, 그 과정을 설명하라

투자자가 당신의 KPI에 대해 질문할 때, 그들은 단순히 숫자의 높고 낮음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어떤 가설(입력 값)을 세우고 행동했기에, 이런 숫자(결과 값)가 나왔는가?" 그 인과관계의 고리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당신의 목표는 숫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나오기까지의 학습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하는 것이다. 좋은 숫자든, 나쁜 숫자든 모두 당신이 시장을 배워가고 있다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프레임워크: KPI 스토리텔링 4단계 (W-S-N-N)

어떤 KPI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아래 4단계 구조로 대답을 설계하라. \


1. What (숫자는 무엇인가?): 질문받은 KPI를 명확하고 간결하게 먼저 말한다. (예: "저희의 현재 월간 고객 이탈률은 5%입니다.")


2. So What (어떤 의미인가?): 이 숫자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그 배경과 원인을 설명한다. (예: "분석해 보니, 특정 기능 A를 사용하지 않은 고객 그룹에서 대부분의 이탈이 발생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3. Now What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배움을 바탕으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제시한다. (예: "그래서 다음 달에는 신규 고객 온보딩 과정에 기능 A의 사용법을 강조하는 튜토리얼을 추가할 계획입니다.")


4. Next What (그 결과 무엇을 기대하는가?): 그 실행 계획이 성공했을 때, 이 KPI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되는 미래를 보여준다. (예: "이 개선을 통해 이탈률을 2%대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대화의 핵심 키워드 뽑아내기


#단위경제성 (Unit Economics):

고객 한 명당 발생하는 비용(CAC)과 수익(LTV). 당신의 비즈니스가 지속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언어다. 수익(LTV)/ 비용(CAC)=3 이상일 때 투자자가 관심을 가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완벽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투자자의 호기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코호트분석 (Cohort Analysis):

특정 기간에 동일한 경험을 한 사용자 그룹(코호트)의 행동 변화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하는 것. 이는 단순히 사용자를 속성(예: 지역, 연령)으로 나누는 '세그먼트(Segment)'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세그먼트가 '현재 시제의 사진'이라면, 코호트는 '현재완료 시제의 시간이 담긴 동영상'과 같다. 투자자에게 "1월에 가입한 사용자 그룹보다 3월에 가입한 사용자 그룹의 재방문율이 더 높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는 두 달 동안 무언가를 배웠고, 우리 제품은 실제로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라는 가장 강력한 스토리가 됩니다.


#북극성지표 (North Star Metric):

회사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핵심 가치’를 측정하는 단 하나의 지표. 이는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의 모든 선원들이 함께 바라보는 단 하나의 ‘북극성’과 같다. 매출이나 이익 같은 회사의 ‘결과 지표’가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 지표’에 집중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북극성은 '매출'이 아니라 '예약된 숙박일 수'이다. 더 많은 고객이 더 많은 밤을 예약할수록(고객 가치), 회사의 매출은 자연히 따라오기 때문이다. 잘 설정된 북극성 지표는 마케터에게는 "우리의 캠페인이 숙박 예약을 늘리는가?", 개발자에게는 "이 기능 개선이 고객의 예약을 더 쉽게 만드는가?"와 같이, 모든 팀원이 자신의 업무를 회사의 핵심 목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만드는 강력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혹시 위 단어를 모르는 창업자가 있다면 큰일이다, 이제부터 공부해야 한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투자자의 날카로운 질문:

"고객 획득 비용(CAC)이 너무 높은 것 아닌가요?"


