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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공이 쌓는 것이, 벽이 아닌 성당임을 알게 하라

9. 비전 공유 전사 회의: 미션을 현실로 만드는 대화법

by jaha Kim

창업가의 대화설계 (Founder's Talk Design)

Part II. 자기정의하기 - 설득과 결속의 대화(초기~성장, '0 to 10' 과정의 핵심)


9. 비전 공유 전사 회의: 미션을 현실로 만드는 대화법



"내가 쌓는 벽이 이 성화가 그려질 벽임을 알지 못하는 벽돌공은 지루하고 힘이 들다"



1. 이 대화, 왜 피하고 싶고, 왜 피할 수 없는가? (The Inescapable Conversation)


금요일 오후, 미팅 취소 버튼 누르며

금요일 오후 4시. 당신의 캘린더에 '전사 비전 공유 미팅' 알림이 뜬다. 당신은 짧은 한숨을 내쉰다. 책상 위에는 당장 처리해야 할 투자 검토 요청 메일이 쌓여있고, 개발팀은 출시를 앞두고 터진 버그와 씨름 중이다. 마케팅팀장은 다음 주 광고 예산안을 들고 당신의 눈치만 보고 있다. 이 전쟁터 같은 상황에서, 모두를 회의실에 모아놓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당신은 조용히 미팅 취소 버튼 위로 마우스를 가져간다.


당신은 게으르지 않다, 단지 현재에 최선을 다할 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당신이 비전 공유를 미루는 것은 게으르거나 비전의 가치를 몰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당신은 '지금은 생존을 위해 눈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팀을 위한 나의 최선이야'라고 믿으며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스타트업의 리더에게 '비전'은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고, 당장의 생존이 걸린 급한 불을 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실질적인 역할이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이다. "할 일도 많은데..."라며 이 대화를 미루고 싶은 마음은, 당신이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가장 뜨거운 증거일 뿐이다.


위기 속 팀의 마지막 방파제

하지만 팀이 '왜' 이 힘든 일을 함께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답이 없다면, 조직은 모래성과 같다. 첫 번째 위기가 닥쳤을 때, 월급만으로는 뛰어난 인재를 붙잡을 수 없다. '0 to 10' 단계에서 비전 공유는 단순히 좋은 말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팀원들의 영혼에 회사의 존재 이유를 각인시키는 과정이며, 모두가 같은 꿈을 꾸게 만드는 조직의 운영체제(OS)를 설치하는 일이다. 이 대화는 회사가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폭풍우 속에서 팀이 흩어지지 않고 나아가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방파제가 된다.




2. 오해와 착각: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함정 (The Founder's Fallacy)


'말 안 해도 알겠지'라는 가장 위험한 착각

"우리 팀원들은 똑똑하잖아.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내 머릿속에 있는 이 위대한 그림을 그들도 당연히 보고 있겠지." 창업가의 머릿속에는 회사가 만들어갈 미래가 24시간 내내 4K 영상처럼 생생하게 재생된다. 창업가는 이 비전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팀원들도 자신과 똑같은 영상을 보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반짝임을 잃어버린 눈동자

그 착각은 조용한 비극을 낳는다. 개발자는 자신의 코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상상하는 대신, 그저 할 일 목록(To-do list)의 항목을 지워나갈 뿐이다. 마케터는 고객의 삶을 바꾼다는 사명감 대신, 이번 주 광고 클릭률 숫자에만 매달린다. 회의실에는 활발한 토론 대신 침묵이 흐르고, 팀원들의 눈에는 초기의 그 뜨거웠던 반짝임이 사라진다. 회사는 망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가슴 뛰지 않는 '영혼 없는 좀비'들의 집단으로 서서히 변해간다.