피해야 할 답변:

"네, 아직 초기라서 그렇습니다. 앞으로 마케팅 효율이 좋아지면 낮아질 겁니다." (희망 사항일 뿐, 근거가 없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말씀하신 대로 현재 평균 CAC는 10달러로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채널별 코호트를 분석해 보니, A 채널의 CAC는 5달러에 LTV가 30달러인 반면, B 채널은 CAC가 15달러에 LTV가 20달러였습니다. 이 데이터를 통해 저희는 A 채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다음 분기 마케팅 예산의 80%를 A 채널에 투입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전체 평균 CAC는 6달러 수준으로 개선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문제를 인정하고(솔직함), 데이터 분석을 통해 원인을 밝히고(분석력),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실행력), 미래의 개선 효과를 예측(통제력)함으로써, 부정적인 지표를 오히려 당신의 학습 능력과 통제력을 보여주는 기회로 전환했다.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사례 분석: 슈퍼휴먼(Superhuman)과 '머스트 해브(Must-have)' 지표

2025년 7월에 그래머리(Grammarly)에 인수된 이메일 서비스 슈퍼휴먼의 창업가 라훌 보라는 초기 투자 유치 과정에서 전통적인 성장 지표 대신 자신만의 독특한 북극성 지표를 제시했다.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투자자들이 "월간 활성 사용자(MAU)가 얼마나 되죠?"라고 물었을 때, 라훌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완전히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저희의 핵심 지표는 '만약 슈퍼휴먼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매우 실망할 것 같다'라고 답한 사용자의 비율입니다."


그는 이 지표가 40%를 넘으면, 그 제품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준비가 된 '머스트 해브(Must-have)' 제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이터라고 주장했다. 그는 MAU라는 결괏값이 아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선행 지표, 즉 '고객의 사랑'을 측정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독창적인 지표는 슈퍼휴먼이 왜 단순한 이메일 앱이 아니라, 소수의 열광적인 팬을 가진 강력한 커뮤니티인지를 숫자로 증명했고, 투자자들은 기꺼이 그 '가능성'에 투자했다.


나는 처음 이 슈퍼휴먼의 라훌 보라(Rahul Vohra)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영리함에 무릎을 쳤다. 이것이야 말로 숫자를 스토리로 방어하고, 심지어 투자자의 틀에 박힌 생각을 공격까지 한 사례이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Takeaway & 행동 강령

당신의 핵심 지표 3가지를 정하고, 각각의 지표에 대해 'W-S-N-N' 프레임워크에 맞춰 한 문단짜리 스토리를 작성해 보라. 당신의 숫자는 더 이상 방어의 대상이 아닌, 공격적인 설득의 무기가 될 것이다.


체크리스트 (KPI 문답 대비용 치트 시트)

[ ] 나는 우리 회사의 북극성 지표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 ] 나의 모든 핵심 지표는 그것을 만들어낸 '원인(전략)'과 연결되어 있는가?

[ ] '허상 지표'가 아닌 '실행 지표'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 ] 안 좋은 지표가 나왔을 때, 거기서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

[ ] 나의 재무 예측 모델은 과거 데이터와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기반한 '스토리'인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필독서) 앨리스터 크롤, 벤저민 요스코비츠, 『린 분석 (Lean Analytics)』: 어떤 사업 모델에 어떤 지표가 중요한지 알려주는 최고의 교과서.

✔ (해외/블로그) 앤드류 첸(Andrew Chen), 브라이언 밸푸어(Brian Balfour)의 블로그: 실리콘밸리 최고의 그로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지표와 성장에 대한 깊이 있는 글들을 볼 수 있다.

✔ (국내/자료) ZUZU(주주), 쿼타북(Quotabook) 등 스타트업 금융/관리 플랫폼의 블로그: 국내 스타트업 환경에 맞는 재무 모델 및 KPI 관리법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다음 챕터로의 연결


당신은 매력적인 스토리, 진정성 있는 자기 증명, 그리고 데이터 기반의 논리까지 갖춰 투자자의 완전한 신뢰를 얻었다. 이제 외부로부터의 '신념 확보하기'는 끝났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과제가 남았다. 확보한 자본과 비전을 가지고, 가장 중요한 내부 고객, 즉 '우리 팀'을 설득하고 결속시키는 일이다. 다음 챕터에서는 추상적인 미션을 팀원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비전 공유를 위한 전사 회의" 대화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핵심성과지표 #KPI #린분석 #데이터스토리텔링 #단위경제성 #스타트업 #투자유치 #IR피칭 #그로스해킹 #북극성지표 #숫자관리 #창업자의대화설계

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keyword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