열정의 소멸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

이것이 바로 비전을 '번역'해주지 않은 리더가 치르는 가장 값비싼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당신의 재무제표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팀의 자발성, 창의성, 그리고 열정이 소멸되는 이 비용은 그 어떤 투자 실패보다 더 치명적으로 회사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3. 대화의 재설계: 핵심 원칙과 프레임워크 (The Core Principle & Framework)


핵심 원칙 제시

비전 공유의 목표는 당신의 위대한 꿈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의 거대한 미션이 어떻게 팀원 한 명 한 명의 일상적인 업무를 통해 현실이 되는지, 그 연결고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추상적인 목표를 그들이 매일 사용하는 '키보드'와 '마우스' 끝에 닿아있는 실질적인 영향력으로 번역해야 한다.


프레임워크 제시: 비전 스토리텔링 3단계 (과거-현재-미래)

팀원들을 시간 여행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라.


1. 우리의 시작 (The Origin / 과거): 우리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첫 고객의 어떤 문제에 가슴 아파했는지 생생한 창업 스토리로 상기시킨다. 이것은 우리의 '초심'이자 정체성이다.


2. 우리의 전쟁터 (The Battlefield / 현재):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왔으며, 우리의 목표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경쟁사, 시장의 편견 등)은 무엇인지 솔직하게 공유한다. 이것은 우리가 함께 넘어야 할 '산'이다.


3. 약속의 땅 (The Promised Land / 미래): 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우리가 도달할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각 팀(개발, 마케팅, 운영 등)이 그 '약속의 땅'을 만드는 데 어떤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 명확하게 그려준다.




4. 실전 플레이북: 당신의 대화를 디자인하라 (Design Your Talk)


대화의 핵심 키워드 뽑아내기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추상적인 비전을 팀원 개개인의 가슴에 와닿는 구체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첫_번째_고객: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이유

단순히 '첫 번째로 돈을 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첫_번째_고객'은 우리가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그 초심을 상징하는 '인격체'입니다. 그의 얼굴, 그의 목소리, 그가 겪었던 고통은 회사의 존재 이유 그 자체이다. 전사 회의를 시작할 때, 고객(김대리)의 사진을 띄우거나 그와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묘사하세요. 새로운 기능을 개발할 때 "이 기능이 과연 김대리님의 일을 더 쉽게 만들까?"라고 질문하라. 이 '첫 번째 고객'은 회사가 길을 잃을 때마다 돌아가야 할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자 북극성이 된다.


#우리가_싸우는_악당: 우리가 등을 맞대게 하는 힘

여기서 말하는 '악당'은 반드시 경쟁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고객을 괴롭히고,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의 근원인 '거대한 힘'이나 '잘못된 현실'을 의인화하는 것이다. '악당'을 명확히 정의하고 이름을 붙여주세요. 예를 들어 '의미 없는 보고서', '정보의 사일로(Silo)', '불합리한 수수료' 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이 악당을 물리치는 '무기'임을 명확히 하자. 이 서사는 팀원들에게 자신의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정의로운 싸움이라는 강력한 사명감을 부여한다.


#당신의_슈퍼파워: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할 당신의 역할

#당신의_슈퍼파워'는 거대한 비전과 팀원 개개인의 일상 업무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다리이다. 회사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각 팀원과 부서가 가진 고유하고 대체 불가능한 역할과 책임을 영웅적인 '능력'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 개발팀: 고객의 고통을 해결하는 '마법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

- 마케팅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

- 고객지원팀: '악당'에게 상처 입은 고객을 치유하고 우리의 가장 강력한 동맹으로 만드는 '최전선의 영웅들'.



핵심 질문 & 표현 가이드 (Talk Script & Tactics)


피해야 할 표현 :

"우리의 비전은 소상공인 업계 최고의 마케팅 AI 솔루션이 되는 것입니다." (추상적이고, 아무도 가슴 뛰지 않는다.)


✓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 :

"여러분, 1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고객 '김철수 사장님'를 기억하십니까? 평생 일군 가게의 홍보 전단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시던 그분의 얼굴을요. 우리의 비전은 내년 오늘, 대한민국에 있는 500만 명의 '김철수 사장님'들이 우리 서비스를 통해 단 5분 만에 멋진 전단지를 만들고 환하게 웃게 만드는 것입니다. 개발팀은 그분들이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마법 버튼'을, 마케팅팀은 그분들에게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희망의 편지'를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바로 그분들의 슈퍼히어로입니다.": 추상적인 비전을 구체적인 고객의 얼굴과 감정으로 번역하고, 각 팀의 역할을 비전 달성을 위한 영웅적인 임무('마법 버튼', '희망의 편지')로 재정의하여 동기를 부여한다.




5. 거인들의 대화: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Case Studies)


성공/실패 사례 분석: 슬랙(Slack)의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습니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의 창업가 스튜어트 버터필드는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팀원들에게 전설적인 메모를 남겼다. 당시 팀원들은 슬랙을 그저 '새로운 메신저'나 '업무용 툴' 정도로 생각했다. 버터필드는 이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야만 했다.


'그들은 어떻게 말했는가?'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최고의 업무용 메신저를 만드는 것입니다."

대신 그는 팀의 관점을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비유를 제시했다. 완전 명문장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안장을 팔지 않습니다(We don’t sell saddles here). 과거에 말안장을 팔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죽을 다루는 사업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운송 수단' 사업의 일부였습니다.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그들은 모두 망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업무용 메신저'를 파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조직의 혁신'을 파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더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하고, 더 창의적으로 일하며, 동료들과 더 깊이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파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들은 슬랙의 엔지니어는 자신의 일이 단순히 '채팅 기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소통 문화를 바꾸는 혁신'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버터필드는 제품의 기능(What)이 아닌, 그 기능이 가져올 변화(Why)를 이야기함으로써 팀원들이 스스로의 일을 더 위대한 미션의 일부로 느끼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비전을 개인의 업무와 연결하는 강력한 대화의 힘이다.




6. 즉시 실행 가능한 체크리스트와 다음 단계 소개 (Checklist & Next Steps)


Takeaway & 행동 강령

다음 전사 회의 슬라이드 첫 장에 당신 회사의 '미션 선언문' 대신, 당신 회사의 '첫 번째 고객 사진'을 넣어라.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완전 추천하는 행동강령입니다)


체크리스트

[ ] 나는 추상적인 비전이 아닌, 구체적인 고객의 이야기로 회의를 시작하는가?

[ ] 우리 팀이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이 명확하게 설정되었는가?

[ ] 각 팀의 역할이 비전 달성에 어떻게 직접적으로 기여하는지 설명했는가?

[ ] 팀원들이 "그래서 내가 내일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는가?

[ ] 창업가인 나 자신이 이 비전에 100% 미쳐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가?


지식의 무기고 확장하기

✓ (해외 도서) 사이먼 시넥,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Start with Why)』: 모든 위대한 리더와 조직은 '무엇을'이 아닌 '왜'에서 시작한다는 골든 서클 이론을 제시한다. 비전의 본질을 이해하는 최고의 책.

✓ (해외 강연)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졸업 연설: 개인의 경험(점)들이 어떻게 하나의 비전(선)으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스토리텔링의 정수.

✓ (국내 도서) 김범석, 『쿠팡, 우리가 혁신하는 이유』: 쿠팡의 비전이 어떻게 '고객 경험'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번역되어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다.


다음 챕터로의 연결

내부적으로 팀의 방향성을 하나로 정렬했다. 이제 당신의 비전을 외부 세계에 알려, 더 많은 지지자와 잠재 고객을 확보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언론은 당신의 홍보팀이 아니다. 그들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서 어떻게 당신의 서사를 지키고 통제할 수 있을까? 다음 챕터에서는 "주요 언론 인터뷰: 당신의 서사를 통제하는 대화법"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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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eader-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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